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급난·가격급등 불만…가격 견제구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중국의 메모리 반도체 생산 확대를 예고하며 연일 공급난과 가격 급등에 대한 불만을 드러내고 있다. 앞서 애플도 중국산 메모리 채택 가능성을 열어두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주도하는 시장에 변화가 생길지 주목된다. 다만 업계에서는 중국의 생산 확대를 언급해 가격 협상력을 낮추려는 의도가 깔렸다는 해석도 나온다.
18일 업계에 따르면 머스크 CEO는 지난 15일(현지시간) 엑스에 “중국은 2028년에 엄청난 양의 램(RAM)을 생산할 것”이라고 적었다. 한국 메모리 업계가 향후 생산 과잉에 직면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은 칼럼을 공유하면서다.
머스크 CEO는 최근 메모리 반도체 공급 문제를 잇달아 거론했다. 지난 11일에는 “문제는 램 공급”이라고 밝혔고, 12일에는 중국이 5세대·6세대 저전력 D램(LPDDR)을 대량 생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13일에는 마이크론이 메모리 가격 협상에서 합리적인 태도를 보인 반면 다른 업체들은 지나치게 높은 가격을 요구한다고 비판했다.
특정 기업을 지목하지는 않았지만, 업계에서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겨냥한 발언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인공지능(AI) 산업의 급성장으로 메모리 공급 부족과 가격 상승이 이어지면서 빅테크 기업들의 원가 부담이 커졌기 때문이다. 머스크 CEO는 테슬라의 자율주행 차량과 차세대 휴머노이드 옵티머스에 들어가는 자체 설계 칩의 메모리 용량을 줄였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는 옵티머스 생산에 필요한 메모리를 확보하기 위한 조치였다고 설명했다.
애플 역시 중국산 메모리를 대안으로 검토하는 분위기다. 존 터너스 애플 CEO는 지난 15일 외신 인터뷰에서 메모리 공급 제약을 심각한 문제로 지목하며 “모든 선택지를 열어둬야 한다”고 밝혔다. 시장에서는 중국 메모리 업체 창신메모리테크놀로지(CXMT) 제품의 채택 가능성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보고 있다. 애플이 CXMT 메모리 칩을 시험 적용하고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중국 업체의 추격은 실제 생산과 실적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CXMT는 차세대 서버용 D램에 메모리 셀 면적을 줄이는 '4F²' 기술을 적용하겠다는 계획을 내놓았다. 다만 수율과 칩 면적, 비트당 생산원가 등 핵심 지표가 공개되지 않아 기술 경쟁력을 판단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다.
KB증권은 삼성전자와 CXMT의 D램 공정 기술 격차가 양산 시점을 기준으로 5~7년에 이른다고 분석했다. 삼성전자가 차세대 생산공장과 고대역폭메모리(HBM)를 중심으로 기술 고도화를 이어가고 있어 중국 업체가 단기간에 기술 격차를 좁히기는 쉽지 않다는 평가다.
그럼에도 CXMT의 성장세는 가파르다. 회사가 제시한 실적 전망에 따르면 올해 3분기 매출은 1147억~1197억 위안으로 전년 동기 대비 589~619%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AI 수요 확대에 따른 D램 가격 상승과 생산 능력 확충이 실적 개선을 이끈 것으로 풀이된다.
시장 점유율에서는 여전히 국내 기업들과 차이가 크다. 2분기 글로벌 D램 시장에서 CXMT의 점유율은 10%로, 삼성전자(38%)와 SK하이닉스(25%)에 뒤처졌다. 다만 1년 사이 점유율을 6%포인트 끌어올린 만큼 중국 업체의 성장세를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업계에서는 머스크 CEO의 발언이 중국의 공급 확대 가능성을 강조해 메모리 가격 협상에서 유리한 위치를 확보하려는 전략일 수 있다고 본다. 중국의 생산량이 늘더라도 기술력과 제품 경쟁력까지 단기간에 확보할 수 있을지는 별개의 문제인 만큼, 향후 실제 양산 성과와 공급 확대 속도가 관건이 될 전망이다.
이상목 기자 mrls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