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신 기간 부모의 생활습관보다 가정의 경제적·사회적 여건이 자녀의 장기적인 건강에 더 큰 영향을 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24일(현지시간) 영국 엑서터대 젬마 샤프 박사 연구진은 의학 저널 PLOS 메디신(PLOS Medicine)에서 영국과 노르웨이에서 태어난 부모와 자녀 약 23만명을 대상으로 한 자료를 분석한 결과, 부모의 흡연·음주·카페인 섭취보다 가족의 사회경제적 지위(SEP)가 자녀의 건강 상태와 더욱 뚜렷하고 지속적인 관련성을 보였다 발표했다.
연구진은 이번 결과가 영국과 노르웨이에서 진행된 가족 추적 연구를 바탕으로 한 연관성 분석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아동의 건강을 향상시키기 위한 정책과 개입은 부모 개개인의 생활습관을 바꾸는 데만 집중하기보다 사회경제적 격차를 완화하는 방향으로 확대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건강과 질병의 발달기원설(DOHaD)'은 태아기와 생애 초기의 환경이 이후 평생의 건강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개념이다. 지금까지 관련 연구는 임신 전후 어머니의 환경과 생활습관, 특히 산모의 행동이 태아에게 미치는 영향에 주로 초점이 맞춰져 왔다.
그러나 연구진은 어머니의 건강 관련 행동이 가정의 사회경제적 조건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을 뿐 아니라 아버지의 생활습관과 아이가 태어난 뒤의 성장 환경과도 연관될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이 같은 요소들이 자녀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종합적으로 살핀 연구는 상대적으로 부족했다는 설명이다.
연구진은 영국과 노르웨이에서 1991년부터 2008년 사이 태어난 부모와 자녀를 장기간 관찰한 4개 대규모 코호트 연구의 자료를 합쳐 분석했다. 분석 대상은 최대 23만2139명에 달했다.
부모의 임신 중 흡연과 음주, 카페인 섭취 여부를 비롯해 교육 수준과 직업 등을 토대로 산출한 사회경제적 지위와 자녀의 건강 상태를 비교했다. 자녀의 건강은 출생 직후부터 11세까지 총 72개 지표를 통해 평가했으며, 출생 당시 신체 크기와 체질량지수(BMI), 정신건강, 행동 특성, 사회적 의사소통 능력, 혈압, 알레르기 등이 조사 항목에 포함됐다.
그 결과 부모의 흡연·음주·카페인 섭취가 자녀 건강 전반에 광범위하거나 큰 영향을 준다고 볼 만한 증거는 확인되지 않았다. 어머니의 생활습관이 아버지의 행동보다 자녀의 건강에 지속적으로 더 큰 영향을 준다는 근거 역시 나타나지 않았다.
72개 건강 지표 가운데 부모의 흡연과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관련성이 확인된 경우는 6%였으며, 음주는 3%, 카페인 섭취는 0.4%에 그쳤다.
반면 사회경제적 여건이 열악한 가정의 경우 자녀 건강 지표와 유의미한 연관성을 보인 비율이 15%로 나타났다. 이는 부모의 흡연·음주·카페인 섭취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다.
샤프 박사는 “가정의 사회경제적 취약성은 부모의 흡연이나 음주, 카페인 섭취보다 자녀의 부정적인 건강 결과와 더 꾸준하게 연결돼 있었다”며 “아이들이 성장하는 사회적·경제적 조건이 임신 중 부모의 특정 생활습관보다 건강에 더 큰 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이어 “어머니와 아버지의 흡연·음주·카페인 섭취는 자녀의 건강과 거의 비슷한 수준의 관련성을 나타냈다”며 “이는 임신 기간의 행동뿐 아니라 가족이 처한 사회적 환경과 생활 여건 역시 아이의 건강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라는 점을 보여준다”고 덧붙였다.
이원지 기자 news21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