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달 23일 유엔(UN) 총회 연설에서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북한군 포로 2명을 한국에 송환했다는 발표와 이보다 이틀 앞서 군사분계선(MDL) 남쪽에서 발생한 지뢰 폭발 사건으로 정부의 대북 정책이 근본적인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두 사건의 본질은 명료하다. 포로 송환은 국제법과 인도주의적 원칙에 의거해 한국행을 결정한 북한 병사를 자유주의 국가인 대한민국으로 데려온 것이다. 지극히 정상적이고 이치에 맞는 조치다. 문제는 뜻밖의 공간에서 젤렌스키 대통령의 입을 통해 정부가 밝히기를 꺼려한 사실이 공개됐다는 점이다. 지뢰 사건을 조사해온 합참은 북한이 매설한 수지반보병지뢰의 폭발로 3명의 군인이 중경상을 입었다고 발표했다. 이 문제의 핵심은 모든 국민이 합리적으로 유추할 수 있는 사건 진실에 대해 왜 군 당국이 일주일 가까이 모호한 자세를 취해왔는가이다.
포로 송환이 외교 정책 결정에 따른 부수적 결과물이라면 지뢰 폭발은 국내 안보와 직결됐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하지만 두 사건에는 발생 시점과 대북 정책 영역에서 따로 분리될 수 없는 공통점이 있다. 시간적으로는 공교롭게도 이재명 대통령의 22일 유엔 총회 연설을 전후해 발생했다는 점이다. 이재명 대통령은 유엔 총회 연설에서 북한이 추가적인 핵 개발을 포기하는 조건으로 북한에 가해지는 경제 제재 해제 구상을 발표했다. 이미 북한이 다량의 핵무기를 확보한 현실을 고려해 현재의 핵이 아닌 '미래의 핵 포기'를 제안한 것이다. 교착 상태에 빠진 남북 관계의 돌파구를 마련하고 혹시나 있을지 모를 트럼프와 김정은 회담의 페이스메이커 역할을 고려한 전략적 결정이었을 것이다. 이 중차대한 시점에 북한군 포로의 한국 송환은 현 정부의 마중물 정책에 찬물을 끼얹는 시도로 해석됐을 것이다.
군사분계선 남쪽에서의 지뢰 사건은 휘발성이 더 큰 쟁점이다. 북한 제재를 해제하려는 무리한 구상에 더해 직접적인 의료 지원을 계획하고 있는 정부 정책에 제동이 걸리는 것은 물론 김정은 정권에 대한 국민의 분노를 폭발시킬 것이 자명하기 때문이다. 미래의 핵과 제재를 맞교환하려는 정부의 바람과 달리 북한은 28일 유엔 총회 일반토의 연설에서 핵무력을 포기할 의사가 없음을 재확인했다. 지뢰 폭발 사건은 한국을 적대 국가로 규정한 이후 군사분계선 지역에서 국경화 작업을 진행해 온 북한에 사실상 무대책으로 일관한 정부의 안보 무능력을 향한 거센 비판과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는 지지율 하락으로 곤경에 처한 이재명 정부를 더 궁지로 몰아넣는 치명타로 작용할 수 있다.
진보와 보수를 떠나 역대 한국 정부는 북한 비핵화라는 몽상에 사로잡혀 왔다. 하지만 민주당으로 대표되는 진보 정권의 대북 정책은 보수 집권 세력에 비해 국민에게 더 많은 인내심을 요구했고 정책 실패로 인해 국민 자존심에 더 많은 생채기를 입혔다. 북한은 비핵화 정책을 추진한 문재인 대통령에게 삶은 소대가리라고 폭언을 퍼붓더니 올해는 한국을 향해 비루먹은 개들이라는 멸칭을 서슴지 않고 사용했다.
북한의 핵무장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고 심지어 일본, 미국 등 우방국을 겨냥한 핵 위협의 고도화도 단지 시간과 의지의 문제로 집약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발생한 포로 송환과 지뢰 폭발 사건은 현 정부의 대북 유화책이 안고 있는 근본적인 딜레마를 보여주고 있다. 북한, 러시아에 가해지는 국제사회의 제재에도 불구하고 현재 북중러는 안보 공동체를 넘어 생활 공동체로 진화하고 있다. 올해 9월 7일 두만강 자동차 다리가 개통돼 북한과 러시아 사이에는 선박, 열차, 항공에 이어 도로 교통망까지 확충되었다. 또 9월 2일에는 중국 지안과 북한 만포를 왕래하는 국제열차 운행이 재개돼 압록강을 횡단하는 열차가 증가했다.
이는 중국과 러시아라는 든든한 뒷배를 둔 북한이 트럼프 1기 행정부 시절 발생했던 형태의 북미 정상회담에 임할 이유가 없음을 보여준다. 1, 2차 북미 정상회담 시기와 달리 핵무장의 달성, 경제의 호전, 북중러 협력의 증대로 트럼프의 정상회담 구애에 대한 김정은의 지참금 요구는 훨씬 높아질 것이다. 김정은은 한국을 배제한 상태에서의 직거래를 선호할 것이고 이 과정에서 한국이 확보할 수 있는 운신의 폭은 더욱 좁아질 것이다.
지금이라도 한국 정부는 북한 비핵화라는 '희망 고문'에서 깨어나 현실적인 대북 억제책을 수립해야 한다. 그 출발점은 한국의 자체적인 비대칭 전력 구축을 통해 북한과 대등한 군사력을 유지하는 것이다. 힘을 통한 균형이 가능해진 이후에야 핵 감축, 비핵화 논의의 진전이 이루어질 수 있고 대북 정책의 딜레마가 해결될 수 있다.
함명식 길림외국어대 지역국별연구원 및 국제상학원 교수 asymmetryir@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