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의 넥스트 거버넌스] 〈20〉정치가 너무 많은 것을 결정하는 나라

이영 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 초빙석학교수·前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이영 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 초빙석학교수·前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끝났다. 선거 기간 동안 언론의 1면은 정치가 차지했고 방송의 메인 뉴스 역시 정치 이슈로 가득 찼다. 누가 이길 것인가, 어느 진영이 승리할 것인가가 온 나라의 최대 관심사가 되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선거는 국민이 주권을 행사하는 가장 중요한 절차다. 그러나 선거가 끝난 지금 우리는 다른 질문을 던져야 한다. 왜 대한민국은 정치가 이토록 중요한 나라가 되었을까.

정치가 중요하지 않은 나라는 없다. 어느 나라든 선거는 국민적 관심사다. 그러나 선진국과 대한민국 사이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선진국에서는 정치가 중요하지만 정치가 모든 것을 결정하지는 않는다. 반면 대한민국에서는 정치가 너무 많은 것을 결정한다.

정권이 바뀌면 정책이 바뀌고, 기관장이 바뀌고, 예산의 방향이 바뀐다. 국민이 먹고사는 경제정책도, 부동산 정책도, 국가의 미래를 좌우할 연구개발 정책도, 교육 정책도 흔들린다. 그래서 국민은 정치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국민이 정치에 과도하게 몰입하는 것은 정치를 좋아해서가 아니라 정치가 삶의 많은 부분을 좌우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정치가 유독 큰 영향력을 갖게 된 데에는 역사적 배경도 있다. 우리는 압축 성장 과정에서 국가 주도의 발전 모델을 선택했다. 정부가 산업을 육성하고 금융을 배분하며 성장을 이끌었다. 그 전략은 산업화 시대의 성공을 만들어냈지만, 동시에 중요한 문제는 결국 정부가 해결한다는 인식을 사회 전반에 남겼다. 권한은 중앙정부에 집중됐고, 결과적으로 국가 운영의 상당 부분이 정치 권력에 의존하는 구조로 굳어졌다. 오늘날 정치의 영향력이 큰 이유는 정치인이 특별히 강해서가 아니라 정치 없이는 사회가 움직이지 않는 구조가 고착됐기 때문이다.

교육 분야만 봐도 그렇다. 교육은 미래 세대를 육성하는 국가 경쟁력의 핵심이지만, 우리는 오랫동안 교육의 미래보다 정치적 인기와 이해관계를 우선해 왔다. 정치 논리에 갇힌 장기간의 등록금 동결은 대학의 교육 투자 여력과 연구 경쟁력을 약화시켰다. 초·중등 교육 중심의 재원 배분 체계 역시 학령인구 감소 현실에 맞게 재검토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꾸준히 제기되지만, 다양한 이해관계와 관행 속에서 개혁은 번번이 멈춰 선다. 미래 세대를 위한 정책마저 정치적 유불리에 좌우되는 현실이다.

이처럼 전문성 위에 정치가 서서 모든 것을 결정하기 시작하면 사회는 문제를 해결하는 역량을 잃게 된다. 기업은 시장보다 정부를 바라보게 되고, 기관은 혁신보다 정권의 방향을 살피게 된다. 사람들은 경쟁력을 키우기보다 권력과의 거리를 좁히는 데 더 많은 에너지를 쓰게 된다. 정치가 커질수록 사회의 자율성과 책임은 작아진다. 결국 정치 과잉의 가장 큰 피해는 사회 전체의 문제 해결 능력이 약해지는 것이다. 대한민국이 새로운 성장동력을 만들어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배경에도 이러한 정치 과잉이 자리하고 있다.

선진국의 경쟁력은 훌륭한 정치인에게서 나오지 않는다. 정권이 바뀌어도 흔들리지 않는 제도에서 나온다. 국가의 산업 경쟁력과 혁신 생태계, 복지 시스템은 정권 변화와 무관하게 작동하도록 설계돼 있다. 정치는 방향을 제시하지만, 사회를 움직이는 것은 제도와 전문성이다. 선진국은 정치가 없는 나라가 아니라 정치가 모든 것을 결정하지 않는 나라다.

대한민국 역시 정치에 국가의 미래를 맡기는 구조를 넘어서야 한다. 국가 경쟁력은 결국 정치의 승패가 아니라 사회가 축적해 온 제도의 지속성에서 나온다. 정치가 미래를 결정하는 나라가 아니라, 제도가 미래를 만들어 가는 나라. 그것이 넥스트 거버넌스가 지향하는 대한민국이다.

이영 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 초빙석학교수·前 중소벤처기업부 장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