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 속 미생물이 만들어낸 물질이 혈액을 거쳐 뇌까지 이동해 신경 염증을 억제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장내 미생물과 면역, 뇌를 연결하는 작동 원리를 규명한 연구로 향후 다발성경화증 등 자가면역질환의 새로운 치료 전략 개발에 활용될 전망이다.
한국연구재단은 이윤경 순천향대 교수와 김봉수 이화여대 교수 공동연구팀이 사람 유래 장내미생물 '베이요넬라 라티 균주'가 장내 미생물 생태계를 건강하게 회복시키고, 이 과정에서 생성된 항염증성 대사산물(DOPE)이 뇌의 염증을 억제하는 작동 원리를 동물모델에서 규명했다고 29일 밝혔다.
다발성경화증은 면역세포가 뇌와 척수를 공격해 염증과 신경 손상을 유발하는 대표적인 자가면역질환이다. 현재 치료제는 면역기능 저하에 따른 부작용과 재발 위험이 있어 새로운 치료법 개발이 필요한 상황이다.
최근에는 장내미생물이 면역계와 뇌를 연결하는 '장-뇌 축'의 핵심 조절 인자로 주목받고 있다. 하지만 장내 미생물들의 상호작용이 어떤 물질을 만들고, 이 물질이 신경 염증을 어떻게 조절하는지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연구팀은 다발성경화증 환자의 장내에서 감소하는 것으로 알려진 베이요넬라 속 미생물에 주목했다.
사람의 장에서 분리한 베이요넬라 라티 균주를 다발성경화증 동물모델에 투여, 이 균주의 기능과 작용기전을 분석했다.
그 결과 해당 균주는 다른 장내 미생물과의 상호작용을 촉진해 장내 생태계를 건강한 방향으로 재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과정에서 항염증 대사산물인 DOPE의 생성이 크게 증가했고, 생성된 DOPE는 혈액을 통해 뇌까지 전달되는 것을 확인했다.
DOPE는 특히 뇌와 척수의 염증을 감소시켰는데, DOPE만 단독으로 투여한 추가 실험에서도 다발성경화증 증상이 개선됨을 확인했다.
다만 이번 연구는 동물모델에서 장내미생물과 미생물 유래 대사산물의 작용기전을 규명한 연구로, 인체에서 동일한 효과와 안전성이 확인된 것은 아니다. 연구팀은 향후 사람 대상 임상 연구를 통해 개인별 장내미생물 구성에 따른 반응 차이와 DOPE 생성 메커니즘을 보다 정밀하게 규명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윤경 교수는 “장내 미생물 간 상호작용으로 생성된 대사산물이 뇌 면역반응을 조절하는 새로운 작동 원리를 규명한 연구”라며, “향후 다발성경화증뿐 아니라 알츠하이머병, 파킨슨병 등 다양한 신경염증성 질환의 마이크로바이옴 기반 치료기술 개발에도 중요한 과학적 근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 성과는 의생명과학 분야 국제학술지 EMM에 14일 온라인 게재됐다.
이인희 기자 leeih@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