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과 이란의 종전 양해각서(MOU)에 이란산 원유 판매 제재 면제, 3000억 달러(약 454조원) 규모 재건 기금 조성, 동결 자산 해제 등 대규모 경제 지원 방안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지면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정치적 역풍을 맞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과거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이란 핵합의를 두고 “무능한 현금 퍼주기”라며 비판해왔지만, 이번 합의 내용이 공개되면서 미국 내에서는 “결국 같은 방식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특히 논란이 되는 부분은 3000억 달러 규모의 재건 기금이다. 미국 정부는 해당 기금에 미국 납세자의 세금이 투입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대신 걸프 지역 국가와 아시아 동맹국, 미국 기업 등이 출자하는 민간 투자 방식이라는 설명이다.
로이터통신은 16일(현지시간) 소식통을 인용해 전체 재건 기금 규모의 절반 이상을 미국·아시아·중동·남미·아프리카 기업들이 조달하기로 약속했다고 보도했다. 출자 참여 후보로는 한국·일본·싱가포르·말레이시아·미국 기업들이 거론됐지만 구체적인 명단은 공개되지 않았다.
이 기금은 이란이 요구했던 '전쟁 피해 배상금'의 대안으로 마련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란은 미국에 약 4000억 달러 규모의 배상을 요구했지만, 미국은 이를 받아들일 경우 전쟁 책임과 패배를 인정하는 모양새가 될 수 있다는 이유로 거부했고, 대신 민간 재건 투자 형태의 방안이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비판론자들은 미국과 이스라엘이 주도한 군사 충돌의 비용을 동맹국과 기업들에게 넘기는 구조라고 지적한다. J D 밴스 부통령은 “미국 납세자의 세금은 들어가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지만, 미국 내에서는 “결국 다른 방식의 부담 전가 아니냐”는 반론도 제기되고 있다.
과거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 당시 트럼프 행정부가 유럽과 아시아 국가들에게 군함 파견을 요구했던 사례와 비슷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호르무즈 해협 의존도가 높은 국가들이 안보 부담을 나눠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쟁점은 이란 원유 제재 완화다. 미국은 그동안 “MOU 서명만으로 제재를 해제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혀왔지만, 협상 관계자들은 후속 협상 기간인 60일 동안 이란이 원유를 판매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방안이 포함됐다고 전했다.
제재 완화 범위에는 원유 판매뿐 아니라 금융 결제, 해상 운송, 보험 등 관련 서비스도 포함될 가능성이 제기됐다. 이에 따라 미국 내에서는 “핵 폐기 검증 전에 경제적 보상을 먼저 제공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미국 측은 제재 해제가 단계적으로 진행될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호르무즈 해협 개방과 이란 핵 프로그램 관련 합의 이행 여부를 확인한 뒤 추가 조치를 취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MOU 전문 공개 요구도 커지고 있다. 미국 의회 내 일부 공화당 의원들은 합의문 전체 공개를 요구하고 있으며, 트럼프 대통령은 “곧 의회에 제출해 검토받겠다”고 밝혔지만 실제 공개 시점은 불투명한 상황이다.
이스라엘 역시 합의 내용을 사전에 공유받지 못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불만이 커지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미국은 공식 발표 전 내용 유출 가능성을 우려해 이스라엘 측의 요청을 거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이번 종전 합의의 핵심 쟁점은 “이란의 핵 포기와 제재 해제가 어떤 순서로 진행되는지”, 그리고 454조원 규모 재건 기금이 평화 구축을 위한 투자안인지, 사실상의 전쟁 비용 보전인지에 맞춰질 전망이다.
이상목 기자 mrls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