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크 차이나] 아세안은 생산, 중동은 자본, 유럽은 규칙…중국 공급망 세계지도 〈하〉 [박지민의 비욘드 차이나]

[테크 차이나] 아세안은 생산, 중동은 자본, 유럽은 규칙…중국 공급망 세계지도 〈하〉 [박지민의 비욘드 차이나]
지역별 실행 방식과 한국이 설계해야 할 다섯 가지

중국의 해외전략은 지역마다 다르다. 통상규칙, 산업거점, 현지화, 금융, 전략물자라는 도구는 같지만 조합이 다르다. 아세안은 생산·소비, 중동은 자본·에너지·프로젝트, 유럽은 고부가 시장·규칙, 아프리카는 자원·산업화, 중남미는 자원·물류·디지털 소비, 한국과 일본은 기술·부품·서비스 비중이 크다.

미국도 이 지도밖에 있지 않다. 최종 수요, 첨단기술 통제, 원산지·우회수출 심사로 전체 조건을 정한다. 중국은 미국을 대체할 시장을 찾기보다 지역별 기능을 포트폴리오처럼 배분해 미국발 충격을 흡수한다.

아세안은 중국 밖 첫 공동생산권

아세안은 중국과 지리적으로 가깝고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区域全面经济?伴关系协定·RCEP) 원산지 누적 규정을 활용할 수 있다. 태국은 자동차, 인도네시아는 니켈·배터리, 말레이시아는 전자·반도체와 데이터센터, 베트남은 전자 조립과 수출제조 강점을 갖는다. 중국 기업은 한 국가를 택하기보다 여러 나라에 조달·가공·조립·판매 기능을 나누는 방향으로 움직인다.

비야디(比亚迪) 태국 공장은 그 전형이다. 약 4억9000만달러를 투입해 연간 15만대 생산능력을 갖췄다. 완성차만 조립하는 것이 아니라 배터리와 부품기업을 함께 끌어들이고 태국 내수와 주변국 수출을 동시에 겨냥한다. 태국이 유치한 전기차 공급망 투자는 2025년 중반 기준 40억달러를 넘었다.

그러나 각국 정부는 값싼 우회 기지를 원하지 않는다. 태국은 보조금 수혜 기업 생산·수출 의무를 조정했고, 인도네시아는 니켈 생산량과 가격정책을 강화했다. 미국도 최소 가공 상품 우회 수출 심사를 높인다. 지속 가능한 모델은 '중국+라벨 변경'이 아니라 현지 부품·인력·연구개발·세금으로 가치를 만드는 '중국+현지 산업'이다.

중동은 자본과 생산능력을 맞바꾼다

중동은 원유 공급처에서 자본·인공지능·클라우드·전기차·신재생에너지 시장으로 확대됐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제조업 현지화와 내수시장, 아랍에미리트는 금융·물류와 지역본부의 성격이 강하다. 중국과 걸프협력회의 자유무역협정은 2004년 협상을 시작했지만 2026년 6월 현재 타결되지 않았다. 값싼 중국산 수입이 사우디의 제조업 육성을 약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핵심 쟁점 가운데 하나다.

중국은 협정의 빈자리를 국부펀드, 합작회사, 산업단지와 현지생산으로 메운다. 레노버그룹)联想集团)은 사우디 국영 투자회사 알랏에서 20억달러 규모 무이자 전환사채 투자를 받고 리야드에 중동·아프리카 본부와 PC·서버 생산기지를 구축하고 있다. 자본을 받는 대신 생산능력, 일자리, 연구개발과 브랜드를 현지에 심는 거래다.

36Kr(36氪)가 추적한 중국 기업들은 현지 파트너, 정부조달, 자국민 고용, 데이터 현지 보관과 규제 대응을 핵심 조건으로 꼽는다. 중동은 자금이 풍부한 만큼 현지화 조건도 강한 시장이다. 국가 산업정책의 일부가 돼야 장기 수주를 확보할 수 있다.

유럽은 화해보다 품목별 거래

유럽은 중국 기업에 구매력과 브랜드 프리미엄을 주지만 가장 까다로운 규칙도 부과한다. 유럽연합은 중국산 전기차에 기존 관세와 별도로 비야디 17.0%, 지리자동차(吉利汽车) 18.8%, 상하이자동차그룹(上海汽车集团) 35.3% 상계관세를 적용한다. 중국 기업이 유럽에서 살아남으려면 수출가격만 낮출 것이 아니라 현지 생산, 탄소·보조금·데이터 규제, 유럽 협력업체와 관계를 함께 설계해야 한다.

