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시론] 케이블TV, '방송판 알뜰폰' 상품 출시로 변곡점 만들자

노창희 디지털산업정책연구소 소장
노창희 디지털산업정책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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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TBC의 부도는 미디어 업계 관련자 모두에게 충격을 안겼다. 문제는 이 위기가 JTBC 한 곳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방송 생태계 전반에 짙게 드리워진 그림자라는 데 있다. 유료방송이 겪고 있는 어려움도 그에 못지않게 위중하다. 가입자는 계속 줄고 있고, 산업의 새로운 성장동력은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특히 케이블TV는 가입자 이탈이 지속되면서 수년째 감소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유료방송이 변곡점을 마련하지 못한 채 쇠퇴기로 접어든 데에는 낡은 규제 탓도 적지 않다는 점이 안타깝다.

국내 유료방송은 요금 규제와 채널 편성 규제 등으로 인해 상품 구성에 근본적인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었고, 이는 소비자가 유료방송 상품을 획일적으로 인식하게 만드는 구조적 제약으로 작용해왔다. 고가부터 중저가까지 다양한 선택지를 갖추고, 결합상품의 폭도 훨씬 넓은 통신산업과 비교하면 아쉬움이 클 수밖에 없다.

통신 분야에서는 알뜰폰이라는 대안이 존재한다. 정부는 통신시장에서 알뜰폰이 성장할 수 있도록 전파사용료 감면 등을 정책적으로 지원해 왔다. 그 결과 고가 요금제 중심의 통신 상품과 합리적인 가격의 알뜰폰이 공존하는 구도가 만들어졌고, 소비자의 선택권은 한층 넓어졌다. 반면 유료방송의 경우, 사업자와 가입자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수십, 수백 개의 채널을 특정 요금 대역 안에서 일괄적으로 제공하고 이용해야 한다. 이는 사업자에게도 부담이지만, 시청자의 선택권을 제약하는 결과로 이어져 왔다는 것이 문제다.

정부도 유료방송 규제 개선을 위해 그간 여러 시도를 해왔다. 관련 부처의 노력에도 좌절된 시도도 있었을 것이다. 지난 일을 되돌릴 수는 없지만, 지금이라도 규제 개선을 통해 유료방송이 혁신할 수 있는 정책 환경을 조성하고, 이를 바탕으로 시청자의 선택권을 넓혀줘야 한다.

방송산업의 규제 개선이 더딘 이유 중 하나는 이해관계자 간 입장이 첨예하게 갈리기 때문이다. 필자는 모든 유료방송에 적용되는 행위 규제를 모두 과감히 완화해 사업자의 부담은 덜고 이용자의 선택지는 늘리는 방향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다만 수많은 이해관계를 고려해야 하는 정부 입장에서 급격한 정책 전환은 현실적으로 쉽지 않을 것이다. 이를 감안하면,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이용할 수 있는 케이블TV를 대상으로 규제 완화를 먼저 실험해보는 방안을 검토해 볼 수 있다.

케이블TV는 IPTV에 비해 시장점유율이 현저히 낮아, 차별적 규제를 적용하더라도 시장 전체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제한적이다. 그만큼 정책 실험을 하기에 용이한 조건을 갖추고 있다. 게다가 케이블TV는 IPTV, 위성방송과 비교해 상대적으로 강한 규제를 받고 있어, 규제 형평성을 맞춘다는 차원에서도 규제 완화가 필요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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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방송산업이 처한 현실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더욱 절박하게 만든다. 디지털 콘텐츠 중심으로 동영상 소비가 재편되면서 방송광고 시장의 규모는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으며, 전통적인 광고 수익 기반은 갈수록 축소되고 있다. 동시에 유료방송 가입자 감소세는 뚜렷한 반전의 계기를 찾지 못한 채 이어지고 있어, 광고와 가입자라는 방송산업의 양대 수익 기반이 동시에 흔들리는 이중의 위기가 심화되고 있다.

이처럼 방송광고 매출 악화와 유료방송 가입자 이탈이 맞물리면서 국내 방송산업 전반의 재정적 기반이 잠식되고 있으며, 이는 콘텐츠 투자 여력 축소와 산업 경쟁력 약화로 이어지는 구조적 악순환을 낳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채널 편성과 요금 규제 등이 완화되지 못한다면 진정한 의미의 '실속형' 상품이 나오기 어렵다.

규제가 완화된다면 케이블TV는 8VSB를 비롯한 다양한 상품을 통해 이 문제에 접근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예를 들어, 채널 수와 구성을 유연하게 조정한 8VSB 상품에 OTT를 연계·결합함으로써, 다채널이 포함돼 있지 않은 기존 상품을 원하지 않는 시청자를 위한 새로운 상품 출시가 가능해진다. OTT 등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다양한 콘텐츠를 접하는 시청자 중 상당수는 다채널 패키지를 굳이 필요로 하지 않으며, 자신이 원하는 채널과 서비스만 골라 이용할 수 있는 가벼운 상품을 원하는 가입자도 적지 않다. 이와 같은 상품의 다양화는 고사 위기에 놓인 케이블TV가 지속 생존을 모색하는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시장 영향력이 작고 상대적으로 저렴한 케이블TV를 대상으로, 요금 규제와 채널 편성 규제 등 상품 구성에 관한 규제를 완화하는 자율화 실험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이렇게 되면 케이블TV 상품을 '방송판 알뜰폰'으로 제공하는 것이 가능해진다. 이는 방송 상품의 다양성을 높이는 동시에 규제 완화의 실효성을 확인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도 의미 있는 시도가 될 것이다. 나아가 이번 실험에서 축적된 경험은 향후 IPTV와 위성방송을 포함한 유료방송 전반의 규제 개선 논의에도 유용한 참고 사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방송 분야에는 개선해야 할 낡은 규제가 산적해 있지만, 짧은 기간에 모든 규제를 손보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케이블TV 상품 구성에 관한 자율화 정책 실험은 시청자가 더 저렴한 가격으로 원하는 상품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동시에, 고사 위기에 놓인 케이블TV가 반등의 모멘텀을 마련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이는 미디어 생태계의 지속가능한 발전과 시청자 복지 측면에서도 긍정적인 영향을 줄 것이라고 기대할 수 있다.

노창희 디지털산업정책연구소 소장

〈필자〉 디지털산업정책연구소에서 소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한국방송학회 총무이사, 미디어미래연구소 센터장 등을 맡아왔다. OTT에 대해 산업적인 측면과 문화적인 측면 등 다각적인 차원에서 관심을 가지고 연구하고 있다. '스트리밍 이후의 플랫폼' 'OTT 트렌드' '코로나19 이후의 한류' 등의 책을 집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