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공 소프트웨어(SW) 사업에서 외산 소프트웨어(SW)와 국산 SW 간 공정 경쟁 환경이 제공되지 않는 사례가 지속된다. 정부가 SW 분리발주를 통한 제품 경쟁을 독려하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는 것이다. 공공 발주처가 SW 사대주의적 사고에서 벗어나 제대로 된 경쟁을 통해 제품을 도입하는 환경을 제공해야 한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7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한국교육학술정보원(KERIS)의 K에듀파인 고도화 사업에서 입찰에 참여한 정보기술(IT)서비스 컨소시엄 3곳이 모두 핵심 데이터베이스관리시스템(DBMS)으로 오라클을 제안했다.
문제는 외산을 택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기존 외산 제품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만든 것이다.
2173억원 규모의 이번 사업에서 KERIS는 핵심 시스템 간 유기적인 동작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통합발주를 택했다. SW 업계가 상용 SW 분리발주를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DBMS와 기업 응용 프로그램 통합(EAI) 등 상용 SW 28종이 구축사업에 묶였다. 제품 선택권은 자연스럽게 IT서비스 업체로 넘어갔다.
IT서비스 기업은 기존 시스템과의 호환성을 확보하고 개발 일정을 지키는 동시에 장애 대응 책임까지 부담한다. 익숙한 제품을 유지하는 것이 사업 위험을 줄이는 방법이라고 판단하는 이유다. 발주기관도 안정적인 운영을 우선하면 같은 제품을 다시 고르게 된다. 각자의 입장에서는 합리적인 선택이지만, 이러한 선택이 반복되면 새로운 제품이 비교 대상에 오르기 어려운 구조가 된다.
정부는 국산 SW 경쟁력을 키우겠다며 개발과 실증을 지원해 왔지만, 이렇게 만든 제품이 실제 공공 사업에 채택되는 통로는 좁다는 것이 업계의 지적이다. 대형 사업이 통합발주로 나오면 제품 선택은 IT서비스 기업의 몫이 되고, IT서비스 기업은 검증된 기존 제품을 우선하기 때문이다. 실증을 거쳐도 그 성과를 평가받을 기회가 사업 설계 단계에서 마련되지 않으면 개발 투자가 도입으로 이어지기 어렵다.
업계 관계자는 “국산 SW도 외산과 경쟁할 수 있도록 기술력을 높여야 하지만, 그 기술력을 검증받을 기회조차 없는 게 문제”라며 “통합발주 과정에서 기존 외산 DBMS와 미들웨어에 대한 의존성을 전제로 사업이 설계되면 국산 제품은 개념증명(PoC)이나 벤치마크테스트(BMT) 기회를 얻기 어렵고, 결국 기존 외산 제품을 다시 채택하면서 종속성이 강화되는 구조가 반복된다”고 말했다.
이 같은 구조는 SW 생태계 전반에도 부담이 될 수 있다. 사업을 대형화하는 통합발주가 일상화되면 중소 SW 기업의 독립적인 제품 역량이 약해지고, 산업 전반의 경쟁력도 떨어질 수 있다. 이번 KERIS 사업뿐 아니라 발주를 앞둔 차세대 지방행정공통시스템(시도새올)을 비롯해 굵직한 공공 SW 사업의 경우 SW 분리발주를 비롯해 발주체계를 면밀히 살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이유다.
김숙경 KAIST 교수는 “여러 과업을 하나로 묶어 발주하면 대기업만 수행할 수 있다는 논리가 강해지고, 중소 SW 기업은 공급망 하단으로 편입돼 독립적인 제품 역량을 키우기 어려워진다”며 “대기업 참여 여부만 논의할 것이 아니라 전문기업이 직접 참여할 수 있도록 과업을 기능별로 나누고, 여러 사업에 활용할 수 있는 제품을 키우는 발주 구조를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성전 기자 castlekang@etnews.com, 최호 기자 snoop@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