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남대학교(총장 최외출)는 류정호 신소재공학부 교수 연구팀이 전자소자와 차세대 에너지 저장 장치에 활용될 수 있는 강유전체 소재의 성능을 높이는 새로운 설계 기술을 개발했다고 9일 밝혔다. 고출력 축전기나 전력전자 부품, 에너지 하베스팅 소자 등 산업적 응용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보인다.
류 교수 연구팀은 최근 나노미터(㎚) 크기의 미세 구조를 이용해 기존 특정한 조성의 강유전체에서 나타나는 우수한 특성을 인공적으로 구현하는 데 성공했다. 이 설계 원리를 적용해 실제 에너지 저장 성능까지 크게 향상시킨 박막 소재도 개발했다.

전자기기에 사용되는 부품의 70% 이상은 세라믹 소재로 이뤄져 있다. 특히 많은 전자부품들은 전기적인 자극에 전기적 분극이 변화하는 강유전체 세라믹이다. 강유전체는 전기를 가했을 때 물질 내부의 전기적 방향, 즉 분극이 바뀌고, 전기를 제거한 뒤에도 그 흔적이 일부 남는 특성을 갖는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강유전체는 축전기, 센서, 초음파 변환기, 정밀 구동기, 에너지 하베스터 같은 다양한 전자·전기 소자에 널리 쓰인다. 쉽게 말해, 강유전체는 전기를 저장하거나, 전기 신호를 움직임으로 바꾸고, 반대로 압력이나 진동을 전기 신호로 변환하는데 적합한 스마트 소재다.
연구팀은 서로 다른 강유전체와 반강유전체 물질을 상온에서 나노 크기로 촘촘히 섞어, 기존 강유전체 소재에서 성능 향상의 핵심으로 여겨져 온 '상변형 경계(MPB)'와 유사한 효과를 인공적으로 구현하는 데 성공했다. 연구팀은 이를 '인공 상변형 경계(aMPB)'라고 설명했다. 이는 물질 내부의 아주 작은 경계들을 설계해 전기적 반응성을 키운 것으로, 강유전체 연구에서 기존 고체용액 조성 범위에 한정됐던 '상변형 경계' 개념을 보다 다양한 재료 조합으로 확장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연구팀은 후속 연구를 통해 이 설계 원리를 실제 에너지 저장 소재 개발로 발전시켰다. 연구팀은 바륨 타이타네이트(BaTiO₃), 납 지르코네이트(PbZrO₃), 납 타이타네이트(PbTiO₃)를 이용한 다상 나노 클러스터 박막을 제작했다.
이 박막은 절연파괴강도에서 5.8메가볼트(MV)/cm, 회수 가능한 에너지 저장 밀도에서 68.6J/cm³ 를 기록했다. 이는 비교 대상인 단일상 박막보다 각각 약 3배 가량 향상된 수치다. 내구성과 열 안정성도 확인됐다. 해당 박막은 1억 회 충·방전 후에도 성능 저하가 작았으며, 140℃까지 안정적인 에너지 저장 특성을 유지했다. 여러 종류의 나노 결정이 만나는 경계에서 전하가 붙잡히면서 전류가 새는 현상이 줄어들고, 전기가 한쪽으로 몰려 소재가 갑자기 손상되는 현상도 억제된다는 의미다.

이번 연구는 두 단계의 성과가 연계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첫 번째 연구가 강유전체의 우수한 성능을 인공적인 나노 구조로 구현할 수 있다는 새로운 학술적 개념을 제시했다면, 두 번째 연구는 이를 고성능 에너지 저장 박막으로 발전시켜 기술적 가능성을 입증한 것이다. 단순히 특정 소재 하나의 성능을 높이는 데 그치지 않고, 서로 다른 강유전체와 반강유전체 재료를 어떻게 결합하고 경계를 설계하느냐에 따라 완전히 새로운 기능을 만들 수 있다는 재료 설계의 방향을 제시한 것이다.
류정호 교수는 “이번 연구는 강유전체의 우수한 성능을 인공적인 나노 구조로 구현할 수 있음을 보여준 동시에, 이를 고성능 에너지 저장 소자로 연결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향후 고출력 축전기, 전력전자 부품, 센서, 구동기, 에너지 하베스팅 소자 등에 응용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강조했다.
이번 연구는 한국연구재단 중견연구자지원사업과 나노·미래소재원천기술개발사업 지원으로 수행됐다. 류정호 교수 연구실과 정대용 인하대 교수 연구실 주도로,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립대, 미국 미시간 기술대, 중국 북경과기대 연구팀 등이 국제 공동연구로 참여했다.
한편, 연구팀은 국제 저명 학술지 '어드밴스드 펑셔널 머티리얼즈'에 두 편의 연구논문을 잇달아 발표하며 강유전체 소재의 새로운 설계 가능성을 제시해 학계로부터 큰 주목을 받았다.
대구=정재훈 기자 jho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