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역사상 가장 파괴적인 자연재해 중 하나로 꼽히는 세인트헬렌스 산의 화산 폭발. 당시 과학자들이 생태 복원을 위해 시도했던 이색적인 실험이 40여 년이 지난 현재 극적인 변화를 이끌어냈다.
15일 미국 과학전문매체 파퓰러 메카닉스에 따르면 1980년 5월 발생한 대규모 폭발로 세인트헬렌스 산 주변 생태계는 완전히 황폐해졌다.
복구에 수백 년이 걸릴 것이라는 절망적인 전망이 지배적인 상황에서 과학자들은 독특한 해결책 하나를 내놓았다. 화산 폭발 3년 뒤인 1983년 5월, 척박한 부석 지대에 땅다람쥐 일종인 고퍼(Gopher)들을 방사한 것이다.
흔히 유해조수로 여겨지기도 하는 땅다람쥐를 투입한 이유는 토양의 물리적 순환을 기대했기 때문이다. 땅다람쥐들이 굴을 파고 들어가는 과정에서 화산재 아래 깊이 묻혀 있던 유익한 박테리아와 미생물이 포함된 옛 흙이 자연스럽게 표면으로 끌어올려 질 것이라는 예측이었다.

실험의 결과는 놀라웠다. 땅다람쥐를 투입하기 전까지 이 지역에서 발견된 식물은 겨우 12그루 남짓에 불과했다. 하지만 땅다람쥐들을 단 하루 동안 풀어놓은 지 6년 만에, 해당 구역에는 무려 4만 그루의 식물이 우거지며 녹화에 성공했다. 반면 땅다람쥐가 투입되지 않은 대조 지역은 수년이 지나도록 여전히 황량한 황무지 상태를 벗어나지 못했다.
더욱 극적인 사실은 단 하루 동안 진행되었던 이 방사 실험의 영향력이 40여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지속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학술지 프론티어스에 게재된 논문에 따르면 당시 땅다람쥐들이 퍼뜨린 미생물 군집, 특히 '균근균(mycorrhizal fungi·토양 곰팡이)'이 4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현지 토양에 살아남아 나무와 식물의 고속 성장을 돕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균근균은 나무가 솔잎 등에서 영양분을 원활하게 흡수하도록 돕는 필수 생물자원이다. 논문 공동 저자인 엠마 아론슨은 “어떤 곳에서는 나무들이 거의 즉시 다시 자랐다. 모두가 생각했던 것처럼 나무들이 모두 죽은 것은 아니었다”며 땅다람쥐로 인한 미생물의 활발한 활동 덕분에 황폐해진 화산재 지대에서도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숲의 재생이 이루어질 수 있었다고 봤다.
연구진은 이번 결과가 자연생태계 내에서 미생물이나 균류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존재들의 상호 의존 관계가 얼마나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지 증명하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설명했다.
서희원 기자 shw@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