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획부터 예산 편성, 본사업 착수까지 수년이 소요되는 낡은 조달 시스템이 공공 인공지능(AI) 확산의 걸림돌로 지목되고 있는 가운데, 수개월 단위로 급변하는 생태계에 맞춰 개념검증(PoC) 중심의 발주 제도를 전면 도입해야 한다는 제안이 나왔다. 전통적인 소프트웨어(SW)와 다른 AI 고유의 불확실성과 품질 특성을 반영해 예산·계약·대가 체계를 혁신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10일 이주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국회에서 개최한 '공공 AI 도입을 통한 국가 AI 대전환 촉진 국회 토론회'에서 발제를 맡은 김우제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는 공공 AI·SW의 신속한 도입을 위한 '공공 AX 가속화를 위한 발주제도 혁신 방안'을 발표하며 단계별 제도 개선안을 제시했다.
김 교수는 현행 공공 발주 시스템이 AI처럼 기술 혁신이 빠른 분야에 적합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공공 기관이 신기술을 도입하려면 500억원 이상 사업의 경우, 정보화전략계획(ISP) 수립부터 예비타당성조사, 정보시스템마스터플랜(ISMP), 본사업까지 최대 4년 이상이 소요되는데 이런 경직된 조달 방식은 사업이 끝나기도 전에 적용 기술을 구식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대안으로 PoC 기반의 발주 체계 혁신을 제안했다. 그는 “AI는 기존 정보 처리 시스템처럼 스펙대로 개발한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품질이 핵심이며 불확실성이 높다”며 PoC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김 교수는 △PoC 완료 사업에 대한 ISP 및 ISMP 면제 △PoC 성공 시 추가 입찰 없이 곧바로 본사업 계약으로 전환하는 '조건부 연계 발주(계속계약)' 허용을 제안했다. 예산 체계 역시 부처별 심의로 장기간 허비하는 구조를 깨고 정부 차원의 '공공 AI 선도 도입 예산 풀'을 사전 편성해 PoC 통과 시 즉시 집행할 수 있는 총액예산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짚었다.

실패에 대한 보호장치 필요성도 강조했다. 김 교수는 “불확실성이 높은 혁신 사업 특성상 목표 성능에 미달하더라도 부실 수행이 아님이 인정되면 책임을 묻지 않는 '성실 실패 인정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며 “그래야 담당 공무원과 기업이 감사의 공포에서 벗어나 과감하고 도전적인 시도를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사업 대가 체계의 개선과 관련해서는 기능점수(FP) 체계 탈피 필요성을 강조했다. 김 교수는 “예를 들어 암 진단 AI 솔루션을 개발할 때 입력과 출력을 기준으로 기존 FP 방식을 적용하면 1000만원도 안 되는 터무니없는 개발비가 산정된다”며 “내부 연산과 복잡도가 높은 AI 소프트웨어에 대해서는 예외적으로 맨머스(M/M)를 설정하는 등 AI 특성을 온전히 반영할 수 있는 다층적 대가 체계로 개편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날 행사를 주관한 한국IT서비스산업협회 신정호 회장은 “AI 시대에는 국민이 원하는 서비스를 얼마나 빠르고 유연하게 제공하느냐가 국가 경쟁력을 좌우한다”며 “기술 혁신뿐 아니라 AI 서비스의 특성을 반영한 발주와 계약 제도도 함께 변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주희 의원은 “오늘 제시된 PoC 중심의 제도 개선 제안들이 공공 AI 혁신을 앞당기는 실질적인 정책과 입법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국회도 적극 뒷받침하겠다”고 말했다.
최호 기자 snoop@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