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자동차 시장에서 주행거리 연장형 전기차(EREV) 성장세가 한풀 꺾이고 있다. 순수전기차(BEV)의 주행거리와 충전 성능이 빠르게 개선되면서 과거 EREV가 내세웠던 '전기차 장점과 주행거리 불안 해소'라는 차별성이 약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가운데 샤오미는 오히려 EREV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며 정면 승부를 택했다.

샤오미자동차는 지난 7일 가을 신제품 발표회를 통해 '샤오미 펑청(澎湃)' 시리즈 주행거리 연장형 SUV 4개 트림을 공식 출시했다. N70 프로는 20만9900위안, N70 맥스는 23만9900위안, N90 맥스는 26만9900위안, N90 맥스 익스플로러는 29만9900위안으로 책정됐다.
눈에 띄는 부분은 가격이다. 샤오미는 20만~30만 위안대, 우리 돈으로 약 4000만~5900만원 수준에 제품을 배치했다. 특히 대형 SUV인 N90 맥스의 가격은 26만9900위안에 불과하다. 차량 길이 5280mm, 휠베이스 3080mm로 리샹 L9나 화웨이 아이토 M9와 비슷한 차체 크기를 갖췄지만 가격은 이들보다 크게 낮다.
중국 시장에서 리샹 L9는 45만9800위안, 아이토 M9는 47만9800위안부터 시작한다. 단순히 보면 40만 위안대 플래그십 SUV와 비슷한 크기와 공간, 지능화·편의사양을 20만위안대 후반에 제공하는 셈이다. 샤오미가 자동차 시장에서도 스마트폰과 가전에서 활용했던 이른바 '레드미식 가격 전략'을 꺼내 들었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샤오미는 과거 스마트폰 시장에서 기존 제품이 제공하던 기능과 성능을 더 낮은 가격에 구현하는 방식으로 시장을 확대해왔다. 공급망 관리와 대량 생산, 기술 통합 역량을 활용해 상위 가격대 경험을 중저가 시장으로 끌어내리는 전략이다. 펑청 역시 같은 공식을 자동차에 적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중국 EREV 시장 상황은 녹록지 않다. 중국승용차협회에 따르면 올해 1~8월 중국 신에너지 승용차 소매 판매량은 667만4000대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2.1% 감소했다. 이 가운데 BEV는 446만9000대로 감소 폭이 3.9%에 그쳤지만, 플러그인하이브리드(PHEV)는 160만대, EREV는 60만6000대로 각각 27.1%, 19.3% 감소했다.
특히 EREV는 PHEV보다 감소 폭은 작지만 시장 규모 자체가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한때 리샹과 아이토 등 주요 브랜드 성장세를 이끌었던 EREV가 이제는 더 이상 무조건적인 성장 시장이라고 보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럼에도 샤오미가 EREV를 선택한 이유는 주행거리 연장 기술 자체에 대한 확신이라기보다 20만~30만위안대 가족용 SUV 시장 잠재력에 주목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는다.
중국 소비자들이 EREV를 선택했던 가장 큰 이유는 충전과 주유를 모두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BEV 800V 고전압 시스템과 초급속 충전 기술이 확산되면서 EREV만의 장점은 점차 희석되고 있다. 소비자 입장에서도 이제는 'EREV이기 때문에 비싸도 산다'는 논리가 통하기 어려워졌다.
결국 EREV 경쟁력은 동력 방식 자체가 아니라 차량 전체 상품성으로 이동하고 있다. 충분한 순수전기 주행거리, 낮은 고속 주행 시 연료 소비량, 넉넉한 실내 공간, 편안한 승차감, 수준 높은 인포테인먼트와 첨단 운전자 보조 시스템, 안전성 등이 종합적으로 평가받는 구조다.
샤오미 펑청은 바로 이 지점을 겨냥했다. N70은 대형 5인승 SUV, N90은 대형 7인승 SUV로 구성해 20만~30만위안대 가족용 SUV 시장을 정면으로 공략한다. 동시에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리샹과 아이토 등 30만~40만위안대 고급 SUV 고객까지 끌어내리겠다는 전략이다.
따라서 샤오미가 노리는 경쟁 상대는 EREV 업체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BYD와 제로런 등 20만위안 안팎의 대중 브랜드부터 리샹, 아이토 등 고가 SUV 브랜드까지 모두 잠재적인 경쟁 대상이다. 샤오미 입장에서는 경쟁사 고객 가운데 단 한 명이라도 자사 차량으로 전환시킨다면 시장점유율 확대라는 성과를 얻을 수 있다.
중국 EREV 시장이 완전히 끝났다고 보기는 어렵다. 다만 과거처럼 EREV이라는 이유만으로 높은 가격을 인정받는 시대는 지나가고 있다. 앞으로는 가격 경쟁력과 종합적인 상품성, 명확한 사용 목적을 갖춘 제품만 살아남는 구조로 재편될 가능성이 높다.
샤오미 펑청 전략도 결국 여기에 맞닿아 있다. 'EREV를 잘 만드는 것'이 아니라 '좋은 SUV를 만들고, 그 SUV에 주행거리 연장 시스템을 적용한다'는 접근이다. 주행거리 연장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라는 의미다.
결국 샤오미가 이번에 겨냥한 것은 단순한 EREV 시장 점유율이 아니다. 20만~30만위안대에서 소비자가 기대하는 SUV 크기와 공간, 지능화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리고, 동시에 30만위안 이상 차량 가격에 대한 소비자 기준까지 흔들겠다는 전략이다.
중국 EREV 시장 미래는 '살아남느냐, 사라지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EREV가 살아남느냐' 문제에 가까워지고 있다. 그리고 샤오미는 그 답을 가격과 상품성에서 찾고 있다.
※전자신문과 36케이알이 공동 기획한 기사입니다.
김현민 기자 minki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