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수출로 전자산업 "弗길" 끈다 (3);정보통신

수출입국을 외치던 70년대의 상징은 수출확대 관계장관회의다. 대통령이 직접 주재하고 수출관련 부처 장관과 기업 대표들이 참석, 매달 수출현황을 파악하고 전망치를 제시하는 한편 목표 달성을 다그치는 모습은 70년대 경제개발의 한 단면으로 아직까지 남아 있다.

정보통신부 회의실에서는 마치 70년대 수출확대 관계장관회의를 연상시키는 회의가 한 달에 한 번 꼴로 열린다. 장관 혹은 차관이 주재하며 참석자는 정보통신부 관료, 전자통신연구원(ETRI) 등 연구기관의 주요 연구원을 비롯해 대학교수, 수출입은행 등 금융관계자, 삼성전자, LG정보통신, 현대전자, 동아일렉콤 등 내로라 하는 국내 정보통신업체 대표들이다.

이 모임의 명칭은 「정보통신산업 해외진출 지원협의회」다. 지난 96년 11월 정보통신분야의 산, 학, 연, 관 합동으로 구성됐고 지난달까지 모두 13차례의 회의를 가졌다. 물론 안건은 정보통신 해외진출 현황을 분석하고 장기계획을 수립, 추진하는 것이다.

세계무역기구(WTO)체제의 무한경쟁 속에서 정부와 기업 심지어 금융권까지 공동으로 참여하는 수출 협의체를 운영하는 것이 어딘지 어색해 보이지만 정보통신 그 가운데서도 특히 시스템 수출의 성격을 감안하면 이런 협의체는 반드시 필요하다.

정보통신 시스템은 국가 인프라의 성격이 강하기 때문에 세계 모든 나라가 대부분 국영 형태를 취하거나 기간산업으로 간주하고 있다. 통신시스템 수출은 먼저 정부 베이스에서 충분히 논의가 된 후 기업으로 프로젝트가 넘어오고 거래가 성립된다. 통신시스템이 국가 기간산업인 만큼 일단 교두보를 확보하면 추후에는 한국기업의 제품이 지속적으로 공급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통신시스템은 정부와 기업, 유관단체가 총력지원체제를 가동한다.

정통부와 기업 대표들로 구성된 시장개척단을 정기적으로 해외에 파견, 현지에서 한국 기술력에 대한 세미나 및 설명회 등을 열고 해당국가 정보통신부처와의 국제 교류에 박차를 가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삼성전자, LG정보통신 등 기업체들은 정기적으로 수출 유망국가의 전문기자 등 여론주도층을 초청, 국내 산업시찰과 기술설명회를 개최, 한국의 정보통신 시스템에 대한 국제 신인도를 제고하는 측면지원에 적극적이다.

국내 정보통신업체들의 최대 강점은 역시 코드분할다중접속(CDMA)분야. 세계 최초로 상용화에 성공했고 성공적으로 운용하고 있다는 사실은 수출 전망을 한층 밝게 해 준다. 특히 저개발 국가를 중심으로 신규 통신시스템을 구축하는 나라들은 대부분 CDMA와 시분할다중접속(TDMA)의 복수 표준을 지향하고 있다. 한국의 CDMA 기술과 노하우가 먹혀 들 공간이 그만큼 커지고 있는 것이다.

어차피 내수시장의 한계를 안고 있는 국내기업들이라면 결국 수출이 돌파구가 될 수밖에 없다. 국내업체들은 정부의 지원을 업고 지난 수년간 해외시장 개척에 나서 최근에는 서서히 그 결실을 맺고 있다.

실제로 삼성전자, 현대전자, 대우통신 등 주요 통신업체들은 국제통화기금(IMF)체제에 따른 인력 감축, 조직 축소의 회오리 속에서도 수출관련 부서는 오히려 확대하는 수출 강화책을 잇따라 내놓고 있다. 타 부문에서는 해외사업 중단과 철수가 이어지고 있는 반면 통신부문에서는 전년보다 확대돼 가고 있는 것이다.

삼성전자가 정보통신 수출목표를 지난해보다 1백50% 늘어난 20억 달러로 책정했고, 이 중 교환기 및 CDMA시스템에서만 5억 달러를 벌어들일 계획이다. 현대전자 역시 올해를 이동통신 수출 원년으로 선포하고 통신해외사업부를 신설, 3억 달러를 수출할 계획이다. 현대는 CDMA 및 개인휴대통신(PCS)시스템에서 각각 3천만 달러와 2천만 달러를 수출하고 PCS용 소형교환기 개발에도 나서는 한편 무선가입자망(WLL), 주파수공용통신(TRS)장비도 5천만 달러 어치를 수출한다는 목표다.

