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공지능(AI)의 발전 속도가 무섭다. 문서 작성 보조와 단순 대화를 넘어 이제는 연구개발, 경영 의사결정, 심지어 군사 전략 수립까지 지원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머지않은 미래에는 화면 속 인공지능이 팔과 다리를 얻어 현실 공간으로 들어올 것이다. 이른바 '피지컬 AI' 시대의 서막이다. 테슬라의 옵티머스, 현대차의 아틀라스, 빠르게 성장하는 중국 로보틱스 기업들까지 글로벌 경쟁은 이미 본격화됐다. 그런데 이 대전환을 뒷받침할 통신 인프라에 대한 정책 논의는 아직 충분하지 않다.
로봇과 AI가 결합하는 순간, 통신 인프라는 단순한 데이터 통로를 넘어 실시간 판단과 움직임을 지원하는 핵심 기반이 된다. 가정용 서빙 로봇이 뜨거운 음식을 나르다 연결이 불안정해지거나, 산업용 협업 로봇이 순간적인 지연을 경험한다면 생산 차질은 물론 안전 위험도 커질 수 있다. 향후 대중화될 가정용·물류·원격 협업형 로봇의 상당수는 클라우드 AI와 공중 통신망을 기반으로 동작하게 된다. 대규모 AI 모델의 연산 비용과 전력 소비를 고려하면 클라우드 기반 운용은 상당 기간 불가피하고, 서비스 품질은 결국 네트워크의 신뢰성과 저지연 성능에 의해 좌우될 수밖에 없다.
망중립성 원칙은 트래픽의 동등 처리를 기본으로 한다. 통신망 사업자(ISP)가 인터넷 트래픽을 내용, 유형, 출처에 관계없이 모두 동등하게 처리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즉, 특정 콘텐츠를 차단하거나 속도를 조절하지 못한다. 이 원칙은 인터넷의 개방성과 혁신을 지켜온 토대였다.
그러나 피지컬 AI는 기존 서비스와 근본적으로 다른 요구를 한다. 수 밀리초의 지연도 허용되지 않는 실시간 제어 환경에서, 모든 트래픽의 기계적인 동일 처리를 고수하는 것이 최선인지 재검토가 필요하다. 국내 망중립성 제도는 '특수서비스' 개념을 통해 혁신의 제도적 기반을 마련해 두었는데, 이에 대한 인정 범위와 적용 절차를 더욱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로봇 맞춤형 초저지연 통신을 가능하게 하는 네트워크 슬라이싱 같은 기술을 활용하려 해도, 제도 해석의 불확실성이 상존하고 있다.
물론 인터넷의 개방성, 스타트업의 자유로운 시장 진입, 이용자 선택권 등은 지속 보호되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시점에서 필요한 것은 망중립성의 진화다. 미국은 망중립성 규제를 사실상 폐기해 시장 자율성을 택했고, EU는 원칙을 유지하면서도 특수서비스를 허용해 두 가치를 조화시켰다. 접근법은 달라도 공통점은 하나다. 이용자 맞춤형 혁신 서비스에 필요한 통신 품질을 제도가 가로막지 않도록 설계했다는 점이다.
국내 망중립성 제도도 기술 변화에 맞추어 한 단계 발전할 시점이다. 이용자의 다양한 품질 수요를 충족하고 혁신을 촉진할 수 있는 분야를 중심으로 특수서비스 범위를 명확화해야 한다. 동시에 이용자 품질 맞춤형 서비스 제공 과정에서 기업 규모에 따른 차별이 발생하지 않도록 공정성 원칙도 유지해야 한다. 망중립성의 핵심 가치는 여전히 유효하다. 그러나 기술과 시장이 바뀌면 제도도 유연하게 진화해야 한다. 피지컬 AI 시대의 경쟁력은 로봇과 AI 기술만이 아니라, 이를 뒷받침하는 통신 인프라와 제도의 준비 수준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모정훈 연세대 산업공학과 교수 j.mo@yonsei.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