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참석자 1300여명, 논문 478편으로 역대 최대 규모를 기록한 '2026 한·유럽 과학기술학술대회(EKC 2026)'가 프랑스 툴루즈에서 나흘간의 일정을 마치고 폐막했다. 인공지능(AI)과 양자기술, 우주항공, 기후테크 등 미래 전략기술을 중심으로 한국과 유럽의 공동 연구 가능성을 확인했다. 유럽 연구기관과 기업들이 한국을 전략적 기술협력 파트너로 인식하는 변화가 뚜렷해지면서, 학술 교류를 넘어 공동 연구개발(R&D)과 글로벌 연구 네트워크 확대 발판을 마련했다.
프랑스한인과학기술협회와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가 공동 주관한 EKC 2026은 20일부터 23일(현지시간)까지 프랑스 툴루즈 피에르 보디스 컨벤션센터에서 'AI가 주도하는 과학기술의 미래(AI-Driven Future of Science and Technology)'를 주제로 열렸다.
행사에는 한국과 유럽 연구자와 기업인, 학생, 정부·공공기관 관계자 등이 대거 참석했다. 등록자는 980명(가족 동반 1300여명)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으며, 한국에서만 432명이 참가했다. 발표 논문은 모두 478편으로, 구두 발표 362편과 포스터 발표 116편이 진행됐다. AI를 중심축으로 양자기술, 우주항공, 차세대 태양광, 기후·에너지 등 미래 전략기술을 폭넓게 다뤘다.
이종욱 프랑스한인과학기술협회장은 “AI는 이제 특정 산업이 아니라 모든 과학기술 분야의 기반이 되고 있다”며 “AI와 양자 특별세션은 물론 우주항공과 에너지 분야까지 미래 기술 전반을 아우르는 프로그램을 구성했다”고 설명했다.

가장 큰 관심은 호라이즌 유럽(Horizon Europe) 세션에 쏠렸다. 한국이 지난해 호라이즌 유럽 준회원국으로 참여한 이후 열린 EKC인 만큼 실제 과제 수주 경험을 가진 전문가들이 제안서 작성과 컨소시엄 구성, 평가 대응 전략 등을 공유했다.
이 회장은 “단순히 연구 성과를 발표한 것이 아니라 실제 현장에서 수차례 과제를 준비하고 선정·탈락을 경험하며 축적한 노하우를 전달했다”며 “강연 시간이 부족해 질문이 이어질 정도로 참가자들의 관심이 뜨거웠다”고 말했다.
한국 연구기관의 유럽 진출 의지도 수치로 확인됐다. 한국 참가자가 전체 등록자의 44%를 차지한 것은 유럽 현지 연구자와 기관을 직접 만나 공동 연구를 추진하려는 수요가 그만큼 커졌음을 보여준다는 설명이다.
이 회장은 “호라이즌 유럽이라는 거대한 연구 프로젝트가 시작되면서 한국 기관들의 관심이 매우 높아졌다”며 “한국 연구자들이 유럽 연구자들을 직접 만나고 협력하려는 흐름이 앞으로 EKC의 중요한 방향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대회에서는 연구 협력뿐 아니라 인재 교류도 확대됐다. 한국과학창의재단은 유럽에서 활동하는 박사후연구원과 박사과정 학생 100명을 대상으로 국내 연구기관과 채용 연계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국내 대학과 프랑스 대학 간 고등교육 협력 프로그램도 함께 진행돼 차세대 연구자 교류 기반을 넓혔다.

개최지인 툴루즈의 산업 생태계를 활용한 프로그램도 참가자들의 호응을 얻었다. 참가자 약 150명은 에어버스 생산시설을 방문해 글로벌 항공기 제조 공정을 직접 살펴봤다. 이 회장은 “참가자들이 유럽 항공우주 산업의 경쟁력을 현장에서 이해하는 계기가 됐다”면서 “툴루즈는 항공우주 산업의 중심 도시인 만큼 한국의 사천·진주와 같은 항공우주 클러스터에도 좋은 참고 모델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회장은 이번 EKC를 통해 한국과 유럽의 기술협력 환경이 근본적으로 달라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예전에는 유럽이 한국을 협력 대상으로 크게 주목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먼저 손을 내미는 구조로 바뀌고 있다”며 “유럽은 반도체와 제조기반 기술이 강한 한국을 반드시 필요한 전략적 파트너로 인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유럽은 현대 과학기술의 원천 경쟁력을 갖고 있지만 AI와 첨단 제조 분야에서는 새로운 협력 파트너가 필요하다”며 “중국과 비교하면 한국은 기술협력에 따른 위험이 상대적으로 낮고, 반도체와 생산기술 경쟁력까지 갖춰 유럽 입장에서 매우 매력적인 국가”라고 평가했다.

재외 과학기술인 네트워크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이 회장은 “한국이 과학기술 강국으로 성장한 배경에는 해외에서 연구한 인재들이 귀국해 산업과 연구를 이끈 역할이 컸다”며 “재외 과학기술인 지원은 단기 정책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유럽에서 활동하는 젊은 연구자들이 현지에서 성장하고 다시 한국과 연결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유럽 한인과학기술단체의 중요한 역할”이라며 “이번 EKC는 선진국 한국의 위상에 걸맞은 국제 학술행사를 만들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행사였다”고 강조했다.

툴루즈(프랑스)=
이준희 기자 jhlee@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