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랑스 하원의 기능을 하는 국민의회가 불치병을 앓는 성인에게 스스로 생을 마감할 선택권을 부여하는 이른바 '조력 사망법'을 통과시켰다. 다만 신체적 통증이 아닌 정신적 고통만을 이유로 하는 경우는 허용 대상에서 제외됐다.
30일(현지시간) 유로뉴스에 따르면 이날 하원 표결 결과는 찬성 295표, 반대 232표로 집계돼 법안이 가결됐다.
앞서 프랑스 상원은 올해 1월 해당 법안을 한 차례 부결한 바 있다. 만약 상원이 다시 이를 거부할 경우, 헌법 규정에 따라 하원이 최종 결정 권한을 갖게 된다.
이 법안을 맡은 필리프 비지에르 의원은 “이번 제도는 환자에게 새로운 권리를 부여하는 동시에 의료진이 참여를 거부할 자유도 보장하며 환자와 의료진, 가족 모두를 위한 보호 장치를 포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법안은 조력 사망을 인정받기 위한 조건으로 연령, 거주 요건, 질환 상태, 고통 수준, 판단 및 의사 표현 능력 등 5가지 기준을 제시한다. 또한 이 과정에 관여하는 의료인에게 법적 책임을 면제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우선 대상자는 18세 이상이어야 하며 프랑스 국적자이거나 프랑스 내에서 합법적으로 안정적인 거주 상태를 유지하고 있어야 한다.
질병 조건의 경우, 치료가 어렵고 중대한 질환으로 생명을 위협받는 상태여야 하며, 회복이 불가능한 악화 과정에 들어선 경우로서 상태가 점점 나빠져 삶의 질이 크게 저하되는 단계에 해당해야 한다.
또한 환자는 해당 질병과 직접 관련된 심각한 고통을 겪고 있어야 하며, 이 고통은 치료에도 반응하지 않거나 치료를 거부 또는 중단했을 때 개인적으로 감내하기 어려운 수준이어야 한다.
법안은 정신적 고통만으로는 조력 사망을 허용할 수 없다고 명확히 규정한다. 우울증이나 정신질환 등 순수한 심리적 이유만으로는 신청 자체가 불가능하다. 환자는 자신의 의사를 명확하고 충분한 정보에 기반해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절차에 따르면, 신청자는 가족이나 이해관계자가 아닌 담당 의사에게 직접 대면 방식으로 요청해야 한다. 의사는 요청을 접수한 뒤 전문의, 간호 인력, 사회복지 및 심리 전문가 등이 참여하는 다학제 검토팀을 구성해 요건 충족 여부를 판단하고, 신청일로부터 15일 이내 승인 여부를 통보해야 한다.
승인이 내려진 뒤에는 최소 2일의 숙려 기간이 주어지며, 이후 환자는 '치명적 약물' 투여를 요청할 수 있다. 원칙적으로 환자가 직접 약물을 복용해야 하지만, 신체적으로 불가능한 경우에 한해 의료진이 대신 투여할 수 있다.
또한 의료진은 언제든지 결정 철회가 가능하다는 점을 고지해야 하며, 투약 당일에도 환자의 최종 의사를 재확인해야 한다. 만약 외부 압박이 확인되면 절차는 즉시 중단된다. 통보 이후 3개월이 지난 뒤 실행되는 경우에는 다시 한 번 자발성과 충분한 이해 여부를 재검토해야 한다.
이 법은 조력 사망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의료인의 선택권도 인정한다. 참여를 거부하는 경우, 해당 사실을 신청자와 관계자에게 알리고 대신 절차에 참여할 수 있는 의료진 정보를 전달하도록 하는 '양심 조항'이 포함됐다.
프랑스에서는 조력 사망 제도를 둘러싸고 오랜 기간 찬반 논쟁이 이어져 왔다.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2022년 임종 관련 입법 추진을 약속했고, 해당 법안은 2024년 처음 발의돼 지난해 하원에서 통과된 바 있다.
그러나 상원은 1월 28일 찬성 122표, 반대 181표로 이를 다시 부결시키며 반대 입장을 유지했다. 윤리적 문제, 취약 환자 보호, 제도 남용 가능성 등이 주요 쟁점으로 제기됐다.
이후 양원은 각각 7명씩 참여한 공동위원회를 구성해 절충안을 논의했지만 합의에 실패했다. 결국 하원은 30일 법안을 다시 의결해 상원으로 넘겼고, 양원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하원이 최종 결정권을 행사하게 된다.
야엘 브라운 피벳 하원 의장은 소셜미디어를 통해 “이번 표결은 오랜 준비와 진지한 논의, 상호 존중 속에서 이뤄진 공론의 결과”라고 평가했다.
이원지 기자 news21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