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진의 AI전략노트]〈38〉AI 주권, 흩어진 GPU로는 지킬 수 없다

김경진 전 국회의원
김경진 전 국회의원

지난 6월 12일 미국 상무부는 앤트로픽의 최신 모델 페이블5와 미토스5에 수출통제를 걸었다. 프로젝트 글래스윙에 참여하던 한국인터넷진흥원과 국내 반도체·통신 기업도 하루아침에 모델을 쓸 수 없게 됐다. 통제는 18일 만에 풀렸지만 남긴 교훈은 가볍지 않다. 동맹국이라도 최상위 인공지능(AI) 모델에 대한 접근은 미국 정부의 판단 하나로 언제든 닫힐 수 있다.

AI는 이제 특정 산업의 도구가 아니다. 제조, 금융, 의료, 행정을 거쳐 국방까지 모든 분야의 바탕을 이루는 기반 기술이다. 국방에서는 무게가 다르다. AI와 결합한 정찰·지휘·무인 체계는 기존 무기체계와 비교할 수 없는 우위를 만든다. 미국 다음가는 AI 역량을 쌓은 중국이 바로 옆에 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근본적인 안보 위협이다. 핵심 기술을 남의 손에 맡긴 채로는 이 위협에 대응할 수 없다.

문제는 돈과 규모다. 알파벳,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메타 4개사가 올해 계획한 설비투자는 합쳐서 약 7250억달러, 우리 돈으로 1000조원이 넘는다. 한국에는 이런 규모로 투자할 기업이 없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내년 AI 예산은 9조4000억원으로 크게 늘었지만, 빅테크 한 곳의 한 해 투자액에 견주면 수십 분의 일에 그친다. 그나마 있는 GPU와 데이터센터도 통신사, 플랫폼 기업, 연구기관으로 나뉘어 있다. 각자 수천 장씩 가진 GPU로는 프런티어급 모델을 학습시킬 수 없다. 정부가 확보한 GPU는 3만5000장이고, 2028년까지 5만장으로 늘린다는 계획이다. 배경훈 부총리는 B200급 GPU 1만장을 한곳에 모아 쓸 수 있다면 미토스급 모델에 도전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답은 하나다. 모아야 한다. 정부와 기업이 함께 출자해 특수목적법인을 세우고, 흩어진 자금과 GPU, 데이터, 인재를 한곳에 모아야 한다. 이 법인이 대규모 컴퓨팅 인프라를 짓고 국가 대표 프런티어 모델을 개발한다. 참여 기업은 출자 비율에 따라 연산 자원을 나눠 쓰고, 그 위에서 각자의 서비스를 만든다. 개별 기업이 감당하지 못하는 투자 위험은 나누고, 결과물은 함께 쓰는 구조다. 국방과 공공 안보 분야에는 별도의 연산 몫을 확보해 두어야 한다. 위기 상황에서 남의 서버 사정을 살피지 않고 바로 쓸 수 있는 자원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최근 정부가 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 사업을 넘어 여러 기업이 참여하는 특수목적법인으로 프런티어 AI를 공동 개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옳은 방향이다. 여러 팀을 경쟁시켜 후보를 줄여 가는 방식은 한정된 자원을 다시 쪼개는 결과를 낳는다. 하나로 모아 단일 대오로 가야 한다는 원칙, 우리 손으로 우리 모델을 가져야 한다는 원칙에 비추어 보면 바람직한 전환이다. 내년 예산안에 프런티어 AI 모델 몫으로 4조7000억원이 반영된 것도 의미가 있다. 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 사업으로 쌓은 기술과 인력은 새 법인으로 그대로 이어져야 한다.

다만 법인의 지배구조는 처음부터 분명히 해야 한다. 연산 자원의 배분 원칙, 의사결정 구조, 정부 역할의 범위를 미리 정하지 않으면 모으기만 하고 움직이지 못하는 조직이 된다. 참여 기업은 자사 이익보다 공동 인프라의 가치를 먼저 보아야 하고, 정부는 단년도 예산이 아닌 장기 출자로 투자의 지속성을 보장해야 한다.

지배구조와 함께 중요한 것은 투명성이다. 설립 단계에서는 어떤 기업이 어떤 조건으로 참여하는지, 정부 지분과 출자 규모가 얼마인지 공개해야 한다. 부정부패의 의심을 받는 순간 사업의 정당성은 흔들린다. 운영 단계에서는 연산 자원을 누구에게 얼마나 배분했는지, 모델 개발이 어디까지 왔는지를 정기적으로 공개해야 한다. 예산 투입도 마찬가지다. 해마다 투입액과 집행 내역을 국회에 보고하고, 외부 전문가가 참여하는 독립 평가를 받도록 설립 근거 법률에 명시해 두어야 한다. 수조원의 세금이 들어가는 사업이다. 과정이 투명해야 국민이 신뢰하고, 국민의 신뢰가 있어야 정부가 대규모 예산을 꾸준히 투입하고 정책을 끝까지 밀고 나갈 수 있다. 깜깜이로 운영되는 사업은 국민의 지지를 잃고 정권이 바뀔 때마다 흔들린다. 투명성은 국민의 신뢰와 정책의 집행력을 함께 얻는 출발점이다.

미국 중국 빅테크의 투자 규모는 해마다 커지고, 벌어진 격차는 시간이 갈수록 메우기 어렵다. 결정이 늦어질수록 비용은 늘고 선택지는 줄어든다. 방향은 섰다. 이제 남은 것은 속도다. 너무 늦지 않기를 바란다.

김경진 전 국회의원 2016kimkj@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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