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년 1월 가상자산 소득 과세 시행을 앞두고 국내 투자자의 해외 이탈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국내 거래소의 거래대금이 연초보다 급감한 가운데 해외 거래소와 개인지갑으로 옮겨간 가상자산이 최근 5년간 700조원에 달한다는 민간 분석까지 나오면서다.
최근 국회 국민동의청원 게시판에 따르면 지난 21일 공개된 '코인과세 2년 유예에 관한 청원'에는 2만1800명 이상이 동의했다. 청원인은 세제와 과세 인프라, 산업 제도를 먼저 정비한 뒤 과세해야 한다며 시행 시점을 2년 더 미뤄달라고 요구했다.
현행 소득세법에 따르면 내년 1월 1일부터 가상자산을 양도하거나 대여해 얻은 소득은 기타소득으로 분리과세된다. 한 해 발생한 손익을 합산한 뒤 250만원을 공제하고 초과분에 20%를 과세한다. 지방소득세를 포함한 실질 세율은 22%다. 2027년 발생한 소득은 2028년 5월 처음 신고·납부한다.
과세를 앞둔 국내 가상자산 시장은 거래 가뭄을 겪고 있다. 코인게코에 따르면 업비트·빗썸·코인원·코빗·고팍스 등 국내 5대 거래소의 이달 1~22일 일평균 거래대금은 6억3212만달러, 약 8760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 2월 일평균 30억1101만달러와 비교하면 79% 줄었다. 국내 거래소가 현물 거래만 제공하는 사이 레버리지와 무기한선물 거래 수요가 해외 거래소와 탈중앙화거래소로 이동한 영향도 있다.
국내 거래소에서 해외 거래소나 개인지갑으로 옮겨지는 가상자산도 늘고 있다. 금융정보분석원(FIU)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거래소의 외부 이전액은 상반기 101조6000억원에서 하반기 107조3000억원으로 6% 증가했다. 연간으로는 총 208조9000억원이다. 타이거리서치와 체이널리시스는 이보다 장기적인 자금 흐름을 분석해 2021년부터 올해까지 국내 거래소에서 해외로 이동한 가상자산이 올해 예상치를 포함해 약 700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다.

해외 거래소와 탈중앙화거래소(DEX), 개인지갑을 오간 거래는 국내 거래소 거래보다 실소유자와 취득가액, 손익을 파악하기 어렵다. 해외로 자산을 옮겨도 납세 의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과세당국의 세원 포착과 투자자 보호에는 공백이 생길 수 있다. 과세 시행이 국내 제도권 거래소 이탈을 부추길 경우 오히려 과세의 실효성이 떨어지고 거래 수수료와 사업 기회가 해외로 넘어가는 역설이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다.
과세 형평성도 쟁점이다. 현행 제도는 한 해 동안 발생한 가상자산 손익만 합산하고 이전 연도의 손실을 이월해 공제하는 것은 허용하지 않는다. 국회예산정책처 연구용역은 최근 가상자산 양도손실을 최대 5년간 이월공제하고, 연 250만원인 기본공제액을 높이는 방안을 제안했다. 스테이킹·렌딩·에어드롭·하드포크 등 거래 유형별로 과세 대상과 취득가액 산정 기준을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내놨다.
가상자산 업계 관계자는 “명확한 기준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과세를 시행하면 투자자의 해외 이탈을 가속할 수 있다”며 “디지털자산기본법을 통해 산업의 법적 기반과 투자자 보호체계를 먼저 마련한 뒤 과세 체계를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송혜영 기자 hybrid@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