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나한테 투표했는데 0표?”…재개표 요구한 英 후보, 결말은?

폴 데니스. 사진=켄트온라인 캡처
폴 데니스. 사진=켄트온라인 캡처
“아내·아버지도 본인에게 투표” 주장
30명 넘게 투표 증언에도 재검표 안해

한국 6·3 지방선거 개표 결과를 둘러싸고 각종 의혹과 논란이 이어지는 가운데, 과거 영국에서 발생한 이른바 '0표 사태'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2015년 5월 영국 잉글랜드 켄트주 메드웨이 의회 레이넘 노스 선거구 지방선거에 노동조합사회주의자연합(TUSC) 후보로 출마한 폴 데니스는 개표 결과 단 한 표도 얻지 못한 것으로 집계됐다. 해당 선거구에서는 총 8464표가 투표됐지만 데니스의 공식 득표수는 0표였다.

논란은 데니스가 자신에게 직접 투표했다고 주장하면서 시작됐다. 그는 당시 아내와 아버지 역시 자신에게 표를 던졌다고 밝혔다.

데니스는 영국 매체 더미러와의 인터뷰에서 “결과를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며 “분명히 잘못된 결과”라고 주장했다. 이어 “개표 이후에도 여러 사람이 찾아와 자신에게 투표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TUSC 측도 0표 결과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내놨다. 당 관계자는 “후보 본인과 가족이 거주하는 지역구에서 0표가 나왔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며 “투표번호까지 제시하며 데니스에게 투표했다고 밝힌 유권자들의 증언을 다수 확보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TUSC는 데니스 본인과 가족을 포함해 30명 이상이 자신에게 투표했다고 주장하는 증언을 수집했다. 당시 같은 선거구에 출마한 다른 TUSC 후보들의 평균 득표수도 229표에 달했다.

그러나 재검표는 끝내 이뤄지지 않았다. 메드웨이 의회는 개표 기록을 다시 확인한 결과 득표수 0표가 맞다고 결론 내렸으며, 공식 결과가 선언된 이후에는 선거법상 추가 조사나 재검표를 진행할 수 없다고 밝혔다.

TUSC 측은 법률 자문도 받았지만 재검표 요구가 사실상 민사 소송 문제에 해당하고 결과를 뒤집기 어렵다는 답변을 받았다. 결국 소송 비용 부담 때문에 법적 대응을 포기했다.

이후 자체 조사 과정에서는 또 다른 선거 절차상 문제도 발견됐다. 선거법상 한 유권자는 최대 2명의 후보 추천인으로만 서명할 수 있는데, 한 유권자가 보수당 후보 1명과 영국독립당(UKIP) 후보 2명 등 총 3명의 추천인으로 이름을 올린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메드웨이 의회는 해당 절차상 오류에 대해 공식 사과했지만, 선거 결과를 변경할 사안은 아니라는 입장을 유지했다.

당시 개표 혼선의 원인으로는 개표 인력의 과도한 업무 부담이 지목됐다. 영국 총선과 지방선거가 같은 날 실시되면서 개표원들은 밤샘 작업을 이어갔고, 총선 개표를 마친 뒤 충분한 휴식 없이 곧바로 지방선거 개표에 투입된 것으로 알려졌다.

데니스 측은 “극심한 피로 상태에서 개표가 진행되면서 표가 누락됐을 가능성이 있다”며 “개표 과정에서 기본적인 검증 절차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결국 논란은 해소되지 않은 채 데니스의 득표수는 0표로 최종 확정됐으며, 재검표와 재선거 모두 실시되지 않았다. 이는 지금까지도 영국 선거사에서 가장 기묘한 개표 논란 가운데 하나로 남아 있다.

이상목 기자 mrls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