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학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인공지능(AI), 기후변화, 우주개발, 바이오산업은 이미 우리의 일상과 미래를 바꾸고 있다. 그렇다면 지역사회에서 과학을 가장 가까이 만나고, 체험하고, 질문할 수 있는 곳은 어디일까.
광주에 자리한 국립광주과학관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국립광주과학관은 광주에 있지만 광주만을 위한 과학관은 아니다. 광주·전남·전북을 아우르는 호남권 과학문화의 거점으로서 어린이와 청소년, 학부모와 시민, 학교와 대학, 연구기관과 기업을 연결하며 과학문화의 저변을 넓혀가고 있다.
2013년 문을 연 국립광주과학관은 호남 지역의 과학기술 대중화와 과학인재 육성, 과학문화 확산을 목적으로 출발했다. 이후 어린이과학관과 인공지능관, 별빛누리관, 별빛천문대 등을 갖추면서 과학을 '보는' 공간에서 직접 체험하고 탐구하는 공간으로 발전했다.
13년이 지난 지금 과학관의 역할은 더욱 넓어졌다. 전시물을 관람하는 데 그치지 않고 학생들이 실험하고, 청소년이 과학을 설명하며, 시민이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과학문화의 혜택이 부족한 지역의 학교까지 찾아가는 지역 과학문화 플랫폼으로 진화하고 있다.
95만 명이라는 숫자보다 중요한 것
국립광주과학관의 성장은 숫자로도 확인된다. 2024년 누적 관람객 700만 명을 넘어섰고, 연간 방문객은 95만 명으로 개관 이후 최대치를 기록했다. 자체수입도 24억 원으로 최고치를 달성했다. 2025년에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운영실적 평가에서 최고등급인 S등급을 받았고, 재경부 주관 공공기관 고객만족도 조사에서는 우수 등급을 획득했다.
그러나 나는 숫자 자체보다 그 숫자가 보여주는 과학문화의 일상화에 주목하고 싶다.
아이들이 가족과 함께 과학관을 찾고,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천체를 관측하고, 다시 특별전과 행사에 참여한다. 과학이 학교 시험을 위한 지식에 머무르지 않고 생활 속에서 경험하는 문화가 되고 있는 것이다.
과학을 잘하는 아이는 과학책을 많이 읽은 아이만이 아니다. '왜 그럴까'라고 질문하고 직접 만져보고, 실패하고, 다시 시도하는 아이가 과학적으로 성장한다.
국립광주과학관의 교육도 이 지점을 향하고 있다. AI와 로봇, 코딩, 3D 기술, 생명과학, 항공우주 등 다양한 체험형 교육을 통해 학교에서 배운 지식을 실제 현상과 연결한다. 별빛천문대에서는 1.2m 구경의 대형 반사망원경을 활용한 천체관측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교과서 속 과학을 손으로 확인하고, 눈으로 관찰하며, 자기 언어로 설명해보는 경험이다.
혁신 리더십과 ESG 경영, 그리고 보편적 과학복지의 꽃을 피우다
이러한 눈부신 성장의 이면에는 2023년 취임 이후 일관되게 '고객 중심 열린 리더십'과 'ESG 경영혁신'을 진두지휘해 온 이정구 관장의 뚝심 있는 리더십이 자리하고 있다. 이정구 관장은 과학관의 문턱을 과감히 낮추고 공공기관으로서의 사회적 책무를 다하기 위해 경영 전반에 걸쳐 체질 개선을 이끌었다. 국립과학관 최초로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발간하고, 안전·반부패·고객만족·정보보안 등 글로벌 기준에 부합하는 ISO 국제표준인증을 잇달아 획득하며 투명하고 신뢰받는 기관의 기틀을 확립한 것이 대표적이다.
특히 급변하는 미래 사회에 발맞춰 인공지능 중심의 프로그램 혁신을 대대적으로 확장했다. 국내 최초의 인공지능관을 기반으로 청소년 인공지능 동아리 연구 지원, 생성형 인공지능 융합 교육, 그리고 '모두의 AI' 특별전에 이르기까지 첨단 기술을 국민의 눈높이에서 체험하는 실질적인 교육의 장을 열었다.
