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연구팀이 비싼 분광기 없이 카메라로 촬영한 영상만으로 생체분자를 정밀하게 검출하는 '메타표면 바이오센서'를 개발했다. 병원에 가지 않고도 손바닥 위 작은 칩과 카메라만으로 질병 신호를 읽어낼수 있어 현장 진단형 바이오센서 플랫폼 개발에 청신호가 켜졌다.
노준석 포스텍(POSTECH) 기계공학과 교수 연구팀은 최근 분광기가 없어도 카메라 한대로 질병을 찾아내는 초소형 휴대형 메타표면 바이오센서를 개발했다고 26일 밝혔다. 연구성과는 최근 국제 학술지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에 실렸다.
바이오센서는 질병 진단부터 감염병 검사, 암 표지자 검출, 유전자 분석까지 두루 쓰이는 '건강의 파수꾼'이다. 그중에서도 빛을 이용하는 광학 바이오센서는 특별한 장점이 있다. 생체분자가 센서 표면에 달라붙을 때 생기는 미세한 빛의 변화를 읽어내, 별도의 형광 표지 물질을 붙이지 않고도 분자를 곧바로 검출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미세한 변화를 정밀하게 알아내려면 고해상도 분광기와 넓은 파장의 광원이 필요한데, 크고 비싼기때문에 병원 밖으로 들고 나가기 어려웠다.

연구팀은 발상을 뒤집어 분광기가 하던 일을 '카메라 사진 한 장'이 대신하도록 만들었다. 열쇠는 '연속 기하학적 구배 메타표면'이라는 특수한 칩이다. 원리는 이렇다. 나노 구조를 칩 위에서 한 방향으로 조금씩 변화시켜, 위치마다 서로 다른 빛의 파장에 반응하도록 설계한 것이다. 마치 피아노 건반이 자리마다 다른 음을 내듯, 칩의 각 지점이 저마다 다른 빛에 반응하는 셈이다.
여기에 하나의 파장을 내는 작은 레이저를 비추면, 그 빛과 딱 맞아떨어지는 지점에서 빛이 통과하지 못해 카메라 영상에 '어두운 선'이 나타난다. 생체분자가 센서 표면에 달라붙으면 주변 환경이 미세하게 바뀌며 이 선의 위치가 슬쩍 이동한다. 이 선이 얼마나 움직였는지를 일반 카메라 센서로 촬영해 분석하는 것만으로 생체분자의 결합 신호를 정확하게 읽어냈다. 분광기 없이 오직 사진 분석만으로 검출에 성공한 것이다.
성능도 뛰어났다. 센서는 300마이크로미터(㎛), 머리카락 몇 가닥 굵기의 작은 영역 안에서 넓은 측정 범위와 0.1나노미터(㎚) 수준의 정밀한 판독 능력을 동시에 구현했다. 실제 단백질과 DNA 검출 실험에서는 수백 피코몰(1조분의 1몰 수준)이라는 극미량까지 잡아냈고, 특정 유전자 서열을 골라내는 것도 가능함을 입증했다.

이번 기술은 크고 비싼 분광기와 광원 대신 작은 레이저와 카메라만 있으면 된다는 것이 장점이다. 실험실에 묶여 있던 정밀 진단 장비를 손에 들고 다닐 수 있는 크기로 줄일 길이 열린 것이다. 연구팀은 이 센서가 앞으로 감염병 진단, 암 표지자 검출, 유전자 분석, 그리고 피 한 방울로 질병을 찾는 액체 생검 등 다양한 현장 진단에 활용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노준석 교수는 “메타표면의 높은 광학 감도와 카메라 기반 이미징 판독 단순성을 결합해, 기존 분광기 기반 바이오센서 한계를 극복한 사례”라며 “향후 소형화·저비용화가 가능한 현장진단형 바이오센서 플랫폼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번 연구는 과기정통부/한국연구재단 글로벌융합연구지원사업, 과기정통부 대통령과학장학금, 보건복지부의 재원을 통한 한국보건산업진흥원 K-헬스미래추진단의 한국형ARPA-H프로젝트 사업 등의 지원으로 수행됐다. 포스텍 기계공학과 김홍윤 박사, 화학공학과 통합과정 윤희창·정세빈 씨 연구팀이 이효민 포스텍 화학공학과 교수팀, 유용상 고려대 바이오의공학부 교수팀이 연구에 참여했다.
포항=정재훈 기자 jho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