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트럼프 행정부 밀착한 실리콘밸리
의회 주도권 바뀌면서 역풍 맞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밀착해온 실리콘밸리 기업들이 민주당의 의회 조사라는 새로운 정치적 위험에 직면했다.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상·하원을 모두 장악하면서 트럼프 행정부와 기업 간 거래, 정치자금 기부, 정부 정책을 통한 사업상 이익 등이 조사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실리콘밸리 억만장자와 기술기업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재집권 이후 백악관과 관계를 강화하고 대규모 미국 투자와 정치자금 기부를 통해 우호적인 정책 환경을 조성하려 했다. 그러나 공화당이 의회 주도권을 잃으면서 이 같은 전략이 오히려 기업들의 정치적 부담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커졌다.
워싱턴포스트(WP)는 6일(현지시간) 복수의 관계자를 인용해 민주당이 애플과 메타, 일론 머스크 관련 기업 등을 초기 조사 대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조사 초점은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기업들이 정부와 어떤 관계를 맺었으며, 그 과정에서 사업상 이익이나 정책적 혜택을 얻었는지 여부다.
기업별로는 구체적인 쟁점이 다르다. 하원은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베네수엘라 니콜라스 마두로 당시 대통령 체포 작전을 구상하는 과정에서 머스크의 인공지능(AI) 챗봇 그록을 활용했다는 의혹을 들여다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애플은 미국 이민세관단속국(ICE) 요원들의 위치를 추적하는 앱을 앱스토어에 등록했다가 행정부의 요구에 따라 삭제한 경위가 조사 대상으로 거론된다. 메타는 대규모 데이터센터 건설 과정에서 지방정부에 사업 정보를 외부에 공개하지 않도록 하는 비밀유지협약(NDA)을 요구한 문제가 쟁점으로 부상했다.
기업들의 정치적 기부와 백악관 사업 참여도 조사 대상이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민주당 소속 리처드 블루멘털 상원의원은 5일 애플과 메타, 구글, 엔비디아,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등 백악관 연회장 건립 사업에 기부한 기술기업들에 관련 자료를 자발적으로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기업들이 응하지 않을 경우 민주당이 의회 다수당으로 공식 출범한 뒤 소환장을 발부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애플과 엔비디아는 백악관 연회장 건립을 위해 각각 2500만달러를 기부하기로 약속했다. 전체 민간 기부 규모는 3억3300만달러에 달한다. 민주당은 정부와 사업상 이해관계를 가진 기업들이 거액을 기부한 배경과 그에 따른 이해충돌 가능성을 확인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번 선거는 실리콘밸리의 정치적 영향력이 선거 결과를 좌우할 수 있다는 기대에도 타격을 줬다. CNBC에 따르면 가상자산·AI·온라인 도박 업계가 이번 선거에 투입한 자금은 3억7700만달러를 넘어섰다. CNBC가 연방선거위원회(FEC) 자료를 분석한 결과, 기부액 상위 20개 단체 가운데 14곳은 공화당 후보만 지원하거나 사실상 공화당에 집중적으로 자금을 제공했다.
일론 머스크는 이번 선거에서 최대 개인 기부자로 기록적인 자금을 투입했지만 공화당의 의회 수성을 막지 못했다. 특히 텍사스주 상원의원 선거에서는 민주당 제임스 탈라리코 후보를 저지하기 위해 2억달러 이상을 썼지만, 탈라리코 후보가 공화당 켄 팩스턴 후보를 꺾었다.
거액의 정치자금은 오히려 역풍을 불렀다. 유권자들은 출구조사에서 정부 부패와 억만장자의 정치적 영향력 확대에 우려를 나타냈다. CNBC 조사에서는 응답자의 69%가 경제적 혜택이 부유층에 집중되고 있다고 답했다.
민주당은 이러한 여론을 발판으로 빅테크에 대한 압박을 강화할 방침이다. 하원 감독위원장을 맡을 예정인 로버트 가르시아 의원은 선거 직후 엑스(X)에 “변호사를 선임하라”고 썼다. 의회진보코커스 의장인 그레그 카사르 하원의원도 AI 기업 최고경영자들을 의회에 불러 선서 증언을 시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사 범위는 빅테크를 넘어 트럼프 대통령 가족과 측근들의 사업으로 확대될 가능성도 있다. AP통신은 민주당 지도부가 대통령 가족의 집권 이후 자산 증식 과정과 백악관 연회장 건립, 가상자산 거래, 정부의 이민단속 활동 등을 조사 대상으로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실리콘밸리 기업들에는 정치적 대응 전략을 재검토해야 할 상황이 됐다. WP에 따르면 워싱턴의 주요 기업 전문 로펌들은 기업 경영진을 대상으로 의회 조사 대응 온라인 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일부 스타트업에는 의회 청문회 출석과 정부 계약 축소 가능성에 대비해 연말까지 자금 조달을 마무리하라는 조언도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민주당의 조사 계획이 실제 소환이나 제재로 이어질지는 아직 불확실하다. 민주당이 의회 다수당으로 공식 출범한 이후 조사 권한을 행사할 수 있지만, 구체적인 조사 범위와 결과는 향후 의회 절차에 달려 있다. 백악관은 민주당의 움직임을 정치적 목적의 조사라고 비판했으며, 트럼프 행정부는 그동안 위법 행위가 없었다는 입장을 유지해왔다.
이상목 기자 mrlsm@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