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블TV는 '뉴미디어의 총아'로 불리며 1995년 3월 개국했다. 당시 48개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가 24개 채널을 갖추고 9만여 가구 대상으로 방송을 시작했다. 케이블TV는 국내 첫 유료방송 시장 개척과 함께 초고속 인터넷 강국을 구현하는 촉매제가 됐다. 트리플
1만호 100대 사건
1982년 9월 22일 창간한 전자신문이 오는 9월 1일 지령 10000호를 맞습니다. 1만호를 거치며 전자신문은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최고의 정보통신기술(IT) 분야 전문지이자 최고 권위의 지식 정보지로 자리매김했습니다. 특히 우리나라 ICT 산업과 기술 발전을 지원하는 조력자로서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전자신문은 지령 1만호를 기념하기 위해 그동안 지면에서 다뤘던 수많은 이슈 가운데 100대 사건을 선정해 의미를 되짚어보려 합니다. 100대 사건은 전자신문 전문기자들로 구성된 선정위원회는 물론이고, 인공지능(AI)의 조력을 받아 선정할 계획입니다. 여기에 전자신문 독자분들의 고견을 더해 최종 선정할 예정입니다. 최종 선정된 100대 사건은 1만호 발행 10주 전인 6월 27일부터 매주 금요일자에 특별기획면을 통해 선보일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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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케이블TV 본방송2025-07-10 16:00 -
〈24〉정보통신부 출범“산업화는 늦었지만, 정보화는 앞서가자.” 정보통신부는 1994년 12월 정보화 열풍이 불던 시대적 분위기와 맞물려 탄생했다. 정통부는 전전자교환기 대중화, 코드분할다중접속(CDMA) 통신 세계 최초 서비스, 초고속인터넷망 구축 등을 이끌면서 한국이 정보기술(IT) 강
2025-07-10 16:00 -
〈23〉256MB D램 세계 첫 개발1994년 삼성전자는 256메가(MB) D램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우리나라가 반도체 개발에 뛰어든지 11년만이다. 앞서 1992년 삼성전자는 64MB를 가장 먼저 개발했지만, 시장 점유율은 일본 기업이 좀더 우세했다. NEC·도시바·히타치·후지쯔·미쓰비시 등이 주도
2025-07-10 16:00 -
〈22〉초고속정보통신망 구축 종합계획 수립1994년 3월 정부는 '초고속정보통신망 구축 종합계획'을 확정하며 정보화 사회로의 본격적인 전환을 천명했다. 이는 1993년 8월 발표한 기본계획을 실행 수준으로 구체화한 것으로 전국 단위 고속·대용량 통신 인프라를 단계적으로 구축해 멀티미디어 시대와 지식기반사회에
2025-07-10 16:00 -
〈21〉대덕연구개발특구, 과학기술연구단지 메카로현재 3000개에 육박하는 과학기술 기관과 기업이 입주한 대덕연구개발특구(옛 대덕연구단지)의 토대는 1967년 처음 마련됐다. 당시 수립된 '과학기술개발 장기 종합계획'에 따라 흩어진 연구기관을 한 곳에 모아 인력과 시설을 공동 활용, 연구 성과를 극대화하려는 시도였다
2025-07-10 16:00 -
〈20〉SK그룹, 한국이동통신 인수1994년 1월 선경그룹(현 SK그룹)이 한국이동통신(현 SK텔레콤) 최대 주주로 올라섰다. 대한민국 이동통신 산업의 판을 바꾸는 결정적 분기점이었다. SK그룹의 이동통신 사업 도전은 1980년대부터 시작됐다. 1992년 노태우 정부 시절 선경그룹은 체신부가 주관한 제
2025-07-03 16:00 -
