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에서 최초로 개봉된 해외 성인용 애니메이션. 활자보다는 TV에 익숙한 영상세대가 점차 문화의 주도권으로 부상하고 있는 지금까지 이렇다 할 성인용 애니메이션을 볼 수 없었던 국내 관객들에게는 이상한 영화와의 즐거운 만남이 될 듯하다. 이미 MTV 등을 통해 단편 애니메이션으로 세계적 명성을 얻고 있는 빌 플림턴 감독은 자신의 두번째 장편 애니메이션에서 각본과 감독·그림까지 1인 3역을 맡아 섹스와 폭력에 대한 발군의 상상력과 유머를 보여준다.
「난 이상한 사람과 결혼했다」는 영화 벽두의 『교양 있는 척하면 쏴버리고 싶다』는 선전포고답게 교양과 고상함의 껍질을 훌훌 벗어버린다. 이 영화의 유쾌함은 인간의 본성에 대한 통쾌한 까발림과 상품화를 부추기는 매스미디어에 대한 날카로운 풍자를 통해 전달된다.
어느 날 하늘을 날며 교미 중이던 기러기 한 쌍이 실수로 안테나에 부딪히고, 그곳에서 발생한 이상한 레이저 광선이 그랜트의 목덜미에 혹을 만든다. 이 이상한 혹으로 인해 그랜트는 자신이 상상하는 모든 것을 현실로 바꿔버릴 수 있는 신비한 능력을 갖게 된다. 이 상상력의 세계가 보여주는 노골적인 묘사의 수준은 어두운 골방에 갇혀 포르노를 보듯 야하고, 잔인한 액션영화를 보듯 폭력적이다.
그러나 거친 선의 느낌이 그대로 살아나는 셀 애니메이션의 표현양식에 의해 전해지는 영화의 뒷맛은 오히려 담백하고 신선하다. 황당무계할 정도의 외설스런 상상을 자극하면서도 「난 이상한 사람과 결혼했다」가 폭소를 터뜨리게 만드는 것은 즉흥적이고 솔직한 인간의 욕망을 적나라하게 희화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창 신혼인 아내 켈리와 섹스를 할 때 아내의 모습을 수녀에서 토끼로, 로봇으로 마음대로 바꿔버리는 장면이나 가슴을 한없이 늘어나게 하는 장면은 남성들의 성에 대한 변태적 환상을 충족시켜 주는 유머다. 자신에게 까다롭게 대하는 장모의 입과 귀에서 벌레가 우글거리게 하거나 옆집에서 잔디 깎는 남자가 잔디에 게 공격을 받게 되는 장면 등은 평범한 일상생활에서 겪는 스트레스를 통쾌하게 복수해 준다. 그랜트의 초능력은 우연히 TV 토크쇼에 출연하는 것을 계기로 세상에 알려지고 언론과 군부의 표적이 된다. 세계 통신망을 장악하려는 방송재벌 가일즈 회장과 세계 최고의 군부 실력자를 꿈꾸는 퍼거슨 대령, 한물간 인기를 회복해서 세계적인 코미디언이 되려는 솔리 짐까지, 그랜트는 혹을 노리는 탐욕스런 인간들에 의해 쫓기게 된다.
72분이라는 상영시간이 극장용 영화로 감상하기에는 다소 짧게 느껴지고 초반의 신선함이 후반부로 갈수록 처지지만 감독의 도발적 감성과의 만남은 충분히 새롭고 즐겁다.
<엄용주·자유기고가>