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 차이나] 관세만 피하는 공장이 아니다…중국이 수출하는 '산업 운영체계' 〈상〉 [박지민의 비욘드 차이나]

[테크 차이나] 관세만 피하는 공장이 아니다…중국이 수출하는 '산업 운영체계' 〈상〉 [박지민의 비욘드 차이나]
RCEP·일대일로·금융·희토류를 연결한 중국의 다핵 공급망

중국의 다음 수출품은 전기차나 배터리 한 개가 아니다. 태국의 전기차 공장, 사우디아라비아의 PC·서버 생산기지, 페루의 태평양 항만은 서로 다른 사업처럼 보인다. 그러나 지도를 겹쳐 보면 하나의 방향이 드러난다. 중국은 미국 시장을 대신할 단일 시장을 찾는 것이 아니다. 아세안에는 생산, 중동에는 자본과 에너지, 유럽에는 고부가 시장과 규칙, 아프리카와 중남미에는 자원·인프라·소비시장 기능을 나눠 배치한다. 중국 본토와 여러 해외 거점이 동시에 작동하는 구조다.

이를 '다핵 공급망'이라고 부른다. 중국 정부가 쓰는 공식 용어는 아니다. 미·중 갈등, 국내 가격경쟁, 신흥국 산업화, 중국 기업의 수익성 추구가 맞물려 만들어진 분석 개념이다. 중국이 세계화에서 후퇴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 중심의 수출 모델을 복수 생산·시장·자원 거점으로 재설계하고 있다는 뜻이다.

미국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위험을 나눈다

숫자는 방향을 보여준다. 2025년 중국의 상품무역은 약 6조6700억달러로 사상 최대였다. 중국 전체 교역에서 미국 비중은 2020년 12.6%에서 2025년 8.8%로 낮아졌다. 같은 기간 아세안은 14.7%에서 16.6%, 아프리카는 4.0%에서 5.5%, 중남미는 6.9%에서 8.6%로 높아졌다. 상위 10개 교역 상대국의 비중도 54.5%에서 47.7%로 떨어졌다.

이 수치를 '탈미국'으로 읽으면 과장이다. 미국은 여전히 최종 수요, 기술, 금융, 원산지 규칙을 통해 중국 기업의 해외 전략을 좌우한다. 다만 중국은 한 시장의 충격을 다른 시장과 생산거점으로 흡수하는 능력을 키우고 있다. 2025년 대미 수출이 20% 줄었지만 아세안은 13.4%, 아프리카는 25.8%, 유럽연합은 8.4% 늘어난 것이 그 결과다. 분리는 아니지만 집중도는 낮아졌다.

왜 지금 해외 진출인가. 첫째, 미국과 유럽의 관세·기술 통제가 중국 내 생산만으로 세계 시장을 상대하는 비용을 높였다. 둘째, 중국 내 수요 둔화와 가격 경쟁은 기업에 두 번째 이익원을 요구한다. 셋째, 신흥국 산업화와 도시화는 전력 설비·기계·자동차·통신·내구소비재 수요를 만든다. 넷째, 중국 기업도 저가 생산자가 아니라 브랜드·기술·서비스로 이익률을 높이는 다국적 기업이 되려 한다.

36Kr(36氪)는 최근 중국 기업의 해외 진출을 제품 판매에서 생산·연구개발·브랜드·운영·서비스를 함께 옮기는 '능력의 수출'로 설명했다. 소비재, 생산능력, 기술, 산업서비스가 동시에 나간다는 것이다. 21세기경제보도(21世纪经济报道)는 공급망이 '중국+1'에서 조달·생산·판매를 여러 국가에 나누는 '중국+N'으로 전환한다고 진단했다. 궈타이하이퉁증권(国泰海通证券)과 중신증권(中信证券)도 제품 수출에서 현지 생산, 유통채널, 브랜드, 독자 공급망으로 이동하는 '해외 진출 2.0'을 공통으로 짚는다. 일부 제조·기술업종에서는 해외 매출 총이익률이 국내를 웃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해외 진출이 관세 회피만이 아니라 수익성 전략이라는 의미다.

