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세대 반도체 기판으로 부상 중인 '유리기판' 상용화의 난제 중 하나는 '검사'다. 회로 구현을 위해 유리기판에 구멍(TGV: Through-Glass Via)을 뚫어야 하는데, 이때 미세한 금이나 흠이 있으면 고가의 반도체 칩이 무용지물이 된다. 이를 사전 예방하기 위해서는 기판에 새겨진 수백만개의 구멍에 이상이 없는지 빠르게 살피는 검사 기술이 필수다. 하지만 아직 대량 생산에 적용할 만큼 기술 수준을 끌어올린 곳이 없다.
경기도 성남에 위치한 산업용 검사 장비 업체 '테크밸리'가 반도체 유리기판 검사의 난제를 풀 것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회사는 엑스레이(X-ray), 컴퓨터 단층촬영(3D-CT)을 통해 자동차 부품이나 휴대폰 배터리 등을 검사하는 장비를 만든다. 사업 내용만 보면 여느 다른 검사 장비 업체와 다를 바 없지만 한 걸음 더 들여다보면 남다른 모습이 엿보인다. 세계 최대 파운드리 회사인 TSMC와 협력하고 있어서다.

유리기판은 차세대 AI 반도체 구현에 필요한 기술로 떠오르고 있다. 지금보다 성능이 더 뛰어난 반도체를 만들기 위해 기존 플라스틱 기반 기판 대신 유리를 적용하려는 시도다.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AI 반도체를 제조하는 TSMC도 유리기판 기술을 준비중이다. 설계부터 양산까지 각 공정마다 요소 기술들을 점검하고, 검사도 그중 하나다.
유리를 반도체 기판으로 쓰려면 TGV를 뚫어야 하고, TGV가 제대로 형성이 됐는지 살펴볼 수 있는 검사할 수 있어야 양산이 가능한 데, TSMC의 눈높이를 맞추는 곳이 없었다.
수소문 끝 만나게 된 곳이 테크밸리였다. TSMC가 직원이 90여명에 불과한 한국의 작은 회사를 찾게 된 건 사진 한 장이 결정적이었다. 테크밸리 3D-CT로 찍은 TGV의 형상이 굴곡진 모양까지 다 보일 정도로 선명했던 것이다. 이찬수 테크밸리 팀장은 “TSMC가 사진을 보자마자 개발 협력을 제안했다”면서 “이례적으로 유리기판 샘플까지 보내주기까지 했다”고 말했다.

TSMC는 세계 최대 파운드리 기업이자 대형 반도체 제조사기 때문에 소재, 부품, 장비 기업들은 TSMC 요구 사항을 철저히 맞춰 거래하길 희망한다.
TSMC도 처음엔 테크밸리에 요구가 많았다. 자신들의 반도체 공장(팹) 내에서 유리기판을 검사하면서 양산 기술을 상용화하길 원했다. 기술 개발에 속도를 내기 위한 목적이었으나 타사에 TSMC의 기술 현황이나 노하우가 노출되는 것을 방지하려는 의도도 깔려 있었다.
하지만 테크밸리는 거절했다. TSMC 팹 내에 장비를 보내고, 대응할 여력이 충분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TSMC는 테크밸리를 내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들이 만든 유리기판을 보내줄 테니 검사를 해보자고 제안했다.
김한석 테크밸리 대표는 “TSMC가 샘플을 외부로 보낸 첫 사례로 안다”면서 “반도체 업계에선 극히 드문 일일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 유리기판 한장을 검사하는 데 30시간이 걸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량 생산을 위해서는 시간 단축이 필요하다. 테크밸리와 TSMC는 검사 시간을 줄이기 위한 기술 협력을 진행하고 있다.

테크밸리는 자동차 부품 검사부터 휴대폰 PCB, 배터리 검사 등으로 쌓은 노하우를 반도체 분야로 확대하는 중이다. 유리기판 외에 AI 반도체 필수 메모리로 떠오른 고대역폭메모리(HBM)에도 X-ray를 이용한 검사를 테스트하고 있다. 삼성전자와 대만 ASE에 장비를 공급, 양산 적용 여부를 점검하고 있다.
이 팀장은 “HBM 범프 형상 불량 여부를 확인하는 데 쓰이고 있다”면서 “올해 말까지 테스트를 진행한 뒤 내년 적용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모든 기술이 상용화로 직결되는 것은 아니다. 기술이 아무리 뛰어나도 시장이 형성되지 않거나 가격경쟁력이 갖춰지지 않으면 양산의 문턱을 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테크밸리의 반도체 검사 기술 역시 아직 성공을 말하기에 이르다. 반도체용 유리기판 자체가 여전히 개발 중인 기술이다. 그러나 '새로운 가능성'을 여는 중심에 국내 기업이 자리하고 있다는 점은 고무적이고 귀추가 주목되는 대목이다.
테크밸리는 기술력을 알아본 투자자로부터 인수 제안을 받았다. 하지만 이를 거절했다. 임직원이 함께 성장하고 행복할 수 있는 회사를 지향하고 있다는 게 김한석 대표의 설명이다.

윤건일 기자 benyu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