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산 획득 패러다임이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다. 지금까지 무기체계 획득은 긴 개발기간, 막대한 비용, 기술 경직성을 감수하더라도 높은 성능과 신뢰도, 그리고 기존 체계와의 통합을 최우선 가치로 삼아 왔다. 그러나 이제 전장의 승패를 좌우하는 것은 값싸고, 빠르고, 유연한 기술이다. 수백만달러 무기체계를 수백달러짜리 드론이 위협하고, 몇 년에 걸쳐 개발한 장비보다 몇 주 만에 업데이트되는 인공지능(AI) 소프트웨어(SW)가 더 큰 전투력을 만들어 낸다.
한국의 방산은 오랫동안 국가가 요구사항을 제시하면 체계기업이 구현하는 방식으로 발전해 왔다. 국가의 요구사항이 명확할 때 이 시스템은 매우 효율적이다. 미사일, 전차, 구축함, 전투기와 같은 대형 무기체계는 강력한 시스템 통합 능력이 필요하며, 체계기업 중심의 수직적 공급망은 여전히 효과적 방식이다.
그러나 미래 안보는 더 이상 정답이 있는 문제가 아니다. AI, 드론, 자율주행, 사이버, 우주, 양자기술 등은 정부조차 미래의 요구사항을 정확히 정의하기 어렵다. 어떤 기술이 승자가 될지, 어떤 기업이 혁신을 만들지 누구도 알 수 없다. 목표가 명확하면 계획에 기반한 실행이 효율적이지만, 목표 자체가 불확실할 때는 시장 경쟁에 기반한 탐색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것이 인류 역사의 확실한 교훈이다.
세계 방산 혁신은 이미 이러한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스타트업으로 시작한 팔란티어의 시가총액이 대표 방산 기업인 제너럴 다이나믹스, 록히드 마틴, 노스롭 그루먼 삼사의 총합을 넘어선 지 오래다. 이제 방산 혁신은 계획된 연구개발 과제에서 탄생하기보다 수많은 스타트업의 실험과 실패 속에서 등장한다. 정부는 기술의 승자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도전자가 경쟁할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드는 역할을 해야 한다.
미국이 이를 가장 잘 보여준다. CIA는 비영리투자회사인 In-Q-Tel을 통해 안보기술 스타트업에 투자했고, 국방부는 국방혁신단인 DIU와 미 공군 기술혁신기관인 AFWERX를 통해 민간 혁신기업을 국방 분야로 끌어들이는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그 결과 팔란티어, 안두릴, 스페이스X와 같은 기업이 국가안보의 핵심 기업으로 발전했다.
대한민국도 이제 방산혁신을 이끌 '신안보 혁신기업'을 육성해야 한다. 방산기업 지원책은 이미 존재한다. 그러나 안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AI, 드론, 로봇, 우주, 사이버보안 스타트업들에게 방위산업의 진입장벽은 여전히 높다.
신안보 혁신기업은 방산 경험이 없어도, 군 출신이 아니어도 된다. 국가안보 문제 해결에 관심과 기술이 있다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부처간 칸막이도 허물어야 한다. 국방부만으로는 방산 혁신을 만들 수 없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원천기술을, 중소벤처기업부는 창업과 투자를, 국방부는 실증과 수요를 담당해야 한다.
앞으로도 체계기업은 대한민국 방위산업의 핵심축이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체계기업은 국가가 정의한 목표를 완성하는 역할을 맡고, 신안보 혁신기업은 아직 정의되지 않은 미래를 탐색하는 역할을 맡아야 한다. 계획과 시장, 체계기업과 스타트업이라는 두 개의 엔진이 함께 돌아갈 때 대한민국의 방산 경쟁력은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6월 26일 청와대에서 열린 '미래신안보 혁신기업 육성전략' 회의에서 참석자 발언을 듣고 있다. [청와대통신사진기자단]](https://img.etnews.com/news/article/2026/06/26/rcv.YNA.20260626.PYH2026062611280001300_P2.jpg)
최근 대통령 주재로 열린 '미래 신안보 혁신기업 육성 전략회의'는 이러한 변화의 방향을 제시했다. 시장 반응성 제고를 위한 신속조달체계 구축, 민간 아이디어 활용을 위한 민군 협력 강화, 방산 스타트업 지원을 위한 한국형 In-Q-Tel 설립, 범정부 협력체계 구축 등이 이 회의의 핵심 과제로 논의됐다. 이는 방산 혁신을 국가 전략으로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보여주는 신호다.
1990년대 후반 벤처 육성정책이 수많은 혁신기업의 성장을 이끌었다. 작년 기준 시가총액 1조원 이상으로 성장한 유니콘 기업의 수가 27개라고 한다. 이제 그 성공 경험을 안보 분야로 확장해야 한다. 이번 정부 업무보고를 계기로 미래 신안보 혁신기업 육성정책이 속도감있게 추진되어 K방산 유니콘 기업을 탄생시키는 마중물이 되기를 기대한다.
윤봉규 국방대 운영분석/군수경영학과 교수 bkyoon1@gmail.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