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2일 중국 베이징 국가스피드스케이팅경기장에서 제2회 세계 휴머노이드 로봇 운동회가 막을 올렸다. 로봇 2000여대가 대열을 맞춰 입장했고 성화 점화와 선수 선서까지 로봇이 맡았다. 100m를 9초39에 끊은 로봇도 나왔다. 우사인 볼트의 세계기록 9초58보다 빠른 기록이다. 사람의 몸을 닮은 기계가 사람의 기록을 넘어선 순간이다.
이번 대회에는 16개국 666개 팀이 로봇 2056대를 데리고 왔다. 1년 전 첫 대회와 비교하면 로봇 수가 네 배로 불었다. 종목은 26개에서 51개로 늘었는데 그 상당수가 달리기가 아니라 부품 조립, 상품 진열, 소방 구조 같은 실전 과제다. 핀셋으로 콩을 집고 병뚜껑을 따는 로봇 손 시험도 등장했다. 겉모습은 운동회지만 속은 거대한 채용 시험장이다. 경기장에서 이긴 로봇이 그대로 공장과 호텔로 걸어 들어가는 구조다.
올해 상반기 전 세계에 출하된 휴머노이드의 97%가 중국산이었다. 중국은 연간 10만대 생산 능력을 이야기한다. 드론 시장에서 이미 겪어본 일이다. DJI 한 회사가 세계 민간 드론 시장의 70%를 쥐는 동안 다른 나라들은 구경만 했다. 취미용 촬영기로 시작한 드론은 이제 농약을 치고 물류를 나르고 전쟁터까지 날아다닌다. 시장을 내준 대가는 산업 하나를 통째로 잃는 것이었다. 휴머노이드에서 같은 장면이 반복되고 있다.
챗봇이 화면 속의 인공지능(AI)이라면 휴머노이드는 몸을 얻은 AI다. 사람의 공간에서 사람의 도구를 그대로 쓰는 기계이기에 별도의 설비 교체 없이 사람의 일을 넘겨받을 수 있다. 그래서 AI 경쟁의 종착역은 휴머노이드라는 말이 나온다. 저출산으로 일할 사람이 줄어드는 우리에게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공장과 농촌, 요양 현장에 사람 대신 세울 존재가 필요하다.
한국도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삼성전자는 휴보를 만든 레인보우로보틱스를 자회사로 들였고, 현대차그룹은 보스턴다이내믹스의 아틀라스를 2028년부터 공장에 투입할 계획이다. LG전자는 가정용 휴머노이드를 준비하고 있다. 정부도 K휴머노이드 연합을 띄워 2030년까지 1조원 투자를 약속했다. 손발에 해당하는 하드웨어는 세계 수준에 근접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문제는 두뇌에 해당하는 피지컬 AI와 양산 규모다. 중국이 연 수만대를 찍어내는 동안 우리는 연 1000대 양산을 2029년 목표로 잡고 있다.
이 격차를 좁혀본 경험이 우리에게는 있다. 1970년대 현대는 남의 차를 뜯어보고 배우는 리버스 엔지니어링으로 포니를 만들었다. 포항의 용광로도, 울산의 도크도 남의 도면을 익히며 출발했고 그 힘으로 중화학공업 국가에 올라섰다. 잘하는 쪽을 베끼고 따라 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 검증된 추격 전략이다. 분해 심층분석을 하고, 부품 공급망과 양산 공정을 연구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한다.
추격에는 구심점이 필요하다. 1999년 흩어져 있던 항공 부문을 한데 모아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을 세웠기에 초음속 훈련기 T-50이 나왔고, 폴란드 하늘을 나는 FA-50 수출과 KF-21 개발까지 이어졌다. 휴머노이드에도 같은 설계가 필요하다. 가칭 한국휴머노이드공사(公社)를 세워 연구개발과 부품 국산화, 실증과 수출 금융까지 한 기관이 책임지고 끌고 가게 하자는 것이다. 개별 기업이 감당하기 어려운 감속기, 구동기, 로봇 손 같은 핵심 부품 개발도 공사가 발주자가 돼 끌어줄 수 있다. 출범 초기에는 정부가 마중물을 대고 궤도에 오르면 민간에 넘기면 된다.
내년 베이징의 시상대에 태극마크를 단 로봇이 서 있을지, 아니면 관중석에서 손뼉만 치고 있을지 주목된다. 드론에서 놓친 10년을 휴머노이드에서 되풀이할 수는 없다. 그 답은 지금 우리가 무엇을 세우느냐에 달려 있다.
김경진 전 국회의원 2016kimkj@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