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비만치료제 맞고 헌혈하면…알리면 '폐기', 모르면 '수혈'

생성형 AI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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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고비·마운자로 등 GLP-1 계열 당뇨·비만 치료제 사용자가 빠르게 늘고 있지만, 헌혈 현장에는 이들 약물에 대한 별도 문진 항목·안내가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 비만 치료제 투여 후 헌혈시 투약 사실을 자진 신고하면 해당 혈액은 폐기되지만, 사전에 알리지 않으면 수혈에 쓰일 수 있다. 보다 세밀한 혈액 관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전자신문 취재에 따르면 대한적십자사는 비만치료제가 위험하지 않다는 이유로 관리 대상에서 제외하면서도 정작 자진신고한 혈액은 '최근 7일 이내 주사제 투여'라는 일반 규정에 묶어 기계적으로 폐기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적십자사는 최신 당뇨·비만 치료제 투약 7일 이내에 채혈된 혈액을 폐기하는 기준을 전국 혈액원에 적용하고 있다. 다만 비만 치료제 투약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헌혈자 자진신고 외에는 없다. 문진 항목에 주사를 맞은 적이 있느냐는 질문이 있지만, 위고비나 마운자로는 자가 주사 형태여서 헌혈자가 일반적인 주사와 다르게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적십자사는 헌혈금지약물에 한해 건강보험심사평가원 처방 정보를 전산으로 받아 헌혈을 제한한다. 헌혈 이후 관련 약물 처방이 확인되면 이를 회수 폐기한다. 그러나 비만치료제는 헌혈금지약물이 아닌 탓에 전산 연계 대상이 아니다.

결국 헌혈자가 스스로 고지하지 않으면 비만 치료제 투약 여부를 확인하기 어려운 구조다. 비만약을 맞고도 이를 알리지 않으면 혈액이 그대로 출고돼 환자에게 수혈될 수 있다. 같은 혈액이라도 투약 사실을 알리면 '투약 7일 이내 폐기'라는 현행 기준에 따라 버려진다.

다만 GLP-1 계열 약물이 수혈자에게 위험하다는 과학적 근거는 명확치 않다. 미국 적십자는 오젬픽·마운자로 투약자도 기저질환만 조절되면 헌혈할 수 있다고 안내한다. 한국 헌혈금지약물 목록에도 이들 계열은 빠져 있다.

GLP-1 계열 약물의 일률적인 보류보다 근거에 맞춘 기준 설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제갈동욱 서울성모병원 진단검사의학과 교수는 “당뇨약을 복용해도 헌혈이 가능하고, 마운자로 등은 당뇨 치료제로도 처방된다”며 “미국과 영국은 관련 약물 투여에도 헌혈이 가능하고, 아일랜드는 투약 8주 뒤에 가능한 것으로 체계가 마련됐다”고 설명했다.

비만치료제처럼 사용이 급증한 약물을 둘러싼 안내·문진 공백은 혈액 수급난과 맞물려 부담을 키울 전망이다.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채혈한 뒤 폐기되는 혈액은 2020년부터 지난해 8월까지 59만여 유닛에 달했다. 이달 18일 기준 전국 적혈구 보유량은 5.2일분으로 적정 기준(5일분)을 겨우 웃돌았다.

적십자사 혈액관리본부는 본지 취재가 시작되자 관련 홍보 강화와 문진 확인을 철저히 하라는 공지를 하겠다고 밝혔다.


의료계 관계자는 “적십자 공지는 안내와 문진 확인을 강화하는 수준으로, 신약을 맞은 사람의 혈액을 폐기하거나 수혈하는 기준 자체를 손보거나 별도 문진 항목과 공식 가이드라인을 새로 두는 단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자진신고에 기대는 현행 체계보다 안내·문진 체계를 어떻게 다시 설계할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위고비·마운자로 등 GLP-1 계열 당뇨·비만 치료제 투약자 헌혈 관리 체계 사각지대 현황표.
위고비·마운자로 등 GLP-1 계열 당뇨·비만 치료제 투약자 헌혈 관리 체계 사각지대 현황표.

임중권 기자 lim9181@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