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업 자동화 논의의 무게중심이 빠르게 이동하고 있다. 자동화는 더 이상 “일손을 덜어주는 도구”의 문제가 아니라, 기업이 일하는 방식 전체를 다시 설계하는 문제가 되었다.
불과 몇 해 전까지 자동화란 규칙이 명확한 반복 업무를 소프트웨어로 대체하는 일, 즉 RPA의 영역이었다. 그러나 지금 기업 현장에서 실제로 병목을 만드는 업무는 그런 형태가 아니다. 계약서를 읽고 쟁점을 추려내는 일, 해외 규제의 변경 사항을 번역하고 해석해 사내 문서와 프로세스에 반영하는 일, 여러 부서의 검토 의견을 취합해 결론을 내리는 일처럼 판단과 문서, 시스템, 사람이 뒤엉킨 복합 업무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 자동화의 질문이 “무엇을 자동화할 것인가”에서 “누가 복합 업무를 실제로 끝까지 자동화할 수 있는가”로 바뀐 이유다.
현장의 병목은 대개 기술의 부재가 아니라 연결의 부재에서 발생한다. 업무는 여러 시스템과 여러 담당자를 거치며 끊어지고, 그 사이의 대기 시간이 전체 처리 시간을 결정한다. 기존 RPA는 정형화된 구간에서는 빠르지만 예외를 만나면 멈춰 선다. 반대로 범용 생성형 AI는 비정형 업무에 유연하게 대응하지만, 기업 보안과 근거 없는 정보 생성의 위험 때문에 밀도 높은 실무 영역에 그대로 투입하기 어렵다. 한쪽은 유연성이, 다른 한쪽은 신뢰성이 부족한 셈이다.
Hyper Automation(초자동화)은 이 두 결핍을 동시에 메우려는 접근이다. AI와 RPA, 머신러닝, 프로세스 분석 기술을 결합해 기업의 업무 흐름을 지능적으로 분석·식별하고, 이를 완전 자동화·최적화하는 체계를 뜻한다. 단계로 보면 개별 작업 단위의 자동화에서 출발해 프로세스 단위의 자동화, 데이터와 맥락을 이해하는 지능형 자동화를 거쳐, 업무 전반을 연결하고 조율하는 초자동화로 이어진다. 단계가 올라갈수록 문제의 성격은 “어떤 도구를 도입할 것인가”에서 “운영 체계를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로 바뀐다.
연구자의 시각에서 어떤 기업이 초자동화 역량을 갖췄는지 판별하는 기준은 비교적 분명하다. 첫째, 흩어진 업무를 인식하고 구조화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 여러 시스템과 부서를 넘나드는 흐름을 하나의 시나리오로 조율할 수 있어야 한다. 셋째, 사람이 판단해야 하는 지점과 AI가 처리해야 하는 지점을 정확히 나눌 수 있어야 한다. 여기에 하나를 더한다면 원천 기술의 보유 여부다. 자체 파운데이션 모델과 자연어 처리 기술을 직접 보유한 기업은 도메인 데이터에 맞춰 모델을 조정하고 폐쇄망 환경에서 운용할 수 있어, 앞서 지적한 보안과 정확성의 제약을 구조적으로 풀어낼 여지가 크다.
국내에서는 대기업군의 삼성SDS와 함께, 스타트업군에서 자체 파운데이션 모델과 자연어 처리 원천 기술을 기반으로 기업별 업무 환경에 맞춘 초자동화를 구현해 온 페르소나AI가 대표 사례로 거론된다. 페르소나AI는 이러한 접근을 HAX(Hyper-automation AI Transformation)라는 이름으로 단계화하고 있는데, 그 궤적은 초자동화가 어떻게 확장되는지를 보여주는 하나의 표본에 가깝다.
국내 최초의 AI 클라우드 컨택센터를 통해 상담과 예약, 사후 처리에 이르는 고객 관리 전 과정을 자동화한 AICC 단계, 단순 정보 제공을 넘어 문서 분석과 데이터 처리, 고객 응대 같은 복잡한 프로세스를 AI가 직접 수행하는 실행형 AI(Executable AI) 단계, 그리고 인터넷과 GPU 없이 동작하는 경량화 엔진을 앞세워 로봇과 하드웨어 기기까지 자동화 범위를 넓히는 피지컬 AI 단계가 그것이다.
상담 영역이 초자동화의 출발점이 되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상담에는 비정형 자연어 이해, 시스템 조회, 후속 처리, 그리고 예외 상황 대응이 하나의 흐름 안에 모두 들어 있다. 가장 까다로운 조건이 압축돼 있는 만큼, 여기서 검증된 구조는 문서 중심 업무, 승인 중심 업무, 검토 중심 업무처럼 유사한 패턴을 가진 영역으로 비교적 낮은 비용에 이식될 수 있다. 초자동화 기업의 경쟁력이 특정 고객사 한 곳의 성공이 아니라 재사용 가능한 구조에서 나온다고 말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렇다면 도입을 검토하는 기업은 무엇을 물어야 하는가. 기술 데모가 아니라 지표를 물어야 한다. 업무 처리 시간이 얼마나 줄었는지, 사람의 개입 없이 종결된 업무의 비율이 얼마인지, 예외가 발생했을 때 담당자에게 전달되는 맥락의 품질이 어떤지, 검토 결과의 편차가 줄었는지, 그리고 같은 구조를 다른 부서에 적용할 때 구축 기간이 얼마나 단축되는지가 핵심이다. 이 숫자들이 나올 때 비로소 기술은 사업적 가치로 전환된다.
다만 초자동화는 솔루션을 구매하는 것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실패하는 프로젝트에는 공통점이 있다. 업무 표준이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자동화를 얹거나, 데이터가 부서별로 흩어진 채 남아 있거나, 자동화된 결정의 책임 소재가 정해지지 않은 경우다. 초자동화는 현업의 업무 지식을 시스템의 언어로 옮기는 작업이므로, 현업 담당자가 설계 단계부터 참여해야 하고 예외 처리 규칙과 사람의 개입 지점을 명시적으로 문서화해야 한다. 기술 공급자의 역량만큼이나 도입 기업의 준비도가 성패를 가른다는 뜻이다.
산업 전체의 관점에서 보면, 원천 기술을 보유한 국내 기업이 이 영역에서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의미를 갖는다. 초자동화는 기업의 가장 민감한 데이터와 의사결정 흐름을 다루는 만큼, 모델과
데이터를 외부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구조는 장기적으로 취약하다. 나아가 소프트웨어 영역을 넘어 로봇과 설비로 자동화가 확장되는 피지컬 AI 단계에 이르면, 경량화와 온디바이스 추론 같은 엔지니어링 역량이 곧 경쟁력이 된다. 제조와 물류, 대면 서비스 비중이 큰 우리 산업 구조에서 이 확장은 특히 중요한 함의를 지닌다.
결국 초자동화는 특정 기술 스택의 이름이 아니라 기업 운영 방식의 재설계다. 사람을 대체하는 기술이 아니라, 사람의 판단을 가장 값어치 있는 지점에 다시 배치하는 기술이라는 뜻이다.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거듭 강조하는 것도 다르지 않다. 모델의 성능 지표를 읽는 능력만큼이나, 업무의 흐름을 읽고 어디를 자동화하고 어디에 사람을 남길지 설계하는 능력이 중요해지고 있다. 시장이 던진 질문에 데모가 아닌 운영의 결과로 답하는 기업이, 다음 단계의 기준을 만들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