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랑스가 최악의 폭염에 시달리는 가운데 냉방 설비 확대 여부가 정치권의 새로운 논쟁거리로 부상했다.
24일(현지시간) BBC에 따르면 그동안 프랑스는 에어컨 사용에 비교적 소극적인 국가로 꼽혀 왔다. 특히 환경단체들은 냉방기 사용이 에너지 소비를 늘리고 기후변화를 심화시킬 수 있다고 비판해왔다. 전력 사용 증가에 따른 화석연료 의존 문제와 실외기에서 발생하는 열이 도시 온도를 높이는 현상 등이 주요 근거로 제시됐다.
현재 프랑스의 가정용 에어컨 보급률은 약 25% 수준으로, 미국과 일본(각 90%)은 물론 스페인·이탈리아(각 50%)보다 낮다. 학교와 의료기관 역시 냉방 시설이 충분히 갖춰지지 않은 곳이 적지 않다.
하지만 기온이 40도 안팎까지 치솟는 더위가 계속되면서 상황이 달라지고 있다. 교육 현장과 의료 서비스 운영에 차질 우려가 커지자 냉방 설비 확충이 불가피하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최근에는 교실 환경 개선과 야간 더위 해소를 위해 이동형 냉방기 구매가 크게 늘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극우 성향 정당인 마린 르펜은 정부가 재정 지원을 통해 에어컨 보급을 적극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프랑스 정치권에서는 전통적으로 보수 진영이 냉방 설비 확대에 우호적인 입장을 보여왔다.
르펜은 전국의 학교와 병원에 냉방 장치를 설치하는 이른바 '국가 냉방 프로젝트'를 추진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또한 3000만~4000만 가구가 에어컨을 설치할 수 있도록 200억 유로 규모의 정부 보증 무이자 대출을 제공하는 방안도 제안했다.
반면 과거 냉방기 사용 확대에 부정적이었던 환경주의 진영도 일부 입장을 조정하고 있다. 에어컨 사용에 비판적이었던 마리 톤들리에는 최근 학교와 병원 등 특정 시설에는 냉방 장치가 필요하다고 인정하며 “이제는 에어컨 없이 버티기 어려운 공간이 존재한다”고 말했다.
프랑스의 건축·도시 정책에도 변화 요구가 제기되고 있다. 그동안 프랑스는 건물 단열 성능 강화와 녹지 조성, 고효율 환기 시스템 도입 등을 통해 냉방기 없이도 견딜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데 중점을 둬 왔다.
그러나 의료계에서는 현실을 반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프랑스 서부 도시 낭트에 건설 중인 신규 병원의 병실 절반에만 냉방 설비를 설치하는 계획에 대해 의료노조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노동계 역시 현재 기후 여건을 고려하면 병원 전 구역에 냉방 시설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한편 보수 성향의 발레리 페크레스는 2032년까지 모든 버스와 철도 차량에 냉방 시스템을 갖추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그는 “프랑스 사회가 지나치게 반(反) 에어컨 인식에 묶여 있다”며 “에어컨 역시 다양한 폭염 대응 수단 가운데 하나로 검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원지 기자 news21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