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랑스 정부가 시위 현장에서 기물 파손에 직접 가담하지 않은 사람에게도 최대 1만유로(약 1500만원)를 물릴 수 있는 법안을 추진하면서 논란이 확산하고 있다. 노동계와 진보 진영은 책임이 없는 시민까지 처벌받을 수 있다며 입법 계획의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25일(현지시간) 영국 가디언에 따르면 프랑스 상원은 이번 주 '기물파손 배상법'(vandals pay law)을 심의할 예정이다.
해당 법안은 직접적인 파손 행위에 가담하지 않았더라도 가해자와 같은 집단에 속하거나 현장 주변에서 시위에 참여한 사람에게 최대 1만유로의 손해배상 의무를 부과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집회 현장에서 드론을 활용하는 범위를 넓히는 방안도 담겼다.
입법 논의는 지난 5월 파리에서 열린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경기에서 파리 생제르맹(PSG)이 아스널을 꺾은 뒤 벌어진 폭력 사태를 계기로 시작됐다. 세바스티앵 르코르뉘 총리는 최근 대규모 전국 시위가 약탈과 방화 등으로 번진 사례를 언급하며 해당 법안의 도입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반대 측에서는 개인이 저지르지 않은 행위에 대해서까지 책임을 지우는 것은 시민의 기본권을 훼손할 수 있다고 반박한다. 이러한 조치가 집회 참여 자체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급진 좌파 정당 불굴의프랑스(LFI) 소속 에리크 코케렐 의원은 법안이 시행되면 프랑스에서 거리 집회가 사실상 사라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공산당의 파비앵 게 상원의원 역시 해당 조치가 정착할 경우 앞으로 집회 개최가 어려워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진보 성향 노동조합과 인권연맹도 일간 르몽드에 공개적으로 입장을 전달하고, 집회·시위의 자유를 크게 제한할 수 있다며 법안 폐기를 촉구했다.
공법 전문가인 세르주 슬라마 그르노블알프대 교수는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행정명령을 통해 시민의 자유를 폭넓게 제한하는 조치가 이어지고 있다”며 “이례적인 상황”이라고 비판했다.
반면 극우 정당 국민연합(RN)은 해당 법안이 자당에서 먼저 제안한 정책이라고 주장했다. 대선 출마를 선언한 마린 르펜 RN 의원은 이날 오를레앙 유세에서 “프랑스 사회의 질서를 회복하겠다”며 “공공기물을 훼손한 사람에게는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책임을 끝까지 묻겠다”고 밝혔다.
이원지 기자 news21g@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