가장 많은 해외 사업장을 운영하고 있는 대우통신은 교환기 사업을 집중 강화, 전년대비 50% 증가한 1천억원의 매출을 예상하고 있고 (주)대우와 공동으로 진출한 해외 통신망 사업에 자사 교환기를 공급키로 했다. LG정보통신은 올 경영계획의 초점을 통신 수출에 맞추고 사업부별로 분산돼 있던 수출관련 부서를 「세계화부문」으로 통합했다. LG정보통신은 올해 CDMA 시스템 수출에 총력, 4천만 달러 이상을 벌어들인다는 계획이다.

올해 정보통신 시스템의 해외진출은 주력시장인 아시아 지역의 위축에도 불구하고 중남미, 중동, 아프리카, 독립국가연합(CIS), 미국 등지로 시장을 다변화하면서 물량도 크게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이미 CDMA단말기는 최대 수출국으로 부상했지만 올해는 WLL장비 수출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국산 전전자교환기 TDX 및 외국 통신망 건설사업이 활발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들은 모두 정통부와 업계가 전략적으로 추진하는 사업이다.

올해 세계 통신서비스 시장은 전년대비 12.6% 성장한 1조8백40억 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무선통신시장의 경우 CDMA의 급성장과 함께 이리듐, 글로벌스타 등 위성이동통신이 본격화하면서 새로운 시장을 창출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 프로젝트에는 현대전자, 데이콤 등 국내기업들이 세계적 통신 거인들과 공동으로 참여하고 있다.

지역별로는 지리적 인접성, 높은 시장 잠재력을 바탕으로 국내 정보통신산업의 주력 시장인 아시아지역이 동남아 외환위기와 일본의 경기침체로 부진의 늪에 빠질 것으로 예상되지만, 중국이 CDMA 상용서비스에 돌입하고 필리핀은 PCS사업자를 선정하며 네팔, 몽골 등은 통신현대화 사업을 추진할 것으로 보여 여전히 전략시장의 위상을 유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통신, SK텔레콤, 삼성전자, LG정보통신 등이 참여하고 있는 중남미 시장은 올해 최대 유망지역으로 부상했다. 브라질, 파라과이, 에콰도르, 온두라스 등에서 국영 독점사업자(이동통신)의 민영화가 계획돼 있고 멕시코, 아르헨티나, 베네수엘라 등도 신규 사업자 선정을 앞두고 있어 국산 시스템 수출의 타깃이 되고 있다.

동유럽 역시 보스니아와 폴란드를 중심으로 통신망 복구사업이 추진되며 CDMA방식의 WLL사업이 도입될 예정이다. 국내기업들이 신규 진출을 서두르는 중동, 아프리카 지역은 카메룬이 통신망현대화 사업을 추진하고 있고 예멘도 WLL사업을 검토하고 있다.

국내 정보통신업계의 올해 부문별 해외 수출 목표치를 보면 TDX교환기가 3억7천만 달러, CDMA 단말기 및 시스템이 9억 달러, 해외 통신서비스는 6천2백만 달러, 통신망 건설 및 합작공장 설립이 6억8천1백만 달러다.

그러나 시스템 수출은 해당국가에 경제협력자금 혹은 통신망현대화자금 등을 동시에 지원하는 형태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최근의 국내 경제상황이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교환기의 경우 그간 국산장비를 구입하는 국가에게 국제협력기금의 자금 지원을 연계, 저개발국가들로부터 호응을 받았으나 OECD 가입으로 이마저도 여의치 못해 다소 부진을 보이고 있다.

CDMA시스템 역시 대규모 플랜트 수주 성격 탓에 수출국에 대한 장기저리 자금지원이 뒤따라야 하지만 최근의 금융위기로 매우 어려운 처지에 내몰리고 있다. 목표액은 1억1천만 달러 수준이다.

이 때문에 상대적인 호조를 보이고 있는 단말기에 비해 시스템은 다소 위축될 것으로 보인다. 국내 기업이 해외시장에서 격돌하는 경쟁사는 모토롤러, 루슨트, 에릭슨 등 「세계적 거인」들로 이들은 풍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한국기업보다 훨씬 유리한 자금지원 조건을 제시, 시장을 싹쓸이 하고 있다. 또 가격경쟁력 역시 월등, 한국기업 진출의 발목을 잡고 있다.

하지만 정보통신 시스템은 국산 전자제품 중 부가가치가 가장 높은 전략 아이템이라는 점에서 정통부와 관련기업의 수출확대 노력이 가시화할 경우 IMF체제를 돌파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