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진흥법에 따라 대한민국 사진산업에 대한 실태조사가 완료되면 우리는 처음으로 사진산업의 모습을 객관적인 데이터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사진과 관련된 사업체가 얼마나 존재하는지, 몇 명이 사진으로 일하고 있는지, 분야별 시장은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사진 전공자들은 어디로 진출하고 있으며 기업들은 어떤 인력을 필요로 하는지 등이 조사될 것이다. 지금까지 경험과 추정에 의존해 이야기했던 사진산업을 숫자와 데이터로 확인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변화다.
그러나 실태조사의 진정한 가치는 보고서가 발간되는 순간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정부가 그 결과를 기본계획과 예산에 반영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사진가와 기업, 대학과 학생들이 자신의 진로와 사업을 결정하는 데 그 데이터를 사용하지 않는다면 실태조사의 효과는 절반에 머물 수밖에 없다. 국가가 산업의 지도를 만들어 주었다면 이제 그 지도에서 자신의 위치와 앞으로 갈 길을 찾아내는 것은 현장의 몫이다.
예를 들어 20년 동안 광고와 제품사진을 촬영해 온 사진가가 있다고 생각해 보자. 오랜 경험과 촬영기술, 스튜디오와 장비까지 갖추고 있지만 거래처가 줄고 촬영단가도 낮아졌다. 생성형 AI까지 등장하면서 앞으로 광고사진 시장이 어떻게 될지 불안하다. 지금까지라면 주변 사진가들의 상황과 비교해 보거나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시장을 판단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국가 실태조사가 축적되기 시작하면 훨씬 객관적인 판단이 가능해진다.
사진가가 실태조사에서 확인해야 할 것은 광고시장 규모의 추이와 더불어 기업의 이미지 제작비가 어디로 이동하고 있는지, 제품 이미지와 전자상거래 시장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산업용 이미지와 AI 학습데이터 분야에서는 어떤 수요가 생기고 있는지까지 함께 살펴봐야 한다. 만약 전통적인 광고촬영 수요는 감소하는 반면 일정한 요구와 규격을 갖춘 대량 이미지 데이터 제작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는 결과가 나온다면, 그 순간 기존에 가지고 있던 경험을 새로운 관점에서 비추어 볼 수 있다.
제품사진을 오랫동안 촬영한 사람에게 정확한 색 재현과 조명, 재질 표현, 반복 촬영과 대량 파일 관리는 너무 익숙한 일이어서 특별한 기술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다른 산업의 관점에서 보면 바로 그것이 전문성이 될 수 있다. 자신의 기술을 버리고 전혀 다른 직업으로 옮겨가라는 것이 아니라, 지금까지 사진시장에서 사용하던 능력을 새로운 수요가 발생하는 산업과 연결하는 기회를 찾는 것이다. 실태조사가 현장에 주어야 할 가장 중요한 정보가 바로 이런 '연결과 확장의 가능성'이다.
그래서 사진인은 실태조사를 볼 때 현재 가장 큰 시장이 어디인가만 확인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어디에서 변화가 시작되고 있는지를 찾아야 한다. 시장 규모가 크더라도 계속 축소되고 있는 분야와 아직 규모는 작지만 빠르게 성장하는 분야는 미래 가치가 전혀 다르다.
지역별 데이터를 활용하면 더 구체적인 전략도 가능하다. 대한민국의 모든 사진가가 서울의 광고와 콘텐츠 시장만 바라볼 수는 없다. 제조업이 집중된 지역에서는 기업의 제품과 생산공정, 산업기록과 이미지 데이터 수요가 존재할 수 있고, 바이오와 의료산업이 성장하는 지역에서는 연구와 기록을 위한 새로운 이미지 수요가 나타날 수 있다. 농업이 발달한 지역이라면 스마트농업과 생육기록, 관광산업이 중요한 지역이라면 지역 이미지 자산과 콘텐츠 구축이 새로운 시장이 될 수 있다. 국가 실태조사가 분야별 통계뿐 아니라 지역별 산업과 사진 수요까지 보여준다면 지역 사진가는 자신이 사는 곳에서 새로운 시장을 발견할 수 있다.
사진을 전공하는 학생과 청년 사진인에게는 실태조사가 더욱 중요하다. 지금까지 사진을 전공하면 어떤 일을 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우리가 보여준 직업의 지도는 넓지 않았다. 작가가 되거나 스튜디오에 취업하고, 광고·패션·웨딩사진을 하거나 프리랜서로 활동하는 것이 대표적인 진로로 인식되어 왔다. 그러나 사진을 기반으로 일하는 사람들을 실제로 조사하면 기존의 직업분류에서는 잘 보이지 않았던 다양한 진로가 나타날 가능성이 있다.