〈19〉대전엑스포 개최1993년 세계박람회(EXPO)는 역사상 최초로 개발도상국에서 개최된다. 1928년 국제박람회기구 협약 체결 이후 선진국 대열에 끼지 못한 국가에서 국제박람회기구(BIE) 공인 박람회가 열린 것은 처음이었다. 전세계에서 입장객 1400만명이 방문, 개도국 엑스포 개최
2025-07-03 16:00 -
〈18〉우리나라 최초 인공위성 '우리별 1호' 발사 성공1990년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우리나라는 우주기술의 불모지에 가까웠다. 지구 관측과 저궤도 이동통신, 우주과학 실험을 위해 선진국들이 앞다퉈 고성능 소형위성 경쟁을 전개했던 것과 대비됐다. 정부는 우주산업 개척 필요성을 인지, 1990년 본격적인 투자에 나섰다. 우리별
2025-07-03 16:00 -
〈17〉TFT-LCD 국산화 개가1992년 4월 대한민국이 디스플레이 강국으로 발돋움하는 역사적 사건이 일어났다. 당시 LCD 강국이었던 일본을 뛰어넘겠다는 의지로 박막트랜지스터(TFT) 액정표시장치(LCD)를 개발해 국산화한 것이다. 당시 LCD는 브라운관을 뛰어넘는 차세대 디스플레이로 각광받았지만
2025-07-03 16:00 -
〈16〉행정전산망용 '주전산기Ⅱ' 순수 국산 기술로 개발1984년 국가기간전산망사업이 시작됐다. 이를 위해서는 행정전산망에 쓰일 컴퓨터가 필요했다. 행정전산망 사업 담당이었던 데이콤은 외국에서 기술을 도입해 컴퓨터(주전산기) 상용화 계획을 추진했다. 당시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은 32비트 유닉스 컴퓨터를 개발·상용화에
2025-07-03 16:00 -
〈15〉한국형 PC 운용체계 'K-DoS' 개발마이크로소프트(MS)의 개인용컴퓨터(PC) 운용체계(OS)에 대항하기 위한 국산 OS 개발 노력도 국내 정보기술(IT) 역사 한 페이지를 장식한 장면이다. 최근 들어 '소버린 인공지능'(자국산 AI)을 강조하듯 40년 전에도 자주 기술 확보에 열을 올렸다. K-DOS
2025-07-03 16:00 -
〈14〉88서울올림픽 개최“쎄울, 코리아!” 1981년 9월 30일 오후 2시 독일. 사마란치 위원장의 한 마디에 대한민국과 국민 모두가 들썩였다. 서울이 1988년 하계 올림픽 개최지로 선정되는 순간이었다. '88 서울올림픽'은 올림픽 역사상 가장 성공한 대회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1988
2025-07-03 16:00 -
〈13〉삼성전자 국내 최초 휴대전화 'SH-100' 출시삼성전자가 1988년 9월 국내 최초의 휴대전화 단말기 'SH-100'을 출시하며 '국산 핸드폰 시대' 포문을 열었다. 이는 한국이 무선통신 단말기 독자 개발에 성공한 첫 사례로 이후 글로벌 휴대폰 시장 진입의 기반이 된 이정표였다. SH-100은 순수 국내 기술로 설
2025-07-03 16:00 -
〈12〉국내 첫 바이러스 백신 프로그램 개발국내 첫 바이러스 백신 프로그램 개발 일화는 유명하다. 병든 사람을 고치는 의술을 배우던 서울대 의과대학 대학원생이 바이러스에 감염된 개인용컴퓨터(PC)를 고치는 백신 프로그램 개발자가 됐다. 안철수 안랩 창업자(현 국민의힘 의원)의 이야기다. 안 창업자는 1988년
2025-07-03 16:00 -
〈11〉전자산업 수출 100억달러 돌파박정희 정부는 부가가치가 높은 철강·기계·화학 같은 중화학공업을 육성해 기계공업을 이용한 공업화 발전을 꾀했다. 수출이 연평균 25% 증가하면 1980년에는 적어도 100억달러 수출을 달성할 수 있다는 장기 전망을 세웠다. 그 결과 당초 1980년과 1981년 달성을
2025-07-03 16: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