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 성지서 입맞춤했다고 사형?”… 사우디, 외국인 남녀 '무통보 처형'에 유가족 울분

유가족 “구금 기간에도 통화… 처형 사실 몰랐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처형된 방글라데시 출신 청소노동자 나즈룰 이슬람(22). 사진=텔레그래프 캡처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처형된 방글라데시 출신 청소노동자 나즈룰 이슬람(22). 사진=텔레그래프 캡처

사우디아라비아가 이슬람 성지 메카의 모스크에서 '부적절한 행위'를 했다는 이유로 방글라데시 국적 남녀 2명을 사전에 통보하지 않고 처형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22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에 따르면 사우디 내무부는 지난 14일 메카 지역에서 방글라데시 국적 남녀 2명에 대한 사형을 집행했다.

사우디 당국은 이들이 모스크의 신성함을 훼손하는 '신성모독 행위'를 저질렀다고 밝혔다. 이들은 이슬람법상 범죄별로 형량이 정해진 형벌이 아닌 재판부 재량에 따라 형량을 정하는 '타지르' 방식으로 사형을 선고받았다.

당국은 범죄 행위가 중대했다고 밝혔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행동을 했는지는 공개하지 않았다.

일부 사우디 언론은 두 사람이 '입맞춤을 한 혐의'를 받았다고 보도했으며, 방글라데시 고위 당국자는 텔레그래프에 '간통' 혐의로 기소됐다고 전했다. 다만 유가족들은 이 같은 주장을 부인하고 있다.

처형된 여성은 방글라데시 탕가일 지역 출신의 수에티 악테르(24)로 확인됐다. 이혼 경력이 있는 악테르는 2023년 사우디로 건너가 메카에서 청소노동자로 일했다.

그는 2023년 8월 체포됐지만 약 1년 동안 이 사실을 가족에게 알리지 않았다. 처음에는 몸싸움에 휘말려 구금됐다고 설명했지만, 이후 가족들은 현지 남성과의 관계와 관련해 체포됐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은 것으로 알려졌다.

악테르는 처형 하루 전인 지난 13일에도 가족과 통화했다. 현지 경찰 관계자에 따르면 그는 당시 가족들에게 “두 달 반 정도 뒤면 집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으며, 자신이 다음 날 처형될 것이라는 사실을 몰랐던 것으로 전해졌다.

함께 처형된 남성은 브라만바리아 지역 출신 나즈룰 이슬람(22)으로, 4남매 중 장남이었다. 그는 2022년 11월 사우디로 건너가 역시 메카에서 청소노동자로 일했으며 악테르와 같은 날 체포됐다.

이슬람은 체포 약 6개월 뒤 가족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이 누명을 썼다고 주장했지만 구체적인 혐의는 설명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의 사촌 무함마드 모이누딘 부이얀은 “언론 보도를 통해 사촌의 처형 사실을 알았다”며 “매주 일요일 전화 통화를 했지만 처형에 대해서는 사전에 아무런 통보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어 “간통이나 그런 범죄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른다”며 “나즈룰도, 사우디 정부도 우리에게 알려준 적이 없다. 진상 규명을 원한다”고 밝혔다. 가족들은 시신 반환과 사건에 대한 조사를 요구하고 있다.

방글라데시 정부 역시 사우디 측에 사건 경위와 재판 과정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요청했다. 지난 9월 사우디 당국이 제다 주재 방글라데시 총영사관에 약 2500명의 수감자 명단을 전달했지만, 당시 자료에는 두 사람이 사형 선고를 받았다는 내용이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사건은 사우디에 350만명 이상의 방글라데시인이 일하고 있는 상황에서 양국 관계에도 민감한 문제로 떠올랐다. 사우디는 방글라데시 최대 해외 노동시장으로, 현지 노동자들이 본국으로 보내는 송금도 방글라데시 경제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한다.

후마윤 코비르 방글라데시 차관급 당국자는 사우디 측에 설명을 요구하면서도 “알라의 집의 신성함은 존중돼야 한다”며 “우리가 들은 내용이 사실이라면 매우 유감스럽고 용납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사우디의 사형 집행을 둘러싼 국제사회의 비판도 이어지고 있다. 국제앰네스티에 따르면 사우디는 지난해 역대 가장 많은 사형을 집행했으며 올해 들어서도 약 100명을 처형했다.

앰네스티는 특히 외국인 피고인들이 변호인이나 통역, 충분한 영사 지원을 받지 못한 채 재판을 받는 사례가 있다며 사우디의 사법 절차를 비판해왔다. 2014년 1월부터 2025년 6월까지 사우디에서 집행된 사형 가운데 최소 47.5%는 이번 사건과 같은 '타지르' 범죄에 따른 것으로 조사됐다.

서희원 기자 shw@et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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