여기에 더해 과학문화 소외계층을 위한 '보편적 과학복지'의 실현에도 앞장섰다. 과학문화 소외계층 어린이들을 초청하는 '과학관에서 생일파티', 주요 계기일 무료개관 확대, 성인 과학 문해교실 등 남녀노소와 계층을 불문하고 누구나 과학의 즐거움을 동등하게 누릴 수 있는 포용적 과학문화 생태계를 완성해 낸 것이다. 이는 공공성과 경영 효율성을 조화롭게 결합해 과학관의 존재 이유를 증명해 낸 모범적인 리더십의 결실이라 평가할 수 있다.
광주에 있지만, 광주에 머물지 않는 과학관
국립광주과학관의 가장 중요한 정체성 가운데 하나는 지역을 찾아가는 과학관이라는 점이다.
과학문화의 혜택은 지역에 따라 달라져서는 안 된다. 도시의 학생과 농산어촌 학생이 과학을 접할 기회에서 큰 차이가 발생한다면 지역의 미래인재 육성에도 격차가 생길 수밖에 없다.
국립광주과학관은 이러한 격차를 줄이기 위해 광주·전남·전북의 학교와 학생들을 대상으로 찾아가는 과학문화 프로그램을 운영해왔다. 과학관이 학생들을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직접 학교와 지역을 찾아가는 방식이다.
특히 올해에는 과기부로부터 '전남광주과학문화거점센터'로 선정되어 5억 6천여 만원의 사업비를 확보해, 광주·전남 전역을 대상으로 과학문화의 혜택에서 누구도 소외되지 않도록 지역 과학문화 확산의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학교와의 협력도 단순한 방문교육에 머물지 않는다. 2024년 인공지능 탐구활동 지원사업은 광주·전남·전북 초·중·고등학교 동아리를 대상으로 운영됐다. 탐구활동비와 전문가 멘토링, 연구기관 탐방, 과학관 공간과 장비 지원 등을 제공하며 학교의 AI 탐구활동을 지원했다.
이러한 활동은 국립광주과학관이 단순히 '학생이 찾아가는 곳'이 아니라 학교와 함께 과학을 만들어가는 기관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과학을 배우는 청소년에서 과학을 말하는 청소년으로
청소년을 단순한 관람객으로 보지 않는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대표적인 프로그램인 '루체스타'는 호남권 초등학교 4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과학커뮤니케이터 활동이다. 2025년 9기 모집도 호남권을 대상으로 이뤄졌으며, 2026년 10기 역시 호남권 청소년을 대상으로 운영되고 있다.
과학을 배우는 것과 과학을 다른 사람에게 설명하는 것은 전혀 다른 경험이다. 자신이 이해한 과학을 다른 사람의 눈높이에 맞춰 설명하려면 지식은 물론 소통능력과 표현력, 창의성이 필요하다.
나는 이런 경험이 미래의 과학자뿐 아니라 교사, 연구자, 엔지니어, 기업가, 정책전문가에게도 중요한 자산이 된다고 생각한다.
AI 시대, 과학관도 한 단계 더 진화해야 한다
이제 AI는 과학관의 하나의 전시 주제가 아니라 미래사회의 구조를 바꾸는 핵심 기술이다.
따라서 AI 교육도 'AI가 무엇인가'를 설명하는 데 머물러서는 안 된다. AI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데이터와 알고리즘에는 어떤 한계가 있는지, AI가 바꿀 미래의 직업은 무엇인지, 인간에게 필요한 능력은 무엇인지까지 질문해야 한다.
국립광주과학관이 AI·디지털 기반 과학교육과 탐구중심 교육을 주요 전략으로 제시하고 있는 것도 이런 시대적 변화와 맞닿아 있다. 과학관은 올해 'AI라운지 거점운영' 공모사업에 선정되어 총 8억원 규모의 정부지원금을 확보하고, 이를 바탕으로 전라·제주권 시민을 위한 참여형 인공지능 체험·교육 거점인 'AI 라운지'를 구축·운영하고 있다.
이렇듯 과학관은 스스로를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과학문화 확산의 허브'로 설정하고, 지역민과 소통하는 과학문화 허브와 협력 네트워크 강화를 주요 추진전략으로 삼고 있다.
이제 이러한 방향을 한 단계 더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호남권 미래를 위한 세 가지 제안
첫째, 미래과학 융합교육 플랫폼으로 발전해야 한다.
