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글로벌 에너지 패권 경쟁, 허약한 K-에너지 소부장 자본생태계

김경태 나로벤처투자 부사장
김경태 나로벤처투자 부사장

AI 시대, 차세대 통합 에너지 시장의 초거대 팽창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확산과 급속한 산업 전기화로 전력 수요가 급증하면서 에너지 인프라 투자의 중요성이 날로 커지고 있다. 원전·소형모듈원자로(SMR)뿐 아니라 태양광·풍력·배터리·수전해 등 청정에너지 전반에서 글로벌 공급망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한 경쟁도 한층 치열해지고 있다.

글로벌 산업계가 이른바 'AI가 유발한 전력 기근'에 직면하면서 대형 원전과 SMR, 핵융합은 물론 태양광·해상풍력·청정수소·에너지저장장치(ESS) 등을 아우르는 차세대 무탄소 에너지 시장이 반도체에 비견될 초거대 시장으로 급팽창하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와 글로벌 시장조사기관의 분석을 종합하면 2035년 글로벌 원자력·SMR·재생에너지·수소·ESS 시장의 합산 규모는 약 2조달러(약 2650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같은 시점 반도체 시장 전망치인 약 1조2000억달러의 1.7배 수준이다.

AI 시대의 에너지 산업은 단순한 발전설비 공급을 넘어 전력 생산과 저장, 운송, 활용을 포괄하는 통합 산업으로 진화하고 있다. 에너지 기술과 공급망을 확보하는 국가가 미래 산업 경쟁력과 경제안보의 주도권을 쥐게 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칼럼] 글로벌 에너지 패권 경쟁, 허약한 K-에너지 소부장 자본생태계

국내 에너지 자본생태계의 현주소와 한계

[칼럼] 글로벌 에너지 패권 경쟁, 허약한 K-에너지 소부장 자본생태계

글로벌 차세대 에너지 시장이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지만 국내 무탄소 에너지 기업들은 밝은 산업 전망과 달리 자본시장과 기업가치 평가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돼 있다. 특히 코스닥에 상장된 에너지 소재·부품·장비(소부장) 기업들의 시가총액은 반도체 등 첨단산업과 비교해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2026년 9월 말 기준 코스닥 대표 소부장 기업 5개사씩을 표본으로 비교하면 반도체 분야의 합산 시가총액은 약 18조~20조원인 반면, 차세대 에너지 분야는 약 2조5000억~3조5000억원에 그친다. 에너지 소부장 기업들의 자본시장 규모가 반도체 기업들의 약 6분의 1 수준에 불과한 셈이다.

이는 단순한 기업가치의 차이를 넘어 미래 성장산업에 대한 자본 공급의 불균형을 보여준다. 기술력이 뛰어나더라도 이를 사업화하고 글로벌 시장으로 확장할 성장자본이 부족하다면 산업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렵다.

AI 전력난 대응을 위해 원전·SMR과 신재생에너지의 균형 있는 성장이 절실하지만, 에너지 분야 전문 투자펀드의 부족과 부채 중심 정책금융의 한계로 기술 경쟁력을 갖춘 기업들마저 성장의 골든타임을 놓칠 위험에 처해 있다.

대미 원전 수출과 SMR 실증, 초대형 해상풍력 공급망 진입을 위해서는 수천억원 규모의 선제적 투자와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 미국기계학회(ASME) 등 관련 규제·인증 요건 충족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국내 에너지 소부장 기업들은 상대적으로 작은 시가총액과 제한적인 자본조달 여력으로 대규모 설비투자와 해외 인증 비용을 감당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주식발행을 통한 자기자본 확충이 원활하지 않은 구조는 결국 K-에너지 기업의 글로벌 시장 진출을 가로막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자본이 뒷받침되지 않는 기술은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발휘하기 어렵다. 기술개발과 실증, 양산, 해외 진출로 이어지는 성장 단계마다 필요한 자본을 공급할 수 있는 생태계 구축이 시급하다.

'제2의 반도체 신화' 견인할 코스닥의 제도 혁신

정부의 국가 '7대 SEED 프로젝트'가 대한민국의 미래 성장동력을 창출하고 '제2의 반도체 신화'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연구개발(R&D) 예산 확대나 단기 융자 지원을 넘어 자본시장을 통한 모험자본 공급이 뒷받침돼야 한다.

