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신의 핀테크스토리]블록체인의 개방성과 은행의 신뢰, '온체인 현금' 주도권 경쟁

금융 시장에서 새로운 화폐 경쟁이 시작되고 있다. 민간 기업이 현금·국채 등을 준비자산으로 발행하는 스테이블코인과 기존 은행예금을 블록체인 위로 옮긴 토큰화 예금의 경쟁이 그것이다. 둘 다 법정화폐와 같은 가치를 유지하면서 24시간 이전과 자동화된 결제를 지원하지만, 발행 주체와 신뢰 기반은 다르다. 스테이블코인이 기존 은행 망 밖에서 성장한 인터넷 화폐라면, 토큰화 예금은 은행 시스템의 디지털 확장이라 할 수 있다.

경쟁이 본격화된 핵심 배경은 자산의 토큰화다. 국채·펀드·채권·부동산 등이 블록체인에서 거래되기 시작했지만, 거래대금을 지급할 안전한 디지털 화폐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자산은 24시간 움직이는데 은행 송금이 영업시간과 국가 결제망에 묶여 있다면 토큰화의 효율성은 살릴 수 없다. 가상자산 시장에서 유통망을 확보한 스테이블코인과 금융기관의 신뢰를 앞세운 토큰화 예금이 자산 토큰화의 '온체인 현금시장'을 놓고 맞붙기 시작한 셈이다.

현재 유통시장 규모와 이용자 저변에선 스테이블코인의 약진이 두드러진다. 테더의 USDT 유통 잔액은 2025년 말 기준 1860억 달러(279조원), 서클의 USDC도 753억 달러(113조원)다. 게다가 각기 전년 대비 36.5%, 72%씩 급증했다. USDT는 가상자산 거래와 신흥국의 디지털 달러시장에서 네트워크를 구축했고, USDC는 준비자산의 투명성과 금융회사·핀테크와 연계가 경쟁력이다. 페이팔의 PYUSD는 핀테크 업체가 이용자와 가맹점 네트워크에 스테이블코인을 결합한 사례다. 한마디로 스테이블코인 활용이 가상자산은 물론 송금·전자상거래·기업 자금관리로 빠르게 확대되고 있단 얘기다.

토큰화 예금은 아직 일관된 통계를 잡기 어려울 만큼, 초기 단계다. 하지만 글로벌 은행의 대응도 빨라지고 있다. JP모건의 블록체인 결제망 키넥시스는 기업의 은행예금을 디지털 원장으로 이전해서, 국경 간 지급과 실시간 유동성 관리에 활용하고 있다. 2026년 6월 기준 하루 평균 70억 달러 이상의 거래로, 빠르게 활용 범위를 넓히고 있다. 규모는 아직 작지만, 은행예금이 실제 기업 결제망에서 상시 이동하기 시작했다는 점이 중요하다는 평가다.

씨티도 예금토큰을 24시간 달러 청산 망과 연결했다. 영국과 미국의 기관 고객이 네트워크 내 계좌를 통해 자금을 국경 간 상시 이전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다. 스테이블코인이 기존 금융망을 우회해 성장했다면, 토큰화 예금은 은행의 계좌·외환·자금관리 망 자체를 블록체인 방식으로 바꾸려는 시도다.

특히 두 상품의 가장 큰 차이는 신뢰 구조다. 우선 토큰화 예금은 상업은행의 부채면서 기존 예금의 디지털화라 할 수 있다. 따라서 고객 확인과 자금세탁방지, 건전성 규제가 적용되고, 제도에 따라선 예금자 보호 대상이 될 수도 있다. 기업과 기관투자자에게는 거래 상대방과 법적 권리가 명확하다는 점도 강점이다. 반면 특정 은행의 고객과 승인된 네트워크(폐쇄망) 안에서만 사용할 수 있다는 한계가 있다. 은행별 토큰이 서로 연결되지 않으면 디지털 공간에 새로운 칸막이가 생길 수 있고, 은행 계좌와 엄격한 고객 확인 절차가 필요한 만큼 개인과 소규모 사업자의 접근성이 낮을 수 있는 점도 제약이다.

