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록체인 칼럼] 블록체인 금융의 다음 승부처는 '코인'이 아니라 '인프라'다〈하〉

김선미 동국대 경영전문대학원 핀테크&블록체인 책임교수
김선미 동국대 경영전문대학원 핀테크&블록체인 책임교수

실물자산토큰화(RWA) 시장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법적 소유권과 투자자 보호 문제가 명확히 정리돼야 한다. 블록체인에 기록된 토큰이 실제 자산에 대한 권리를 어떻게 보장하는지, 발행사가 파산했을 때 투자자의 권리는 어떻게 보호되는지, 공시와 가치평가는 어떤 기준으로 이뤄져야 하는지가 핵심이다. 기술적으로는 토큰 발행이 가능하더라도 법적·회계적·수탁 구조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시장은 확장되기 어렵다.

한국 시장에서는 증권형 토큰, 즉 STO 제도화가 중요한 분기점이 될 전망이다. 부동산, 미술품, 음악 저작권, 선박금융, 매출채권 등 다양한 자산을 기반으로 한 조각투자와 토큰 증권 발행은 이미 시장의 관심을 받아왔다. 제도가 정비되면 증권사, 조각투자 플랫폼, 자산운용사, 핀테크 기업이 새로운 발행·유통 생태계를 형성할 수 있다.

반대로 규제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프로젝트는 토큰 발행 자체가 어려워질 가능성도 있다. STO의 본질은 단순히 자산을 쪼개 파는 데 있지 않다. 핵심은 기존 증권 규제의 틀 안에서 블록체인 기반 발행·유통·권리관리의 효율성을 얼마나 구현할 수 있느냐다. 투자자 보호, 발행 공시, 유통시장 관리, 수탁, 분쟁 처리 체계가 정교하게 마련돼야 한다. 한국 핀테크 기업 입장에서는 STO가 새로운 성장 기회가 될 수 있지만, 동시에 금융투자업 규제와 기술 운영 역량을 모두 갖춰야 하는 고난도 영역이 될 것이다. 중앙은행 디지털화폐, 즉 CBDC를 둘러싼 논의도 변화하고 있다. 과거에는 CBDC가 민간 디지털화폐를 대체할 것인지에 관심이 집중됐다면, 최근에는 중앙은행 화폐, 은행 예금, 스테이블코인, 토큰화 예금이 어떤 방식으로 공존할 것인지가 더 현실적인 쟁점이 되고 있다. 모든 결제를 중앙은행 디지털화폐로 처리하는 방식보다는, 공공 화폐와 민간 디지털화폐가 역할을 나누고 상호 연결되는 구조가 현실적인 대안으로 거론된다.

이러한 변화는 블록체인 산업의 성격 자체를 바꾸고 있다. 과거 블록체인의 키워드가 탈중앙화와 익명성이었다면, 이제는 규제 준수와 신뢰 인프라가 중심이 되고 있다. 자금세탁방지, 고객확인, 트래블룰, 온체인 거래 모니터링, 지갑 실명성, 디지털 수탁, 준비금 감사, 이상거래 탐지 등은 블록체인 금융 서비스의 필수 요건이 됐다. 금융회사와 핀테크 기업이 블록체인을 활용하려면 기술력뿐 아니라 컴플라이언스 체계를 함께 갖춰야 한다.

특히 한국은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와 불공정거래 규제, STO 제도화, 스테이블코인 논의, 금융권 망분리 규제 완화, 인공지능(AI) 기반 금융서비스 규제까지 여러 변화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 이는 핀테크 기업에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는 동시에 높은 수준의 규제 대응 능력을 요구한다. 단순히 빠르게 서비스를 출시하는 것만으로는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렵다. 금융 규제, 보안, 데이터 보호, 투자자 보호, 기술 안정성을 통합적으로 설계해야 한다. 결국 핀테크·블록체인 산업의 다음 국면은 투기적 자산 시장이 아니라 금융 인프라 경쟁이 될 가능성이 높다.

스테이블코인은 글로벌 결제망을 흔들고, 토큰화 예금은 은행의 결제 방식을 바꾸며, RWA와 STO는 자본시장의 발행·유통 구조를 재편할 수 있다. 동시에 규제 준수형 인프라는 이 모든 서비스를 가능하게 하는 기반이 된다. 국내 기업이 이 흐름을 기회로 만들기 위해서는 기술 도입 자체보다 어떤 금융 문제를 해결할 것인지에 집중해야 한다. 해외송금 비용 절감, 기업 간 정산 자동화, 실물자산 유동화, 투자자 보호 강화, 디지털 수탁, 온체인 리스크 관리처럼 명확한 문제를 해결하는 서비스가 시장에서 살아남을 것이다. 블록체인의 가치는 기술의 새로움이 아니라 금융 거래의 비용과 시간을 줄이고 신뢰를 높이는 데서 입증돼야 한다. 핀테크와 블록체인의 접점은 이제 더 이상 주변부가 아니다.

결제, 예금, 증권, 수탁, 규제 기술을 관통하는 금융 시스템의 핵심 의제로 이동하고 있다. 앞으로의 경쟁은 누가 더 많은 토큰을 발행하느냐가 아니라, 누가 더 안전하고 효율적이며 규제 친화적인 금융 인프라를 구축하느냐에 달려 있다.

김선미 동국대 경영전문대학원 핀테크&블록체인 책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