최근 정상외교도 포괄적 관계 개선보다 선택적 거래에 가깝다. 2026년 1월 당시 키어 스타머 영국 총리 방중 때 중국은 스카치위스키 관세를 10%에서 5%로 낮췄다. 영국 정부가 추산한 5년간 효과는 2026년 6월 23일 환율로 약 3억3000만달러다. 법률·금융서비스 시장 접근도 확대됐다.

2월 중국을 찾은 프리드리히 메르츠 독일 총리는 자동차·기계의 시장 접근, 무역 불균형과 희토류 공급을 제기했다. 독일 정부는 중국의 에어버스 항공기 120대 추가 주문을 방중 성과로 제시했다. 2025년 12월 중국을 방문한 프랑스 인사는 총리가 아니라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었다. 양국은 항공·원전·인공지능·농업을 논의했고, 원전 연료공급·장비 제조·우라늄 안보와 소형모듈 원전 연구까지 협력 범위를 넓혔다.

협력 뒤에는 분쟁이 공존한다. 중국은 일부 유럽산 브랜디 업체의 최저가격 약정을 받아들였고, 그 밖의 업체에는 27.7~34.9% 반덤핑관세를 확정했다. 돼지고기에는 4.9~19.8%, 유제품에는 7.4~11.7%의 최종 무역구제 관세를 부과했다. 이를 전기차 관세의 공식 보복으로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자동차, 항공기, 주류, 농축산물, 희토류가 같은 협상판 위에 올라왔다는 점은 분명하다. 유럽과 중국은 관계를 복원하는 것이 아니라 품목별 이해를 교환하고 있다.

아프리카는 무관세와 산업화를 묶는다

중국은 2026년 5월부터 수교한 아프리카 53개국의 전 품목에 원칙적으로 무관세를 적용했다. 33개 최빈개도국은 2024년 12월부터 혜택을 받았고, 나머지 20개국에는 2026년 5월 1일부터 2028년 4월 30일까지 전 세목 0% 우대세율을 적용한다. 장기 제도화를 위해 '공동발전을 위한 경제동반자협정' 협상도 병행한다. 단순한 영구 관세협정으로 이해하면 안 되는 이유다.

2025~2027년 중국·아프리카 협력 포럼 금융지원 틀은 약 528억달러다. 신용 공여 약 308억달러, 원조 약 117억달러, 중국 기업 투자 최소 103억달러로 구성된다. 도로·항만뿐 아니라 산업단지, 전력, 디지털망, 농업기술, 광물 가공과 현지 일자리를 묶는다. 무관세는 아프리카산 농산물과 가공품의 중국 시장 진입을 열고, 중국 투자는 그 상품을 현지에서 생산·가공할 기반을 만든다는 구상이다.

관세가 사라져도 검역, 품질인증, 냉장 물류, 금융과 전력이 부족하면 수출은 늘지 않는다. 중국산 완제품 수입이 더 빠르게 늘면 무역 불균형이 심해질 수 있다. 성패는 자원 확보보다 현지에 가공 능력, 고용과 세수를 얼마나 남기는지에 달려 있다.

중남미는 항만·광물·플랫폼을 잇는다

중국과 중남미·카리브의 교역은 2024년 약 5185억달러였다. 중국은 2025년 역내 국가에 약 97억달러의 신용 공여를 제시하고 청정에너지, 인공지능, 5세대 이동통신, 사이버보안 협력을 확대했다. 중남미는 중국에 구리·리튬·농산물·에너지를 공급하고 중국에는 전기차·가전·통신·전자상거래·핀테크의 성장시장이다.

페루 찬카이항은 양방향 구조를 보여준다. 중국 국유 해운기업이 주도한 항만과 광저우 직항로는 운송 기간을 약 30일, 물류비를 약 20% 줄이는 것이 목표다. 중국 상품이 남미로 들어가는 입구이자 광물·농산물이 중국으로 나가는 출구다. 36Kr가 말한 '현지화 원년'도 공장만이 아니라 결제, 배송, 사후서비스, 현지 고용과 규제 대응을 포함한다.

미국 영향력도 여전히 크다. 특히 멕시코는 미국·멕시코·캐나다협정 원산지 규정과 우회 수출 심사에 직접 노출된다. 중국은 브라질·페루 등 남미 거점과 미국 시장 연계 거점을 구분해 접근한다.

