국내 스타트업 생태계가 벤처 혹한기를 지나 회복 국면에 접어들고 있지만, 생존 공식은 빠르게 바뀌고 있다는 진단이 나왔다. AI·딥테크 중심으로 투자시장이 재편되는 가운데 창업자와 투자자 모두 국내 시장 중심 사고에서 벗어나 글로벌 시장을 전제로 전략을 다시 짜야 한다는 위기감이 공유됐다.
28일부터 29일까지 부산 이스포츠경기장에서 열린 '2026 스타트업 생태계 컨퍼런스(스생컨)'에서는 투자 회복 이후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가 풀어야 할 핵심 과제로 글로벌 연결 회복과 회수시장 개선, 민간 중심 생태계 재설계 등이 집중 논의됐다.

첫날 발표에 나선 임정욱 스타트업얼라이언스 공동대표는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가 벤처 겨울을 지나 회복기에 접어들고 있다고 진단했다. 실제 지난해 벤처투자는 전년 대비 14% 증가했고, 올해 1분기 펀드결성 규모 역시 분기 기준 최고 수준을 기록하며 회복 신호가 나타나고 있다는 설명이다.
다만 회복의 내용은 양면적이라는 지적이다. 임 대표는 최근 생태계 변화를 '플랫폼에서 딥테크로의 이동'으로 정의했다. 과거 플랫폼 기업 중심이던 투자 흐름이 AI·반도체·로보틱스 등 딥테크 중심으로 재편됐으며, 올해 상반기 100억원 이상 투자유치 사례 대부분도 관련 분야에 집중됐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투자 쏠림과 글로벌 연결 약화다. 임 대표는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는 벤처 겨울을 지나 회복기로 가고 있다”면서도 “투자 양극화와 글로벌 연결 약화, 회수시장 문제를 함께 해결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이어 “글로벌 자본은 단순한 투자자를 넘어 해외 시장과 연결하는 역할을 한다”며 “한국 스타트업의 다음 무대는 글로벌”이라고 강조했다.
둘째 날 발표에서는 투자자 관점에서 본 글로벌 전환 압박이 제기됐다. 신윤호 베이스벤처스 대표는 “VC 산업의 로컬성이 깨지고 있다”며 “한국에서 스타트업을 시작하는 사람들도 이제 글로벌을 전제로 움직여야 하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2025년 기준 베이스벤처스 투자 기업의 40~50%가 해외 법인이었고 대부분 미국 법인이었다”며 “한국의 뛰어난 창업자들이 처음부터 펀딩, 회사 구조, 사업 모델을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추고 있다”고 설명했다.
신 대표는 단순히 스타트업만 글로벌 경쟁에 노출된 것이 아니라 VC 산업 자체도 구조 변화 압박을 받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과거 VC는 지역 네트워크와 정보 비대칭에 기반한 로컬 비즈니스 성격이 강했지만 지금은 창업자들이 글로벌 자본을 직접 만나는 시대”라며 “한국 VC도 자금 공급자를 넘어 글로벌 확장 파트너 역할을 증명해야 한다”고 말했다.
일본 스타트업 생태계 변화 역시 시사점으로 제시됐다. 한경욱 이네이블엑스 이사는 일본 역시 창업 증가와 딥테크 중심 투자 재편이 진행 중이지만 투자 양극화와 회수시장 변화가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일본은 IPO 문턱이 높아지며 M&A 중심 회수 구조가 확대되고 있으며, 한국 역시 유사한 과제에 직면해 있다는 설명이다.
참석자들은 투자 회복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입을 모았다. AI·딥테크 중심 성장 흐름을 글로벌 매출과 해외 자본 유입, 회수시장 활성화로 연결하지 못하면 생태계의 지속 가능성을 담보하기 어렵다고 분석했다.

한편 이번 스생컨에는 국내 주요 VC와 AC, 대기업 오픈이노베이션 조직, 정책기관, 대학 관계자 등 약 200여명이 참석했다. 스타트업얼라이언스가 주최하는 스생컨은 초청 기반 비공개 행사로, 2015년 시작 이후 올해로 11회째를 맞았다.
성현희 기자 sungh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