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공지능(AI) 산업에 천문학적인 자금이 유입되면서 월가에서 투자 손실에 대비하려는 움직임이 본격화하고 있다. AI 투자가 기대만큼의 수익으로 이어질지 불확실성이 커지자 주식과 채권은 물론 AI 반도체(GPU) 사용료 하락 위험까지 헤지하려는 수요가 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지난달 31일(현지시간) AI 관련 기업에 투자한 개인투자자와 기술기업 임원들이 풋옵션과 신용부도스와프(CDS) 등 금융상품을 활용해 자산 가격 하락에 대비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투자자문사 게이트웨이 인베스트먼트 어드바이저스의 스티븐 솔라카 수석부사장은 “투자자산 가격 하락에 따른 손실을 방어하려는 수요가 매우 크게 나타나고 있다”고 전했다. 특히 대형 기술기업 주식에 투자해 상당한 수익을 거둔 투자자들이 최근에는 차익을 지키기 위해 주가 하락 위험을 관리하는 데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 AI 관련 기업의 주가가 출렁이면서 시장의 경계심도 커지는 모습이다. 인텔은 지난달 30일 하루 만에 주가가 28.6% 급락했다. 알파벳 역시 전날 12% 넘게 떨어져 사상 최대 일일 낙폭을 기록했다.
AI 클라우드 인프라 기업 코어위브를 대상으로 한 하락 베팅도 늘었다. 주가가 떨어질 때 수익을 내는 풋옵션 거래량은 지난달 사상 최고 수준으로 치솟은 뒤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특히 2028년 만기, 행사가격 35달러인 풋옵션에 거래가 집중됐다. 당시 코어위브 주가는 지난주 55달러 안팎에서 움직였다.
주식뿐 아니라 대형 기술기업의 신용위험을 경계하는 움직임도 나타났다. 기업이 채무를 이행하지 못할 경우에 대비하는 보험 성격의 파생상품인 CDS 가격이 상승하고 있다. CDS 프리미엄이 높아진다는 것은 해당 기업의 채무불이행 위험에 대한 시장의 우려가 커졌다는 의미다.
채권정보업체 솔브에 따르면 아마존, 알파벳, 마이크로소프트, 메타, 오라클 등 주요 기술기업 5곳의 CDS 프리미엄은 지난 한 달 동안 모두 상승해 2021년 이후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유진 그린버그 솔브 공동창업자는 “예외 없이 CDS 프리미엄이 상승했다는 것은 개별 기업의 특수한 신용 문제라기보다 해당 산업 전반에 대한 시장의 우려를 시사한다”고 분석했다.
AI 투자 위험을 관리하기 위한 파생상품 시장도 새로운 영역으로 확대되고 있다. 주가나 기업 신용도뿐 아니라 AI 인프라 사업의 핵심 수익원인 GPU 사용료 하락에 대비하는 상품까지 등장했다.
초고속 거래업체 점프 트레이딩은 최근 GPU 사용료가 급락할 경우 데이터센터 운영업체 등의 손실을 줄일 수 있는 파생상품 거래에 나섰다. 대형 트레이딩업체 서스쿼해나 인터내셔널 그룹도 데이터센터와 AI 클라우드 기업들로부터 GPU 사용료 하락 위험을 헤지하기 위한 파생상품 거래 문의를 받고 있다.
최호 기자 snoop@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