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IFA 2026'에서 확인된 것은 하나다. 한국과 중국 가전 공룡기업은 각자 다른 길을 선택했지만 향하는 목적지는 같았다. 이질적 제품군을 하나로 묶어 'AI 생태계'를 완성하겠다는 것이다. IFA2026은 가전 산업 경쟁이 '제품'에서 '생태계'로, 이어 '경험'으로 옮겨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삼성전자는 엔터테인먼트·홈·셀프케어 3개 영역으로 구성한 'AI 리빙'을 공개했다. 개별 기기 각각이 똑똑해지는 것을 넘어, TV·가전·모바일·웨어러블이 하나의 흐름으로 이어지도록 설계한 것이 핵심이다.
LG전자는 AI홈 허브 '씽큐 온'에 자율형 에이전트 기능을 더한 '씽큐 클로'를 처음 선보였다. 사용자와의 대화로 생활 패턴을 파악한 뒤 필요한 기능을 먼저 제안하고 실행하는 방식이다.
반면, 중국은 밖으로 넓어졌다. 처음 IFA에 참가한 샤오미는 스마트폰과 가전, 전기차, 로봇을 잇는 '휴먼×카×홈' 전략을 통째로 들고 나왔다. 자체 대규모언어모델(LLM) '미모'와 운영체제 '하이퍼OS', 반도체 '엑스링'까지 자체 기술 스택으로 전 제품군을 연결했고, 2030년까지 AI·자동차·로봇 연구개발(R&D)에 2000억 위안을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TCL도 AI 동반로봇 '에이미'와 태양광 에너지 시스템을 선보이며 가전에서 로봇·에너지로 제품군 자체를 넓혔다.
방향은 다르지만 두 진영이 공유하는 목표는 같다. 개별 기기 합이 아니라 AI로 연결된 '경험'을 판매하겠다는 것이다.
주목할 대목은 한국 기업들이 이 흐름에 대한 답을 준비하고 있다는 점이다. LG전자가 휴머노이드 로봇 핵심 부품인 액추에이터 사업을 본격화하겠다고 밝힌 것은 이 같은 맥락이다. 액추에이터는 모터, 감속기, 구동보드로 구성되며 로봇 한 대 재료비 60%를 차지하는 핵심 부품이다. 이 시장은 아직 표준 규격 없이 업체별 맞춤 개발로 파편화돼 있어, 완제품이 아닌 부품 표준을 먼저 장악하려는 전략으로 읽힌다. LG전자가 10만RPM 이상 초고속 모터 기술로 경쟁사 대비 모터 크기를 30% 이상으로 줄이면 이 시장이 산업용을 넘어 가정용까지 맞물려 30배 이상 성장할 것으로 전망하는 배경이다.
LG전자는 '제로 레이버 홈' 구상 안에 이를 배치했다. 로봇이 개별 가전 AI화의 “가장 마지막 정점”이라는 것이다. 세탁물을 꺼내고 개는 것처럼 개별 기기로는 할 수 없는 일을 로봇이 연결하는 것이 완성 지점이라는 설명이다. 이는 로봇을 별개 신사업이 아니라 가전 생태계 확장축으로 재정의한 것이다. 유럽 빌트인 시장에서 에너지관리 솔루션으로 현지 전통 브랜드에 맞서고, 부품 자체 생산과 밸류체인 재편으로 중국 저가 공세에도 “가격을 무리하게 낮추지 않아도 대응 가능하다”는 것이다. 완성도 경쟁을 플랫폼·부품 경쟁으로 넓히려는 시도가 이미 시작된 셈이다.
관건은 이 흐름의 속도와 폭이다. 액추에이터처럼 부품 표준을 선점하려면 감속기 기술을 빠르게 메워야 하고, 로봇을 '가전의 정점'으로만 가둘 게 아니라 독립된 생태계 축으로도 키워야 한다. 나아가 씽큐 온 같은 플랫폼을 외부 서비스·타사 기기와도 연결되는 개방형 표준으로 확장해야 소비자가 쉽게 떠나지 못하는 록인 효과를 만들 수 있다.
가전 하드웨어 완성도는 한국 기업이 오랫동안 쌓아온 자산이다. 그 자산을 부품과 플랫폼, 그리고 경험 층위까지 끌어올리는 속도가 IFA 2026이 예고한 다음 10년의 향방을 가를 것이다.
베를린=
김시소 기자 siso@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