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푸드의 뒤를 이를 분야로 '한국의 술'이 주목받지만, 그간 우리의 '명주(名酒)'를 만들어 낼 축적의 시간은 없었습니다. 이런 가운데, 과학기술로 그 간극을 메우자는 것이 바로 이번 연구입니다.”
'대한민국 1호 숙성증류주 박사'로 꼽히는 인물이자, 국산 숙성증류주 개발·생산을 준비 중인 김태완 한국식품연구원 책임연구원의 말이다. 과학기술을 기반으로 세계의 명주를 따라잡을 수 있다는 확신이 서렸다.
그 대상인 숙성증류주는 곡물을 발효·증류한 원주를 숙성시킨 술로, '위스키'가 대표적이다. '까마득히 오랜 기간 축적된 레거시 기술력과 노하우가 응축된 영역'이라는 게 김 책임의 설명이다. 그는 “우리가 해외 명주가 쌓아온 '시간의 가치'에 다가서려면, 과학기술을 기반 삼을 수밖에 없다”고 역설했다.
개발 중인 기술은 하드웨어(HW)·소프트웨어(SW)를 아우른다. 숙성이 일어나는 환경을 제어하는 '모사 숙성고'를 개발하고, 여기에 원하는 맛·향·풍미·색을 구현하는 두뇌 '인공지능(AI)'을 적용한다.
숙성고 내 센서로 술의 화학 변화를 면밀하게 파악하고, AI 학습에도 활용하는 식으로 기술력을 계속 고도화한다.

김 책임은 이에 대해 “오크통에 담긴 술은 오랜 기간에 걸쳐 화학 변화를 겪는데, 모사 숙성고와 AI를 통해 술을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조정하는 것이 기술 핵심”이라며 “숙성 조건을 잘 부여한다면 10년 미만의 짧은 숙성으로도, 숙성 30년 수준에 비견되는 훌륭한 맛의 술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 뿐만이 아니다. 장기적으로는 요소 기술을 국내에 보급해, 관련 생태계가 움트게 하는것도 목표로 삼고 있다.
김 책임은 “국내 시장에서는 '우리도 숙성증류주를 만들고 싶다'는 열의는 충분한데, 아쉽게도 아무런 기반이 없는 상황”이라며 “균주(이스트), 증류기술, 숙성기 등 요소기술을 우리 연구진이 만들어내면, 이를 취급하는 기업·시장이 만들어지고 생태계 기반도 융성할 것으로 보고 있다”고 전했다.
김 책임은 현재 시도가 술을 만든다는 개념 자체에 변화를 가할 수 있다는 견해도 내놓았다. 그러면서 '개인맞춤형 숙성증류주 제작' 서비스의 탄생을 예견했다.
그는 “현재 우리가 개발하는 기술이 고도화되면, 정확한 맛 지표와 전달 시점을 달성해 술을 빚는 것도 가능해진다”며 “고객이 원하는 원료·균주·숙성기·환경으로 술을 빚어, 특정 기념일에 '나만의 숙성증류주'를 전달하는 전에 없던 비즈니스 모델(BM)도 탄생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영준 기자 kyj85@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