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거의 100년 동안 과학계 기록에서 자취를 감췄던 희귀 영장류가 인도네시아의 한 섬에서 다시 확인됐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독을 지닌 영장류로 알려진 슬로로리스의 일종이다.
20일(현지시간) 미국 피플지에 따르면 국제보전단체 리와일드(Re:wild)는 인도네시아 방카섬에 서식하는 '방카 슬로로리스'가 현재도 섬 곳곳에 살아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관련 연구 내용은 국제 학술지 '스픽시아나(Spixiana)'에 최근 발표됐다.
방카 슬로로리스는 1906년 처음 과학적으로 기술됐지만 1930년대 이후 관련 기록이 거의 끊겼다. 2013년 독립된 종으로 공식 인정됐으나 국제자연보전연맹(IUCN) 적색목록에서는 '위급' 단계에 놓였으며, 한때 사실상 멸종했을 가능성까지 거론됐다.
하지만 현지 주민들에게 이 동물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방카섬의 알로비 야생동물구조센터는 2015년부터 2025년까지 주민들의 신고를 받고 주택 뒷마당과 정원, 전선, 도로 주변 등에서 발견된 방카 슬로로리스를 구조해왔다.
10년 동안 구조된 개체는 90마리가 넘었다. 발견 지역도 방카섬의 4개 행정구역과 팡칼피낭시 등 섬 전역에 걸쳐 있었다. 이 가운데 86마리는 방카섬의 보호림으로 다시 방사됐다.

연구진은 이 자료를 토대로 방카 슬로로리스가 여전히 섬 여러 지역에 분포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번 연구에는 알로비 야생동물구조센터와 오스트리아 빈의 하우스 데스 메레스 아쿠아 테라 동물원, 인도네시아 타만 사파리 프리겐 보전번식센터 등이 참여했다.
방카 슬로로리스는 나무 위에서 생활하는 야행성 영장류다. 슬로로리스류는 현재까지 알려진 영장류 가운데 유일하게 독을 지닌 종류로, 팔꿈치 안쪽의 분비샘에서 나오는 물질을 침과 섞어 독성 물질로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연구진은 이번 발견이 현지 주민들의 관찰과 신고가 과학적 보전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평가했다. 리와일드의 벤지 바르카 탐사 프로그램 매니저는 “한 종이 과학 기록에서는 사라질 수 있지만, 그 동물과 같은 환경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에서는 사라지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방카 슬로로리스의 생존 환경은 여전히 불안정하다. 도로와 주거지 확대, 전선, 불법 반려동물 거래 등이 주요 위협으로 꼽힌다.
특히 방카섬에서는 불법 주석 채굴과 팜유 농장 조성을 위한 대규모 산림 훼손으로 서식지가 크게 줄어든 것으로 전해졌다.
연구 공동저자인 티몬 글라우는 “방카 슬로로리스가 섬 여러 지역에서 살아남았다는 사실을 확인했지만 이것은 첫 단계에 불과하다”며 “개체 수 조사와 유전 연구, 남아 있는 서식지 보호를 포함한 장기적인 보전 전략이 시급하다”고 밝혔다.
알로비 야생동물구조센터 측도 “방카 슬로로리스가 사라진 종은 아니라는 사실을 과학계에 보여줄 수 있어 기쁘다”며 “그러나 여전히 실제 멸종에 매우 가까운 상태”라고 강조했다.
서희원 기자 shw@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