기업의 이미지 담당자나 디지털 아카이브 전문가, 산업 촬영과 이미지 품질관리, 공간정보와 3차원 이미지 제작, 이미지 데이터 관리와 같은 직무에서 사진적 전문성을 가진 사람들이 활동하고 있다면 그 사실을 데이터로 보여줘야 한다. 청년들은 단순한 취업률보다 어떤 역량을 가진 선배들이 어느 산업으로 이동하고 있는지를 볼 수 있고, 대학에 다니는 동안 무엇을 추가로 공부해야 하는지도 판단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실태조사는 산업통계인 동시에 새로운 세대를 위한 진로지도가 된다.
사진기업에도 데이터는 강력한 자산이 될 수 있다. 새로운 사업을 기획할 때 가장 어려운 질문은 언제나 “그 시장이 실제로 존재하는가”이다. 사진 분야에서는 그동안 객관적인 산업자료가 부족했기 때문에 사업계획을 세우면서도 개인의 경험이나 해외자료에 의존해야 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국가 실태조사가 정기적으로 축적되면 시장 규모와 성장률, 기업 수, 기술 도입률, 인력 부족 분야 등을 근거로 사업을 설명할 수 있다. 금융기관이나 투자자를 설득할 때도 활용할 수 있고, 정부의 창업지원이나 연구개발 사업에 참여할 때도 시장의 필요성을 설명하는 객관적인 근거가 된다. 경험에서 출발한 아이디어가 데이터와 만나는 순간 하나의 사업계획으로 발전할 수 있는 것이다.
대학도 마찬가지다. 사진교육의 미래를 논의하면서 “AI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거나 “산업과 연계해야 한다”는 추상적인 주장만 반복해서는 교육과정을 실제로 바꾸기 어렵다. 졸업생들이 어느 분야로 이동하고 있는지, 어떤 직무의 채용이 감소하고 있으며 어떤 분야에서 새로운 인력 수요가 생기는지, 기업이 사진 전공자에게 요구하는 능력이 무엇인지를 데이터로 확인해야 한다. 그 결과를 바탕으로 촬영이라는 사진의 기본기를 유지하면서도 색 관리와 데이터 관리, 저작권, 디지털 워크플로, 산업사진 등 현장에서 필요한 역량을 교육과정에 연결할 수 있다.
사진협회와 단체의 역할도 달라질 수 있다. 그동안 사진계가 정부에 정책을 요구할 때 “사진계가 어렵다”거나 “지원이 부족하다”는 방식으로 현실을 설명하는 경우가 많았다. 현장의 어려움을 전달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그것만으로 정책의 우선순위를 설득하기는 쉽지 않다. 실태조사가 축적되면 특정 분야의 종사자가 몇 년 동안 얼마나 감소했는지, 청년 진입률이 어떻게 변했는지, 반대로 어떤 산업에서는 사진 전문인력이 부족한지를 근거로 제시할 수 있다. 그러면 요구의 내용도 “지원을 늘려 달라”에서 “이 분야에서 이런 문제가 확인됐으므로 향후 3년간 이러한 인력양성과 전환교육이 필요하다”는 정책 제안으로 발전한다.
이런 의미에서 사진산업 실태조사는 한 번 시행하고 끝나는 행정조사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일정한 기준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조사해야 산업의 변화가 보이고, 사진인도 매년 그 결과를 자신의 일과 비교할 수 있다. 기업이 결산을 통해 경영상태를 확인하고 사람이 건강검진을 통해 몸의 변화를 살펴보듯, 사진가도 객관적인 산업데이터를 통해 자신이 서 있는 시장의 상태를 정기적으로 점검할 필요가 있다.
실태조사 결과가 발표되면 사진가는 적어도 몇 가지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져볼 수 있을 것이다. 내가 활동하는 시장은 실제로 성장하고 있는가, 아니면 축소되고 있는가. 내 고객이 지출하던 비용은 어느 분야로 이동하고 있는가. 새롭게 등장하는 직업과 기술 가운데 내가 가진 경험과 연결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내가 활동하는 지역에서는 어떤 산업이 성장하고 있으며 그곳에서 사진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가. 그리고 앞으로 3년 동안 나는 무엇을 더 배워야 하는가.
사진진흥법이 사진인에게 가져올 중요한 변화는 지원사업 하나가 더 생기는 것만이 아닐 것이다. 어쩌면 더 큰 변화는 대한민국 사진인이 처음으로 자신의 미래를 경험과 감각만이 아니라 객관적인 산업데이터를 바탕으로 판단할 수 있게 된다는 데 있을지도 모른다.
정부는 실태조사를 통해 정책을 만들 것이다. 대학은 교육을 바꾸고 기업은 새로운 사업을 찾을 것이다. 그러나 사진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그 데이터 안에서 자신의 다음 위치를 발견하는 일이다. 시장이 모두 변한 뒤 뒤늦게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변화가 시작되는 신호를 먼저 읽고 자신의 경험과 기술을 그곳에 연결할 수 있어야 한다.
실태조사가 대한민국 사진산업의 현재를 보여주는 지도라면, 그 지도 위에서 자신의 다음 길을 찾아 나서는 것은 결국 사진인의 몫이다.
강종진 전 사진산업진흥법제정위원회 위원장 jongjean@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