특히 AI 시대에 전략적 중요성이 높아진 원자력·SMR·해상풍력·태양광·수소·ESS 등 차세대 에너지 공급망과 7대 SEED 핵심 첨단 소부장 분야는 글로벌 시장 선점을 위해 대규모 양산 설비투자(CAPEX)와 선제적인 해외 인증 확보가 불가피하다.

기술개발에 성공하더라도 상용화와 양산에 필요한 자본을 확보하지 못하면 글로벌 경쟁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다. 초기 기술기업과 중견 소부장 기업들이 성장 단계에 맞춰 자본을 조달할 수 있도록 자본시장의 제도적 지원을 강화해야 하는 이유다.

이를 위해 코스닥시장에 '7대 SEED 및 차세대 에너지 혁신기술 특례 트랙'을 신설할 필요가 있다. 기존의 재무성과 중심 평가에서 벗어나 미래 전략기술의 경쟁력과 기술 독점성, 글로벌 공급망 진입 가능성, 장기 성장잠재력 등을 종합적으로 반영하는 상장 평가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특히 장기간의 연구개발과 실증, 인허가 과정을 거쳐야 하는 에너지 기술기업의 특성을 고려한 별도의 상장 지원체계가 필요하다. 이를 통해 우수한 기술력을 확보한 기업들이 적기에 성장자본을 조달하고 글로벌 시장 진출에 필요한 투자를 확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국가 미래를 좌우할 7대 SEED 프로젝트와 차세대 무탄소 에너지 생태계가 자본시장의 모험자본과 결합할 때 비로소 완전한 산업 생태계가 구축될 수 있다. 코스닥 혁신기술 특례 트랙은 단기 테마주 중심의 시장 구조를 개선하고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에너지 소부장 선도기업을 육성하는 제도적 기반이 될 것이다.

에너지 안보가 곧 국가 경쟁력의 기반이다

대한민국의 미래 성장산업은 단순한 R&D 예산 확충이나 정책금융기관의 대출 지원, 초기 벤처캐피탈(VC)의 투자만으로 완성될 수 없다.

차세대 에너지 기술기업은 장기간의 연구개발과 실증을 거쳐야 하며, 상용화 이후에도 대규모 설비투자와 해외 인증, 글로벌 공급망 확보를 위한 지속적인 자본 투입이 필요하다.

따라서 금융당국과 한국거래소는 에너지 및 미래 전략기술 기업의 산업적 특성을 반영한 상장 전용 평가체계 도입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 정책금융과 민간 모험자본, 자본시장이 유기적으로 연계되는 전주기 투자체계도 구축해야 한다.

대한민국이 글로벌 에너지 패권 경쟁에서 초격차 경쟁력을 확보하려면 핵심 소부장 기술력과 양산 능력을 동시에 갖춰야 한다. 까다로운 글로벌 규제와 인증을 통과하고 세계 공급망의 중심축으로 도약할 수 있도록 과감한 자본 공급이 이뤄져야 한다.

차세대 무탄소 에너지와 7대 SEED 프로젝트라는 두 축의 기술기업들이 함께 성장해 대한민국의 새로운 주력 산업으로 자리매김하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 자본시장 제도 혁신과 정책금융, 민간 모험자본이 하나의 톱니바퀴처럼 맞물려야 한다.

에너지 안보는 더 이상 안정적인 전력 공급만의 문제가 아니다. 첨단산업의 지속 가능성과 글로벌 공급망 경쟁력, 국가 경제의 미래를 좌우하는 핵심 전략 과제다. 기술개발에 머무르는 산업정책에서 벗어나 기술과 자본, 시장을 연결하는 성장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

그때 비로소 대한민국은 진정한 에너지 기술 강국으로 도약하고 '제2의 반도체 신화'를 현실로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다. 이제는 선언적 구호를 넘어 현장을 살리는 정교하고 속도감 있는 정책 실행에 나서야 할 때다.

김경태 | 나로벤처투자 부사장

20년 이상 국내 벤처투자 업계에서 활동한 첨단 소부장 전문 펀드매니저로서 100개가 넘는 투자업체에 2천억 원 이상을 투자하며 다양한 밸류업을 지원했고, 그중 32개 업체를 코스닥 시장에 상장시켰다. 국내 벤처 생태계에 꾸준히 기여한 공을 인정받아 2025년 한국벤처기업협회 창립 30주년 기념 공로상을 수상했다.

소성렬 기자 hisabisa@etnews.com

  • ET Ev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