이와 달리 스테이블코인의 강점은 개방성과 연결성이다. 공개형 블록체인에서 디지털 지갑만 있으면 시간과 국경에 관계없이 이동할 수 있고, 거래소·전자상거래·게임·탈중앙화 금융 등 거의 모든 서비스와 연결할 수 있다. 특히 은행 시스템이 느리거나 자국 통화가 불안정한 국가에서는 디지털 달러를 보유하고 송금하는 수단으로 활용된다.

하지만 스테이블코인은 은행예금이 아니라 발행기업에 대한 상환청구권인 만큼, 준비자산의 유동성과 보관 방식, 발행사의 운영 위험 등에 따라 가치가 흔들릴 수 있다. 예금자 보호가 적용되지 않는 점도 단점이다.

수익 모델 역시 다르다. 은행은 토큰화 예금을 기반으로 결제·외환·현금관리·수탁 등의 수익 모델을 얻을 수 있다. 스테이블코인 발행사는 준비자산을 단기 국채 등에 투자해, 이자를 얻는다. 테더가 2025년 말 1220억 달러 이상의 미국 국채를 보유하고, 100억 달러가 넘는 순이익을 기록한 것도 스테이블코인의 성장이 결제 시장뿐 아니라, 국채 시장에 큰 영향을 주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러한 경쟁이 금융 시장엔 어떤 영향을 줄까. 첫째, 지급 결제 시간과 비용의 절감효과다. 스테이블코인은 블록체인을 통해 국경 간 자금을 수초 또는 수분 안에 이전하고, 여러 중개 기관을 거치던 거래를 하나의 온체인 거래로 처리할 수 있다. 글로벌 은행도 기업의 해외 자금관리와 무역·증권결제의 효율을 높이고 있다.

둘째, 은행의 예금과 대출 구조를 바꾸는 효과다. 고객자금이 스테이블코인으로 이동하면 은행의 예금 기반과 대출 여력이 줄 수 있다. 반대로 토큰화 예금이 확산하면 은행은 고객자금을 금융권 안에 유지하면서도 24시간 결제와 프로그래머블 금융을 제공할 수 있다. 두 상품 간의 경쟁은 결제 수단뿐 아니라, 디지털 시대의 예금과 고객을 누가 확보하느냐의 경쟁이기도 하다.

셋째, 전통 금융과 디지털자산 간의 융합 시너지 효과다. 대표적인 사례가 블랙록의 토큰화 머니마켓펀드 BUIDL과 USDC의 연결이다. BUIDL 투자자는 보유 지분을 서클에 이전하고 USDC를 받는 24시간 전환 경로를 이용할 수 있다. 전통적인 펀드 환매와는 구조가 다르지만, 은행 영업시간 밖에도 토큰화 자산을 디지털 달러로 바꿀 수 있는 유동성 통로가 생겼단 얘기다.

전망은 어떤가. 시장에선 어느 한쪽이 다른 쪽을 완전히 대체할 가능성은 낮은 것으로 보고 있다. 기업 자금관리와 은행 간 지급, 증권·무역 결제처럼 법적 확실성이 중요한 분야에서는 토큰화 예금이, 개인 송금과 전자상거래·디지털자산 거래처럼 개방성과 접근성이 중요한 분야에서는 스테이블코인이 우위를 보일 가능성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 평가다.

우리나라도 양자택일식 접근은 지양할 필요가 있다. 2025년 '프로젝트 한강'을 통해 예금토큰의 결제 가능성을 확인한 만큼, 앞으로는 은행 간 예금토큰의 상호운용성과 핀테크의 서비스 참여 방안을 구체화해야 한다. 원화 스테이블코인은 해외 사례처럼 준비자산 분리보관, 상시 상환, 자금세탁방지 의무를 부과하되, 공개형 블록체인의 개방성과 글로벌 연결성을 살릴 필요가 있다. 토큰화 예금만으로는 해외 디지털 생태계와의 연결이 부족할 수 있고, 스테이블코인만 확대하면 은행예금과 금융 안정이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디지털 화폐의 향후 경쟁력은 토큰화 예금의 신뢰와 스테이블코인의 개방성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연결하느냐에 달려 있단 생각이다.


정유신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 겸 AI디지털경제금융포럼 의장

정유신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 겸 AI디지털경제금융포럼 의장
정유신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 겸 AI디지털경제금융포럼 의장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 겸 AI디지털경제금융포럼 의장 정유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