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시설과 장비 등 인프라 구축에 대규모 예산이 투입되는 '구축형 연구개발(R&D)' 사업이 심사 단계에 돌입한다. R&D 사업에 대한 예비타당성조사(예타)가 폐지되며 도입된 제도로, 연구 현장 수요를 중심으로 과제를 설계하는 것이 핵심이다. 정부는 경제성 검증 기조에서 벗어나 전 주기 사업 관리체계로 과제 성공 가능성을 높인다.
과학기술정책연구원(STEPI)과 한국과학기술단체총연합회는 최근 '현장 수요 기반 구축형 R&D 기획 수요 발굴 콘퍼런스'를 개최했다. 한국물리학회, 한국우주과학회, 대한전자공학회 등 9개 학회가 물리, 바이오, 우주과학·천문, 원천기술 등 분야에서 도출한 R&D 과제를 발표했다.

구축형 R&D는 총사업비 1000억원, 국비 500억원 이상의 대형 연구시설·장비, 공간 조성, 우주 체계 구축 등 사업을 말한다. 총사업비 500억원 이상 R&D 사업에 일괄 적용되던 예타가 올해 2월 폐지되면서, 사전점검이 필요한 분야를 구축형 R&D로 새롭게 분류했다. 기존 R&D 예타 제도는 불확실성이 높은 R&D에 경제적 기준을 내세우면서, 통과에만 평균 4년 이상 걸려 핵심기술 개발의 걸림돌로 작용한다는 비판을 받았다.
구축형 R&D는 세계 입자물리학자가 모여 10년 이상의 장기 연구 과제와 발전 전략을 상향식으로 논의하는 미국 고에너지물리학회의 '스노우매스' 모델을 지향한다. 이번에 제안된 차세대 중성미자 망원경, 국가양자물질연구센터, 한국인 질환 예측 인공지능(AI) 플랫폼, 우주 데이터 연구소 등은 모두 각 학회에서 내부 제안과 우선순위 선정 절차를 거쳤다.
제출된 구축형 R&D 과제는 상·하반기 연 2회 실시하는 '사업 추진 심사'에서 승인 여부를 결정한다. 이번 과제 역시 올해 11월경 열리는 심사위원회에서 논의에 오를 가능성이 높다. 심사위는 기존 경제성 논리가 아닌 계획의 구체성과 실현 가능성 등을 중점 평가하기로 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요건 검토와 심사 기간을 합하면 총 10개월이 걸릴 것으로 예상했다.
추진 심사를 통과한 과제는 기본 설계 적합성 심사와 실시 설계 적합성 심사를 실시한다. 기술 성숙도와 설계 수준 등이 요구 조건을 충족해야 다음 단계로 진입할 수 있도록 해 과제 부실 위험을 최소화하겠다는 취지다.

총사업비 500억원 이상 1000억원 미만 '연구형 R&D' 과제는 사전 검토 방식으로 시간은 줄이고 완성도는 높인다. 매년 11월~다음 해 3월 사이에 과제의 필요성과 사업의 구체성, 중복성, 규모 적정성 등을 따지고, 각 부처의 예산 요구 여부를 결정한다. 5개월간의 점검을 마치면 즉시 예산이 반영되는 만큼 기존 예타 방식에 비해 기간이 크게 단축된다. 과기정통부는 사전 기획 점검이 단순히 당락 여부를 따지는 것이 아니라 보완 사항 제시로 사업 완성도를 높이는 데 초점을 두기로 했다.
STEPI 관계자는 “연구 현장의 합의를 바탕으로 구축형 R&D 사업이 시행될 수 있도록 각 학회 제안서 수렴 절차를 거쳤다”면서 “각 부처 필요에 맞는 R&D 과제로 수행되도록 지속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송윤섭 기자 sys@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