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민택 교수의 D-엣지] 혁신의 3박자, 기술과 사업모델 그리고 정책

송민택 교수
송민택 교수

사람들은 신기술이 등장하면 세상이 곧 달라질 것이라고 기대한다. 인공지능(AI), 블록체인, 양자컴퓨팅, 휴머노이드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기술의 탄생과 혁신의 완성은 별개다. 뛰어난 기술이 시장에서 사라지기도 하고, 특별하지 않은 기술이 산업의 표준이 되기도 한다. 차이는 기술이 아니라 시장과 제도가 혁신을 수용하는 방식에서 갈린다.

기술과 사업모델, 정책은 따로 움직이지 않는다. 기술은 서비스를 만들고, 서비스는 새로운 사업모델을 요구한다. 사업이 현실화되는 순간 기존 법과 제도의 한계가 드러나고, 제도가 바뀌면 시장은 다시 확장된다. 혁신은 기술만의 서사가 아니라 기술과 사업모델, 정책이 서로를 변화시키는 공(共)진화의 과정이다. 병목은 대개 세 축의 속도가 어긋나는 순간 발생한다.

블록체인은 기술이 끊임없이 진화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초기에는 낮은 거래처리 속도, 확장성과 개인정보 보호의 한계를 안고 출발했지만, 영지식증명과 개인정보보호 강화 기술 등을 통해 꾸준히 발전하고 있다. 이제 경쟁력은 보안과 규제 준수, 시스템 연계를 안정적으로 구현하는 데 있다.

그러나 기술의 진화만으로 산업은 만들어지지 않는다. 다음 단계는 사업모델이다. 블록체인의 혁신은 토큰 발행이 아니라 지급결제 시장을 다시 설계하는 데 있다. 중개 단계를 줄이고 거래와 정산을 실시간으로 연결하는 것만으로는 산업이 만들어지지 않는다. 누가 인프라를 구축하고 운영하며, 어디에서 수익을 만들 것인지가 함께 설계돼야 한다. 기업이 살아남아야 기술도 살아남는다. 기업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시장이 예측 가능한 규칙 위에서 작동해야 한다.

사업모델이 모습을 드러내면 다음 과제는 정책이다. 올해 상반기 원화 스테이블코인 제도화를 둘러싼 논의는 활발했지만, 제도화는 제자리걸음이다. 기업이 부담스러워하는 것은 규제 자체보다 불확실성이다. 투자는 지연되고 서비스 출시는 늦어지고 있다. 기술보다 제도의 속도가 시장을 따라가지 못하는 모습이다. 기술이 준비돼도 제도가 제때 대응하지 않으면 혁신은 시장이 아니라 실증사업에 머물게 된다.

일부 지자체는 지역화폐에 스테이블코인을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지역화폐는 지역 소비를 늘리고 소상공인을 지원하는 정책으로 성과를 거둬왔다. 이제는 외부 소비와 관광, 민간 서비스까지 연결하며 지역경제의 범위를 넓히는 방향도 고민할 시점이다. 이를 위해서는 지급결제 비용을 줄이고 정산을 단순화하며, 스마트계약으로 지원 조건과 업종·지역별 인센티브를 자동 집행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중앙정부 차원의 법적 기반조차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 지자체가 독자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일에는 분명한 한계가 있다. 실증사업을 넘어 현장에 정착하기 위해선 법적 근거와 제도 정비가 먼저인 셈이다.

정책의 역할은 기술을 늦추는 데 있지 않다. 시장이 예측 가능한 규칙 속에서 혁신하고 경쟁할 수 있도록 제도를 설계하는 데 있다. 기업이 투자하고 새로운 서비스가 시장에 안착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 그것이 정책혁신의 본질이다. 정책은 기술과 사업모델을 뒤따라가는 규제가 아니라 혁신을 함께 설계하는 파트너가 돼야 한다.

최근 반도체 산업과 AI 데이터센터를 둘러싼 변화도 같은 원리다. 첨단 공정만으로 반도체 산업은 성장하지 않고, 우수한 AI 모델만으로 데이터센터도 완성되지 않는다. 전력과 용수, 네트워크, 투자, 인재, 제도가 함께 갖춰질 때 비로소 산업 생태계가 작동한다. 블록체인도 다르지 않다. 기술은 시장을 만들고, 기업은 이를 지속 가능한 사업모델로 연결하며, 정책은 시장이 신뢰 속에서 작동할 수 있는 질서를 설계해야 한다. 혁신은 더 이상 기술만의 경쟁이 아니다. 혁신의 성패는 기술과 사업모델, 정책이라는 세 박자의 속도를 얼마나 맞추느냐에 달려 있다.

송민택 한양대 경영전문대학원 겸임교수 pascalsong@hanyang.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