AI·반도체·에너지·바이오·우주·기후과학을 서로 연결하는 교육이 필요하다. 특히 기후위기와 탄소중립은 하나의 학문으로 해결할 수 없다. AI와 에너지, 기후와 바이오, 첨단소재를 연결하는 융합형 프로그램을 통해 청소년들이 미래의 문제를 통합적으로 바라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둘째, 호남권 과학문화 격차 해소 플랫폼의 역할을 더욱 강화해야 한다.
찾아가는 과학관과 이동천문대 등의 사업을 체계화해 광주·전남·전북의 농산어촌과 작은 학교, 과학문화 취약지역을 순회하는 '호남권 과학문화 순회 플랫폼'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 과학관이 가진 콘텐츠와 인력을 지역 곳곳으로 확장한다면 과학문화의 지역 격차를 줄이는 데 큰 역할을 할 수 있다.
셋째, 대학·연구기관·기업·학교·시민을 연결하는 개방형 과학문화 플랫폼이 되어야 한다.
국립광주과학관 혼자 모든 것을 할 필요는 없다. GIST와 전남대학교를 비롯한 지역 대학, 전북의 대학과 연구기관, 정부출연연구기관, 지역 기업이 함께 참여하면 된다.
대학 연구실을 청소년에게 개방하고, 연구자가 과학관에서 시민을 만나며, 기업이 미래기술을 체험형 콘텐츠로 제공하는 방식이다. 과학관을 중심으로 연구와 교육, 산업과 시민이 연결되는 호남권 과학문화 생태계를 만드는 것이다.

과학관의 미래는 지역의 미래와 연결되어 있다
국립광주과학관의 지난 13년은 과학문화가 어떻게 지역사회 속으로 들어올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어린이는 과학관에서 처음 과학자를 꿈꿀 수 있다. 청소년은 과학을 배우는 데서 나아가 다른 사람에게 설명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학교는 과학관과 함께 AI와 과학탐구 활동을 펼칠 수 있다. 시민은 과학을 생활 속 문화로 경험할 수 있다. 그리고 대학과 연구기관, 기업은 과학관을 통해 미래세대와 만날 수 있다.
이것이 숫자로 표현하기 어려운 국립광주과학관의 가장 중요한 자산이다.
과학관은 건물이 아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과학을 연결하는 플랫폼이다.
한 아이의 호기심을 과학자의 꿈으로 연결하고, 한 연구자의 지식을 시민의 언어로 연결하며, 대학의 연구성과를 지역산업의 혁신으로 연결하고, 기업의 미래기술을 청소년의 미래직업으로 연결하는 곳이다.
그런 의미에서 국립광주과학관은 광주에 있는 하나의 시설을 넘어 광주·전남·전북의 미래를 연결하는 과학문화 인프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과학문화에 대한 투자는 단순히 한 문화시설에 투자하는 것이 아니다. 미래세대의 질문에 투자하는 것이고, 지역의 과학인재에 투자하는 것이며, 미래산업의 기반에 투자하는 것이다.
AI와 반도체, 에너지와 바이오, 우주항공과 첨단소재, 기후기술 등 새로운 산업의 시대를 준비하려면 기술을 이해하는 시민과 미래를 꿈꾸는 청소년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꿈을 키우는 공간 가운데 하나가 바로 우리 곁의 국립광주과학관이다.
광주의 과학관이 아니라 호남의 과학관.
전시하는 과학관을 넘어 함께 탐구하는 과학관.
과거의 과학을 보여주는 곳을 넘어 미래의 과학을 함께 만드는 곳.
이정구 국립광주과학관장은 늘 “과학관에 오시면 어린이는 20년 앞서가고, 어른은 20년 젊어진다”고 말한다.
남녀노소 세대를 불문하고 전 국민이 과거에서부터 미래까지 만나볼 수 있는 기관으로 거듭나겠다는 의지가 담겨있다.
국립광주과학관이 걸어온 지난 13년은 이미 그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이제 필요한 것은 그 가능성을 지역사회가 함께 키우는 일이다.
과학을 보여주는 곳에서 미래를 만드는 곳으로.
국립광주과학관의 다음 10년이 광주·전남·전북 과학문화의 새로운 10년이 되기를.
최용국 전남대학교 명예교수(1.5도씨 포럼 회장) ykchoi@jnu.ac.kr
전남광주=김한식 기자 hski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