기업이 해외에서 확보하려는 자산도 세 갈래로 나뉜다. 첫째는 관세와 규제를 넘는 시장접근권이다. 둘째는 브랜드, 소프트웨어, 유지보수, 기술료처럼 제조 이후에 발생하는 고수익 매출이다. 셋째는 특정 국가의 제재나 물류 중단에도 생산을 이어갈 수 있는 회복력이다. 단순 수출은 주문이 끊기면 관계도 끝나지만, 현지 공장·인력·서비스망을 가진 기업은 현지 정부와 고객 이해관계 안으로 들어간다. 중국 기업이 '많이 파는 것'에서 '오래 운영하는 것'으로 목표를 바꾸는 이유다.

통상규칙과 생산거점을 동시에 깐다

중국 전략의 첫 번째는 통상규칙이다.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区域全面经济伙伴关系协定·RCEP) 핵심은 관세 인하만이 아니다. 회원국에서 조달한 원재료를 원산지 요건 산정 때 역내산으로 누적해 인정할 수 있는 규정이다. 중국 부품을 태국에서 조립하거나 한국·일본 부품을 중국과 베트남에서 가공하는 생산조합이 쉬워진다. 2025년 중국과 나머지 RCEP 회원국 교역은 약 2조300억달러였다.

여기에 중국·아세안 자유무역지대 3.0 업그레이드 의정서(中国—东盟自由贸易区3.0版升级议定书)가 겹친다. 2025년 10월 서명됐고 2026년 6월 현재 발효를 위한 비준 절차가 진행 중이다. 아직 발효됐다고 쓰면 안 된다. 기존 상품 관세 중심 협력을 디지털경제, 녹색경제, 공급망 연결, 표준·인증, 전자거래로 넓힌 것이 핵심이다. 중국 기업이 공장과 결제, 데이터, 물류를 하나의 사업으로 설계할 제도적 공간이 커진다.

두 번째는 물리적·디지털 거점이다. 일대일로(一带一路)는 대형 토목에서 손을 뗀 것이 아니다. 2025년 관련 건설계약과 투자는 민간 연구기관 집계로 2135억달러에 달해 역대 최대였다. 에너지·광물의 대형 사업과 의료·농업 등 현지 밀착형 사업이 함께 늘었다. 달라진 점은 항만과 철도만 짓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주변에 산업단지, 발전, 광물 가공, 공장, 데이터센터, 창고와 통관 시스템을 붙인다. 건설 계약뿐만 아니라 지분투자가 큰 비중을 차지해 준공 뒤 자산 운용과 기술 표준에도 관여한다.

철도·전력망·항만에 중국산 장비와 운영 소프트웨어, 데이터 형식, 통관 절차가 결합되면 영향력은 준공식에서 끝나지 않는다. 유지보수와 증설, 인력교육, 후속 조달이 같은 생태계 안에서 반복된다. 물리적 연결만큼 '규칙의 연결'이 중요한 이유다.

2024년 6월 기준 중국 기업이 구축한 해외 창고는 2500개를 넘었고, 2025년 국경 간 전자상거래 수출입은 약 4030억달러였다. 현지 배송, 설치, 수리, 반품, 전시, 판매데이터를 한 곳에 묶으면 창고는 시장을 읽는 운영거점이 된다. 동점과기(动点科技·테크노드)가 전한 중국 자율주행 기업 표현처럼 해외 경쟁은 '기술 표준, 현지 상황의 이해, 생태계 협력' 결합이다. 기술보다 규제 대응이 먼저인 시장도 있다.

제품이 아니라 기업 운영방식을 옮긴다

세 번째는 기업 현지화다. 완성품 회사 한 곳이 공장을 세우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부품사, 설비사, 물류사, 결제회사, 법무·회계회사와 소프트웨어 기업이 함께 이동한다. 본사는 핵심 연구개발과 주요 부품, 데이터 통제력을 유지하고 해외 거점은 조립·조달·판매·서비스와 현지 제품 개발을 맡는다. 중국 전체가 빠져나가는 것이 아니라 기능이 여러 지역으로 분산되고 다시 중국 본사와 연결된다.

여기서 중앙정부가 모든 투자를 지휘한다는 단순한 그림은 경계해야 한다. 중앙정부는 통상·금융·외교의 방향을 만들고, 지방정부는 지역 기업과 산업단지의 해외 진출을 지원한다. 기업은 국내 경쟁과 해외 수요에 따라 움직인다. 세 주체의 이해가 항상 일치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생산·공급망의 해외 배치, 무역과 투자 결합, 해외 위험관리라는 방향에서는 정렬되고 있다.

