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운대 초대총장 조무성 박사 별세… 대한민국 정보통신 교육의 초석을 놓다

故조무성 박사(광운대 초대총장)
故조무성 박사(광운대 초대총장)

광운대학교는 대한민국 전자·정보통신 교육의 기틀을 세우고, 평생을 '사람을 향한 신뢰와 따뜻한 어울림'으로 학교를 이끌어온 조무성 광운대 초대총장이 지난 27일 밤 9시 50분 향년 85세로 별세했다고 29일 밝혔다.

조 초대총장의 일생은 광운대의 역사 그 자체였다. 1942년 광운학원 설립자인 화도 조광운 박사의 둘째 아들로 태어난 그는 광운의 발상지이자 우리나라 최초의 전자통신 전문 교육기관인 '조선무선강습소'가 자리했던 서울시 중구 봉래동 1가 83번지에서 태어나 한평생을 광운과 함께 호흡했다.

조 초대총장의 삶은 고난을 희망으로 바꾸어낸 끈질긴 사투의 연속이었다. 40대 초반이던 1986년, 그는 위암 판정을 받으며 '6개월 시한부'라는 청천벽력 같은 선고를 받았다. 1987년 광운대의 종합대학 승격이라는 거대한 도약을 눈앞에 두고 찾아온 절망적인 순간이었다.

보통의 인간이라면 자신의 생명과 안위를 먼저 돌보았을 그 가혹한 운명 앞에서, 고인이 가장 먼저 챙기고 생각했던 것은 오직 '광운대'였다.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그 순간, 광운의 종합대학 도약에 힘을 싣기 위해 장위동 소재의 약 38억 원 상당의 부지를 학교에 기증하는 위대한 결단을 내렸다.

이후 7차례의 심장수술과 2차례의 뇌수술, 백혈병에 이르기까지 수십 년 동안 생사의 고비를 넘나드는 치열한 투병 생활 중에서도, 고인은 생명이 오고 가는 위독한 순간마다 마치 마지막 유언을 남기듯 학교를 향한 대규모 기증과 지원을 멈추지 않았다. 고인에게 광운은 자신의 목숨보다도 소중하고 지켜내야만 하는 삶의 전부였던 것이다.

대한민국 전자·전파·정보통신 교육을 선도해 온 광운대가 오늘날의 독보적인 경쟁력을 갖추게 된 배경에는, 이렇듯 자신의 모든 것을 던진 고인의 헌신과 더불어 몸소 실천했던 '소탈함과 진심의 경영'이 있었다.

고인의 생전 기억 속 자택 앞마당은 언제나 시끌벅적한 사랑방이었다. 신임 교수와 원로 교수, 그리고 행정 직원들까지 모두 한데 어우러져 바둑을 두고 소주와 막걸리 잔을 기울이며 밤새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조 초대총장에게 교수와 직원들은 단순한 조직 구성원이 아닌, 광운이라는 이름 아래 함께 고난을 헤쳐 나가는 '친가족'이자 '전우'였다.

고인은 “교수님들은 굳이 들볶지 않아도 연구가 좋아서 스스로 공부하시는 분들이다. 연구 성과는 윽박지른다고 나오는 것이 아니다. 그저 믿고 기다려 드리고, 묵묵히 지원해 드리면 된다”고 강조했다. 이 '기다림과 지원', 그리고 사람을 귀하게 여기는 소탈한 소통 문화는 오늘날 광운대학교가 100주년을 바라보는 명문 사학으로 성장한 가장 강력한 뿌리가 되었다.

고인이 온몸을 던져 닦아놓은 학문적 토대 위에서 광운대는 지난 90여 년간 10만 명이 넘는 우수한 전자·정보통신 전문 인력을 집중 양성하며 국가 ICT 산업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이러한 평생의 공로를 인정받아 고인은 별세 불과 아흐레 전인 지난 18일, 한국통신학회로부터 '특별공로상'을 수상하는 영예를 안았다. 비록 병상에서 전해 들은 소식이었으나, 고인의 고되고 외로웠던 삶을 위로하는 가장 큰 선물이 되었다.

또한, 조 초대총장은 대학 교육뿐만 아니라 체육 발전에도 큰 족적을 남겼다. 1981년부터 12년간 대한아이스하키협회 회장을 역임하며 국내 동계 스포츠의 기반을 다졌고, 대한민국 체육포장을 수훈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이희원 여사와 조선영 학교법인 광운학원 이사장, 조선랑 광운대 교수, 조성우 광운대학교 참빛인재대학 교학팀장이 있으며, 고인이 평생을 바쳐 사랑한 광운학원의 교육 정신을 가족들이 든든하게 이어가고 있다.

권미현 기자 mhkw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