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호박벌이 지능이 높은 다른 동물과 마찬가지로 통찰력을 발휘해 먹이를 얻는 모습이 확인됐다.
4일(현지시간) 미국 CNN 등에 따르면 핀란드 오울루 대학교 연구팀은 호박벌이 훈련 없이 물체를 조작해 목표를 달성하는 능력을 확인한 연구 결과를 전날 국제학술지 '사이언스'에 게재했다.
약 100년 전 독일의 심리학자 볼프강 쾰러는 침팬지 우리에 바나나를 손이 닿지 않는 높은 곳에 매달아 두고 주변에 상자와 막대기를 흩어놓는 실험을 진행했다. 당시 침팬지들은 별도의 시행착오를 겪거나 타인의 행동을 모방하지 않고도 스스로 상자를 쌓아 올려 바나나를 손에 넣었다. 과거의 경험이나 교육 없이도 인과관계를 스스로 파악해 문제를 해결하는 고도의 인지 능력, 즉 '통찰력(Insight)'이 입증된 순간이었다.
그동안 이러한 고차원적 인지 능력은 유인원, 코끼리, 일부 조류 등 극소수 영장류나 포유류의 전유물로 여겨져 왔다. 하지만 오울루 연구팀은 실험을 통해 호박벌 역시 이와 같은 고도의 통찰력을 발휘해 완전히 새로운 문제를 자발적으로 해결하는 모습을 확인했다.

연구팀은 호박벌이 날 수 없지만 기어 다닐 수 있는 지름 10cm, 높이 3.2cm 크기의 원형 공간에서 실험을 진행했다.
실험 과정은 총 3단계로 나누어 진행됐다.
1단계에서는 경기장 중앙에 설탕물이 든 인공 파란 꽃을 두고 근처에 작은 스티로폼 공을 배치해 공이 위협적인 물체가 아님을 인식시켰고, 2단계에서는 공이 파란 꽃을 덮고 있게 해 공을 밀어내야만 설탕물을 먹을 수 있도록 원인과 결과를 학습시켰다.
마지막 3단계 통찰력 테스트에서는 꽃을 바닥이 아닌 벌의 키가 닿지 않는 천장에 매달고, 바닥에는 공을 고정할 수 있는 작은 홈을 파두었다.
실험 결과 앞선 단계에서 꽃과 공의 연관성을 경험했던 호박벌의 75%가 자발적으로 공을 홈이 파인 곳까지 굴려 간 뒤, 그 위로 기어 올라가 천장의 꽃에 도달하는 데 성공했다.

연구팀은 호박벌이 단순히 무작위로 공을 움직인 것이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 출발선에서 꽃이 보이지 않도록 가려진 조건에서도 실험을 진행했으나, 호박벌들은 목표의 위치를 기억하고 공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동시켜 문제를 해결했다.
제1 저자인 악샤예 밤보레 박사과정 연구원은 호박벌이 사전에 훈련을 받거나 시행착오를 겪지 않고도 완전히 새로운 물체 조작 과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음을 최초로 보여주었다고 설명했다.
이번 연구에 참여하지 않은 제임스 니에 캘리포니아대학교 샌디에이고 교수는 자연 상태의 호박벌이 디딤판을 만들기 위해 물건을 옮기는 행동을 하지 않는다며, “이는 본능이 아닌 숨겨진 목표 위치를 기억하고 그 목표에 맞춰 물체를 조작하는 유연한 인지 능력을 갖추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영국 퀸메리대의 라스 치트카 교수는 “쾰러의 침팬지 실험보다도 더 인상적”이라며, 호박벌의 행동을 천장의 전구를 갈기 위해 의자나 사다리를 딛고 올라서는 인간에 비유했다.
이번 연구는 미세한 신경계를 가진 곤충의 지능이 인류의 예상보다 훨씬 뛰어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연구팀은 다만 이번 결과가 호박벌에게 인간과 같은 수준의 추론 능력이나 의식이 있다는 것을 뜻하거나 학계에서 논쟁이 치열한 고도의 도구 사용 정의에 완벽히 부합하는 것은 아니라며 과도한 확대해석에는 선을 그었다.
서희원 기자 shw@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