한국과 일본은 협력과 경제 안보가 겹친다

한국과 일본은 저비용 생산기지가 아니라 반도체, 배터리 소재·장비, 자동차부품, 정밀기계, 금융·콘텐츠·서비스가 오가는 고부가가치 인접망이다. 2025년 3월 5년여 만에 열린 한·중·일 통상장관회의에서는 RCEP 이행과 한·중·일 자유무역협정 협상 촉진에 합의했다. 그러나 자유무역협정은 2012년 협상 개시 이후 실질적 진전이 제한적이다. 협력 의제와 경제 안보 갈등이 동시에 존재한다는 뜻이다.

2026년 6월 22일부터 26일까지 베이징에서 진행되는 한중 자유무역협정 서비스·투자 후속 협상은 금융을 포함한 서비스와 투자 개방을 다룬다. 6월 23일 현재 협상 중이므로 결과를 단정해서는 안 된다.

희토류는 협력 경계를 보여준다. 중국은 2025년 일부 품목에 수출허가제를 시행했고, 2026년 5월 일본의 터븀·디스프로슘·이트륨 수입은 사실상 멈췄다. 한국은 중국과 비상 연락망을 강화하면서 조달처 다변화와 재활용·대체기술을 추진한다. 동북아에서는 교역 확대와 의존도 축소가 동시에 진행된다.

한국이 설계해야 할 다섯 가지

첫째, 정부는 국가별 수출통계가 아니라 '기능별 공급망 지도'를 만들어야 한다. 중국 공장, 동반 진출한 협력업체, 현지 조달률, 항만·창고, 정책금융, 기술 표준, 핵심 광물 지분을 함께 추적해야 한다. 통상협상, 정상외교, 공적개발원조와 산업 협력을 '한국형 시장진입 패키지'로 묶을 전담 체계도 필요하다.

둘째, 대기업은 판매법인 중심의 해외 진출을 지역 운영모델로 바꿔야 한다. 아세안은 생산·조달, 중동은 국부펀드와 프로젝트, 유럽은 연구개발·인증, 아프리카와 중남미는 자원·현지 가공·유통으로 역할을 나눠야 한다. 중소 협력업체가 함께 들어갈 산업단지, 공동 물류·정비, 현지 인재 육성까지 포함해야 한다. 현지 고용과 공급업체 육성은 비용이 아니라 시장접근권을 사는 투자다.

셋째, 금융은 공장 완공 뒤 담보대출을 제공하는 단계에서 벗어나야 한다. 정책금융, 상업은행, 보험사, 연기금이 사업개발 초기부터 지분투자, 프로젝트금융, 수출신용, 정치적 위험보험, 환헤지와 공급망 금융을 결합해야 한다. 중동 국부펀드와 현지 개발은행에는 공동투자 플랫폼으로 접근하고, 협력업체에는 모기업 신용과 장기구매계약을 활용한 자금을 제공해야 한다.

넷째, 중국과 기술협력과 경제 안보를 분리 설계해야 한다. 소비재, 헬스케어, 녹색 전환, 물류처럼 공동시장이 가능한 분야는 협력하되 반도체, 인공지능, 배터리, 전략 광물은 원산지·데이터·지식재산권·수출통제를 계약 단계부터 구획해야 한다. 핵심 광물은 광산 지분만 확보해서는 부족하다. 제련·분리·소재·자석·재활용과 장기구매, 비축, 가격 보전 장치를 함께 갖춰야 한다.

다섯째, 해외 진출 성과지표를 수주액과 수출액에서 바꿔야 한다. 해외 매출 이익률, 현지 조달률, 반복수주, 기술료·소프트웨어·정비 매출, 규제 위반 건수, 공급 중단 뒤 복구시간을 측정해야 한다. 이사회 차원에서는 국가별 정치·환율·제재 시나리오와 철수 기준까지 정기적으로 점검해야 한다.

중국 강점은 어느 한 기업이 크다는 데 있지 않다. 정부의 협정과 외교, 기업의 제조·플랫폼, 금융 위험 분담, 물류와 결제, 전략물자 통제가 같은 방향으로 움직인다는 데 있다. 한국도 기업에 해외 진출을 독려하는 수준을 넘어 기술·금융·통상·외교를 묶은 운영체계를 만들어야 한다.

앞으로의 경쟁은 제품 대 제품이 아니다. 누가 더 많은 거점을 갖고 있는가도 아니다. 지역마다 다른 규칙과 이해관계를 연결하면서도 핵심 기술과 현금흐름을 지킬 수 있는 시스템 대 시스템의 경쟁이다. 한국의 다음 공급망 전략은 중국을 피할 것인가, 따라갈 것인가 선택이 아니라 중국과 협력할 영역, 경쟁할 영역, 반드시 독립해야 할 영역을 정교하게 나누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김현민 기자 minki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