금융이 앞에 서고 희토류가 뒤를 받친다

네 번째는 금융과 공공서비스다. 2025년 중국의 대외 직접투자는 1744억달러로 7.1% 증가했고, 비금융 투자는 153개 국가·지역의 1만1048개 해외기업에 이뤄졌다. 중국수출신용보험공사(中国出口信用保险公司)는 같은 해 1조1000억달러를 인수하고 24만9000개 기업을 지원했다. 수출신용보험 인수액은 중국 전체 수출의 26.2%에 해당했다.

2026년 2월 가동된 국가 해외종합서비스 플랫폼(国家层面海外综合服务平台)은 법률·세무·금융·외교·무역·물류·통관 서비스를 260여개 항목으로 묶었다. 37개 전문 플랫폼과 100개가 넘는 해외 투자유치기관을 연결해 해외 법인 5만2000여곳을 지원한다. 2026년 7월 시행될 새 국외 투자 규정은 은행의 투자금융과 정책보험기관의 해외투자보험도 제도화한다. 중국의 강점은 보조금 한 종류가 아니라 정부·은행·보험·전문서비스가 진출 위험을 나눠 갖는 데 있다.

자금조달 방식도 수출대금과 은행 대출을 넘어 현지 법인 증자, 산업 펀드, 인수합병, 프로젝트 금융과 현지 자본시장으로 넓어진다. 기업이 공장을 세우기 전에 정부 간 협력과 정책보험이 위험을 줄이고, 공장이 자리 잡은 뒤에는 현지 투자자와 금융기관이 이해관계자로 들어오는 구조다.

결제망도 뒤따른다. 2025년 중국의 국경 간 위안화 결제 총액은 달러로 환산해 약 10조3600억달러였다. 위안화 국경 간 결제시스템(人民币跨境支付系统·CIPS)은 190개 국가·지역 5000여개 금융기관에 업무가 닿는다. 달러를 대체했다고 볼 단계는 아니지만, 중국 기업과 거래 상대가 환율·제재·결제 위험을 분산할 선택지는 넓어졌다.

다섯 번째는 전략 물자다. 중국은 2025년 4월 사마륨·가돌리늄·터븀·디스프로슘·루테튬·스칸듐·이트륨 등 7개 희토류 계열 품목에 수출허가제를 도입했다. 공식 이유는 국가안보와 비확산 의무다. 그러나 자동차·전자·방산 공급 차질은 허가 속도와 공급량이 통상협상에서 영향력으로 작동할 수 있음을 보여줬다. 시장과 협정을 열어 기업을 끌어들이는 동시에 핵심 소재에서는 통제력을 보유하는 구조다.

관세 회피로만 보면 오판한다

이 전략에 비용이 없는 것은 아니다. 미국은 제3국에서 최소 가공만 한 제품에 우회 수출 심사를 강화한다. 아세안·중동·아프리카 국가도 현지 고용, 조달, 세수, 기술 이전과 환경 성과를 요구한다. 유럽은 보조금, 탄소, 데이터, 노동 규제를 촘촘히 적용한다. 해외 사업이 늘수록 중국 기업은 중국 지원을 받는 기업인 동시에 현지 정치와 법률에 묶인 다국적 기업이 된다. 일대일로 사업도 부채상환, 환율, 정권교체, 지역사회 갈등을 피할 수 없다.

그럼에도 방향은 분명하다. 중국은 관세를 피해 공장 몇 곳을 옮기는 데 그치지 않는다. 통상규칙, 물리적·디지털 거점, 기업 현지화, 금융·공공서비스, 전략 물자라는 다섯을 연결한다. 경쟁 단위가 완성품에서 산업 운영체계로 바뀐 것이다.

따라서 중국을 읽는 지표도 수출액 하나로는 부족하다. 어느 나라에 공장을 짓는지, 협력업체가 몇 곳 따라가는지, 현지 조달률과 연구개발 인력이 얼마나 되는지, 어떤 은행·보험·항만·창고·결제망이 붙는지, 중국 기술 표준이 채택되는지를 함께 봐야 한다. 이 지표가 한 지역에서 동시에 움직일 때 그곳은 판매시장이 아니라 중국 공급망의 새로운 핵이 된다.

다음 편에서는 이 다섯 전략이 아세안, 중동, 유럽, 아프리카, 중남미, 한국과 일본에서 어떻게 다르게 조합되는지 살펴본다. 중국의 세계전략은 하나의 복제모델이 아니라 지역별 기능을 배분한 포트폴리오다.

김현민 기자 minki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