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의 넥스트 거버넌스] 〈28〉엘리베이터를 타는 로봇, 계단을 오르는 정부

이영 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 초빙석학교수·前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이영 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 초빙석학교수·前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천년의 세월을 품은 천지를 만나러 백두산에 올랐다. 고맙게도 천지는 이번에도 나를 맞아 주었다. 그러나 중국을 거쳐 '장백산'이라는 이름으로 올라야 했다. 귀국길에 들른 연변에서는 같은 말, 같은 문화를 이어온 동포들을 만났다. 민족의 역사와 국경의 현실이 교차하는 길 위에서 묵직한 상념이 밀려왔다. 언젠가 통일의 시간이 온다면 남과 북, 연변의 인재와 문화를 잇고 그 위로 기술과 경제가 흐르는 더 큰 공동체를 이룰 수 있지 않을까. 그 생각을 안고 여장을 푼 연길의 한 호텔에서, 나는 또 다른 미래를 마주했다.

객실에서 배달을 기다리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문을 열자 사람 대신 배송 로봇 한 대가 서 있었다. 물건을 건네고 돌아서는 로봇을, 평생 정보기술(IT)인으로 살아온 호기심에 뒤따라갔다. 로봇이 엘리베이터 앞에 서자 호출등이 절로 켜졌고, 탑승하자 목적층 버튼에 불이 들어왔다. 로봇과 엘리베이터, 건물의 제어망이 유기적으로 통신하고 있었다. 움직임은 자연스러웠고 서비스는 안정적이었다.

사실 이 기술 자체는 우리에게 새로울 것이 없다. 네이버는 2022년 사옥 '1784'에서 로봇과 엘리베이터, 클라우드를 잇는 인프라를 이미 선보였다. 문제는 원천기술이 아니라 '현장 확산의 속도'다. 우리가 4년 전 선보인 기술이 중국 동북 국경도시의 평범한 호텔에서 일상의 표준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은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다. 연길의 로봇은 엘리베이터를 타고 층을 넘나드는데, 우리의 혁신은 여전히 제도의 계단을 힘겹게 오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장관 시절 마주했던 거대한 벽이 떠올랐다. 샘 올트먼 오픈AI CEO를 초청하고 대통령 면담을 추진했을 때, 정부 관료 조직에서 가장 먼저 나온 질문은 “이것이 어느 부처 소관인가”였다. 인공지능(AI)을 과기정통부의 과학기술로 볼 것인지, 중기부의 벤처 생태계로 볼 것인지, 산업부의 산업 진흥으로 볼 것인지를 두고 부처 간 경계부터 따져야 했다. 로봇 한 대가 일상을 누비는 과정도 똑같다. 건축, 승강기, 통신, 개인정보, 소방·안전 등 수많은 부처의 규제 관문을 지금도 하나씩 넘어야 한다. 기술은 경계 없이 융합하며 질주하는데, 정부는 굳어진 분업의 울타리 안에 갇혀 있는 셈이다.

산업화 시대에는 기능별로 부처를 쪼개어 전문성을 쌓는 '사일로(Silo·칸막이) 행정'이 효율적이었다. 그러나 AI와 로보틱스 시대의 복합 과제는 결코 단일 부처의 책상 위에 온전히 놓이지 않는다. 이제 '누구의 권한인가'가 아니라 '무엇을 해결할 것인가'로 축을 옮겨야 한다. 소관주의를 타파하고 국가적 난제를 해결하는 '미션 지향적 거버넌스'로의 대전환이 필요하다. 국가가 도달해야 할 핵심 미션을 먼저 선언하고, 그 아래 여러 부처의 예산과 규제 권한, 데이터가 한 팀으로 결합해야 한다.

이는 단순한 조직 개편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국가 운용체계(OS)를 근본적으로 업그레이드하는 일이다. 산업화 시대의 OS가 '부처별 할당→법률 제·개정→예산 집행→단기 사업'의 수직적 경로였다면, AI 시대의 OS는 '국가 어젠다→범부처 미션→규제·예산·데이터 통합→실증과 확산'으로 연결되는 초연결 플랫폼이어야 한다.

기술의 패권은 기술 개발 속도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그 기술을 제도의 틀 안으로 끌어안아 국민의 일상에 가장 빠르게 녹여내는 '제도적 수용성'과 '확산의 속도'에서 판가름 난다. 제도가 혁신의 걸림돌이 아니라 디딤돌이 되어야 하는 이유다.

천지는 천년을 기다려 주지만, 기술 혁신은 10년도 기다려 주지 않는다. 로봇은 이미 엘리베이터를 탔다. 이제 우리 정부도 낡은 계단을 벗어나 엘리베이터에 올라탈 차례다.

이영 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 초빙석학교수·前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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