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 인 미디어]무너진 터널에 갇히다 '폐소공포증'

[사이언스 인 미디어]무너진 터널에 갇히다 '폐소공포증'

좁은 공간에 갇혀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한 남자가 있다. 영화 '터널' 속 자동차 영업원 이정우(하정우 분)다. 먹을 것이라곤 500㎖ 생수 두 병, 딸을 위해 준비한 생일 케이크, 개 사료뿐이다.

한 달이 넘는 시간동안 무너진 터널에 갇힌다면 어떤 기분일까. 영화 속 이정우는 스마트폰으로 간혹 외부와 연락을 취하며 구조를 기다리지만 배터리가 방전되면 오롯이 혼자가 된다. 영화처럼 말동무가 되어 줄 개도 없다면 더 암담하다. 어둠과 함께 공포가 스며든다.

공포감에 사로잡힌 사람은 심장이 뛰고 숨이 가빠진다. 몸이 떨리거나 심하면 발작도 일어날 수 있다. 갇힌 공간에서 벗어나더라도 트라우마처럼 불안감은 남는다. 영화 후반 이정우는 다시 터널을 지나게 된다. 자동차 안에서 불안에 떨며 손잡이를 꽉 쥐며 몸을 움츠린다. 바로 폐소공포증이 생긴 것이다.

폐소공포증을 겪는 사람은 터널뿐만 아니라 엘리베이터, 비행기, 좁은 방에만 들어가도 증세가 나타날 수 있다. 특히 남성보다 여성이 폐소공포증을 더 잘 겪는다고 한다. 과거 갇힌 경험이 있다면 무의식적으로 공포를 느낄 수 있다.

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폐소공포증 환자는 인지하는 주변 공간을 왜곡하기도 한다. 사적인 공간이라고 느끼는 주변 공간을 실제보다 넓게 본다는 것이다. 인지 공간이 크기 때문에 특정 공간에 안에 있을 때 더 좁은 곳에 갇혀있다고 인식한다는 분석이다.

사이언스 소믈리에(강석기 저)란 책에서는 '갇힌 공간에 대한 사람들의 두려움은 천적에 사로잡혔을 때 느끼는 두려움의 흔적'이라고 해석했다. '두려운 대상이 다가오거나 그런 상황에 처했을 때 상황을 좀 더 과장되게 인식함으로써 대처할 수 있는 시간을 벌게 해준다'고 밝혔다.

최근 폐소공포증은 꽤 익숙한 단어가 됐다. 국정농단으로 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든 주인공도 검찰 조사 중 폐소공포증을 호소하면서 유명해졌다. 1.9평 감옥에서는 먹고 자지만 조사실에서는 증세가 나타나 문을 열어두고 조사를 진행했다는 후문이다. 주인공에게 두려움의 대상은 무엇이었을까.

폐소공포증 치료를 위해 단계적으로 갇힌 공간을 겪게 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한다. 환자가 두려워하는 폐소를 계속 체험하게 해 자신이 안전하다고 인식하게 하는 인지행동 치료다.

권동준기자 djkwon@et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