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0년대 중반, 컴퓨터 기술의 도입과 함께 대학 연구실과 동아리를 중심으로 민간의 자생적 창의성이 발휘된 하이테크 벤처와 인재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이 혁신의 흐름 속에서 1세대 벤처 창업의 핵심 인프라 역할을 한 '유니코사(전국대학컴퓨터서클연합:UNICOSA)'를 빼놓을 수 없다.
어린 시절부터 컴퓨터에 매료됐던 대학생들은 개인용 컴퓨터(PC) 보급이 전무하다시피 한 열악한 환경 속에서 자발적으로 모임을 만들기 시작했다. 학생들은 서로 정보를 공유하며 한글 워드프로세서나 하드웨어(HW) 보조장치를 직접 코딩하고 설계하며 해커 전통을 만들어갔다.
오명 체신부 차관은 청년층의 정보화 마인드 확산을 위해 유니코사 동아리방들에 PC통신용 컴퓨터와 모뎀 등을 파격적으로 무상 지원했다. 이 과감한 인프라 투자는 곧바로 기술적 성과로 이어졌는데, 전국의 대학 컴퓨터 동아리 개발자들이 한글 워드프로세서들을 직접 개발해내기 시작한 것이다. 동아리에서 만든 소프트웨어(SW)가 국내 대기업들에 납품됐고, '아래아한글' 같은 국민 SW가 탄생할 수 있었다. 나아가 정부는 1988년 서울올림픽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 유니코사 정예 회원 300여명을 전산 자원봉사 요원으로 배치했고, 이들은 올림픽 경기 정보 유통과 온라인 단말 관리 업무를 완벽히 수행해 내며 체신부 장관상을 수상하는 등 국가적 과제의 핵심 파트너로서 역할을 했다.
이런 청년 인재 네트워크는 1991년, 대기업의 자본 및 인프라와 결합하며 '삼성소프트웨어멤버십(SSM)'이라는 인큐베이션 시스템으로 진화했다. 당시 '알라딘 PC'를 출시하며 독자적 SW 생태계 확보가 시급했던 삼성전자와, 마음껏 코딩할 공간이 필요했던 청년들의 니즈가 맞닿은 결과였다. SSM은 24시간 자율 출퇴근이 가능한 공간과 고사양 컴퓨터 장비를 제공하며 개발자들을 위한 샌드박스 놀이터가 되었다. 유니코사 특유의 자유분방한 해커 정신과 밤샘 코딩을 하면서 서로 배우는 도제식 수평 학습 구조는 대기업의 공간과 재정적 지원이 이뤄지면서 비즈니스 네트워크로 발전하기 시작했다.
이 혁신적인 인적 네트워크는 고위험 기술 창업의 거래 비용을 대폭 절감시키는 사회적 자본이 되었다. 현재 한국 IT 산업의 지형도를 바꾼 거물들이 유니코사와 SSM이라는 거대한 소통 마당 안에서 청년 시절을 함께 보내며 결속력을 다졌다. 이런 인적 네트워크는 1990년대 후반 인터넷 대중화 시기에 연쇄 창업의 불씨가 되었다.
경영사 관점에서 이 과정은 국가 주도형 발전 모델과 민간의 자생적 생태계의 정치경제학적 협력 과정이라 볼 수 있다. 전산 인프라가 부족했던 국가가 대학 연구실의 기술 자원을 공적 프로젝트에 동원했는데, 학생들의 자유분방한 해커 정신이 국가의 제도적 관리 체제 안에 포섭되는 경로의존성이 만들어지는 계기가 됐다.
또, 초기 워드프로세서들이 대기업 PC의 판촉용 번들 SW로 납품되면서, 우리나라 IT 산업이 HW 중심으로 편중되고 SW의 독자적 가치는 저평가되는 구조적 모순의 시발점이 됐다. 결국 청년들이 동아리방에서 밤새워 일궈낸 기술은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을 다 완성하지 못했고, 1990년대 말 벤처 붐과 함께 갑작스레 거대한 금융시장의 논리에 휘말리면서 미성숙한 제도적 한계 속에 큰 부침을 겪게 되었다.
지금은 인공지능(AI), 클라우드, 차세대 반도체(NPU)처럼 고도의 기술력과 천문학적인 자금이 필요한 '딥테크 혁명' 시대다. 하지만 이런 거대한 자본 경쟁 속에서도 우리가 역사에서 배워야 할 교훈은 분명하다. 뛰어난 인재들이 아이디어를 내고 밤새워 일할 수 있는 환경이 없다면 혁신은 일어나지 않는다. 실패를 다그치기보다 자산으로 용인해 주는 문화, 그리고 서로 기술을 공유하며 함께 성장하는 신뢰 기반의 인적 네트워크와 공동체의 활력이 살아있을 때 비로소 시대를 바꾸는 기술이 탄생한다. 돈보다 먼저 사람의 열정을 묶어내는 인적 네트워크를 만드는 것, 그것이 바로 1980년대 동아리방 청년들이 오늘날의 창업가들에게 던지는 메시지다.
전성민 가천대 경영학과 교수·한국경영사학회 부회장·전자신문 명예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